디지털아트 NFT 플랫폼 ‘에트나’
5월 베타버전 이어 8월 정식 론칭
한국 미술작품 전시·거래 등 세계화
‘어디서 무엇이…’ ‘황소’ 등 작품 준비
전위미술 거장 이건용의 ‘하트그림’
자신의 아바타 통한 첫 NFT 작품
거장의 NFT가 베일을 벗었다.
이건용 화백이 첫 NFT(대체불가능토큰) 예술 작품을 선보인다. 오는 5월 나올 예술 플랫폼 에트나(ETNAH)를 통해서다. 작품 아이디어와 전반적인 구상, 예시작도 공개했다. 이 화백은 1970년대 한국 전위미술 그룹을 이끈 대표적 미술가다. 국내 거장급 작가가 NFT 작품을 정식으로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9일 그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에이트(AIT)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아바타’와 함께였다.
◆열쇠말은 ‘소통’
우선 그가 약 50년간 이어오고 있는 방법론 ‘신체드로잉’ 가운데 ‘76-3’번 방식을 이용한다. 신체드로잉이란 그가 캔버스 앞이나 뒤, 옆에서 형태를 의식하지 않고 몸을 움직여 그 흔적이 그려지도록 하는 방법론이고, 76-3번은 캔버스 옆에 서서 어깨를 축으로 양 팔을 차례로 휘두르는 방법이다. 결과물이 마치 하트 모양으로 나와 ‘하트 그림’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NFT 작품 구매자가 캔버스 색, 붓, 획의 색 등을 고르면 이건용 아바타가 76-3번 방식으로 신체드로잉 퍼포먼스를 벌이고, 그 결과물이 유일무이한 NFT 작품이 된다. 신체 구조의 영향 하에서, 신체가 가지는 움직임의 논리가 평면에 구현된다는 이건용 작품의 기본 원리를 유지하면서도, 대중이 작품에 상당 부분 참여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열쇠말은 ‘소통’이다. 그는 원화와 NFT 작품 중 무엇이 더 가치가 높냐는 질문에 “원화는 이건용 혼자 그렸다지만, NFT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다. 그것을 사는 사람이 참여하고 그러기 때문에 가치가 더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로 NFT 작품에 담은 소통의 의미를 강조했다. 대중이 캔버스나 붓, 색을 선택하게 하자고 제안한 당사자도 작가 자신이다. NFT 작품 제작 계기에 대해 “내가 지구촌에 있는 사람들과 내 예술을 통해서 대화할 수 있다면 (NFT와 같이) 무엇이든 찬성하고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NFT에 대한 생각을 처음으로 드러낸 적이 있다. “늘 매체와 방법론의 혁신을 즐겨왔기에 최근 미술계 안팎의 핫이슈인 NFT를 곰곰이 연구하고, 또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상상해보고 있었다”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밝힌 바 있다. 그 상상의 윤곽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 미술의 세계화
이 화백이 NFT 작품 구상을 밝힌 이 자리는 서울 삼청동 화랑가의 메이저 상업 화랑이자 한국 근현대 작가·작품들과 50년 역사를 걸어온 갤러리현대가 NFT사업 진출을 본격적으로 선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NFT사업을 벌일 새로운 회사 에이트(AIT)를 설립했으며, 에이트가 디지털아트NFT플랫폼 에트나(ETNAH)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에트나에서 예술성이 검증된 NFT 작품을 선정해 전시하고 거래한다는 것이다. 현재 대표적 NFT 거래 플랫폼인 오픈시, 클립드롭스에서 누구나 작품을 올리고 거래하는 것과는 다른, 큐레이션 사이트인 셈이다. 5월 베타버전을 선보이고 8월 정식 론칭할 계획이다.
도 대표는 이날 25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에이트 설립의) 근본 시작점은 1990년대 미국 유학 때 백남준 선생님을 모시면서다. 1995년쯤 백 선생님이 ‘네가 어른 되면 네 엄마처럼 벽에 거는 그림을 그려서 팔 수 없는 시대가 올 거다’라고 했다. ‘왜요?’ 하니, ‘너 때는 모든 벽이 전부 스크린으로 덮일 거다’ 하셨다. 디지털 자산이 미래엔 지금의 현대미술과 동급이 될 거라 확신한다.” 도 대표는 현대화랑의 설립자 박명자 회장의 아들이다.
도 대표는 이날 이건용 외에도, 김환기의 뉴욕시기 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Ⅳ-70 166’와 이중섭의 ‘황소’ NFT버전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국민화가 박수근을 비롯해, 이승택, 곽인식, 영국 개념미술가 라이언 갠더, 문경원&전준호 등 현대미술가 작품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도 대표가 내세운 NFT 미술의 키워드는 ‘대중화’와 ‘한국 미술의 세계화’다. 이건용 화백의 NFT 보디스케이프도 1000개, 1만개를 하게 될 수도 있고, 가격도 비싸지 않을 것이라며 “컬렉터블할 것”이라는 구상을 밝혔다. 이중섭의 황소 NFT가 팔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유저들이 접속하는 메타버스, 또는 전세계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NFT 플랫폼에서 세계인들에게 손쉽게 노출되고 알려지면서 “교육된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런던의 테이트모던, 뉴욕의 구겐하임에 1년에 전시 보러 입장객 몇 명이 가는가. 1000만명도 못 간다. 각 메타버스 플랫폼들에는 하루에 적게는 1000만명, 많게는 3000만명이 접속한다. 그중 0.0001%만 이 그림을 봐도 하루에 최소 1만명이 보고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NFT가 난립 중인 가운데, 대표적인 기성 화랑의 진출이 끼칠 영향이 주목된다. 지금까지는 암호화폐 거래를 위해 어거지로 만들어진 것이 NFT 아트라는 회의적 시각부터, 기존 질서를 재편할 새로운 장이라는 시각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대중은 없고 작가만 있는 좁은 시장이라는 인식, 예술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인식, 자본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가상화폐의 ‘도안’에 불과하다는 비관론적 비평도 있었다.
도 대표는 이날 △미술사적 의미를 갖춘 디지털 아트를 선보일 것 △현실세계에서 인정받은 작가일 것 △작가를 위한 플랫폼을 지향할 것 △작가가 저작권과 저작인격권을 온전히 보장받을 것 △2차시장 거래 시 10% 로열티를 작가에게 보장할 것 등 운영방침도 밝혔다. 에이트 측은 이 기준을 두고 “새로운 디지털 세상의 규칙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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