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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과거사 갈등… “새 정부 대응 상설기구 만들어야” [심층기획 - 韓·日 ‘역사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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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3-19 14:00:00 수정 : 2022-03-19 11: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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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추진 논란

日, 조선인 강제동원 시기 제외 ‘꼼수’
세계무대서 ‘역사왜곡 굳히기’ 의도
韓·日 정부, TF 만들어 외교전 예고
일각 “日 왜곡 실태 널리 알릴 기회”

역사관련 분쟁, 부처마다 역할 달라
특정 사안 부각되면 사후대응 급급
강제동원委 활동 끝나 구심점 상실
중장기 대응할 ‘컨트롤타워’ 갖춰야
일본 사도 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서 메이지 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사도=연합뉴스
역사는 반복된다. 과거사를 둘러싼 국가 간 ‘역사전쟁’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는 일본과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데, 일본 정부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왜곡하는 방식으로 일관해 해결이 쉽지 않다. 그동안 교과서 등을 통해 자국민을 대상으로 역사 왜곡을 시도했던 일본 정부는 이제 세계시민을 상대로 왜곡된 역사를 굳히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것 역시 이런 의도가 담겼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내각은 지난달 1일 사도광산의 2023년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추천서를 제출했다.

 

등재 시도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강제노역 등이 있었던 기간을 제외하는 ‘꼼수’를 부려 논란이 됐다. 한·일 정부는 모두 사도광산 등재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만들며 외교전을 예고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즉각적인 대응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계속될 역사전쟁을 위한 중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관련 법안을 정비하고, 반복될 역사전쟁에 대비할 상설 기구를 마련하는 것은 조만간 출범할 새 정부 몫이 될 것이다.

◆새 정부에 ‘역사전쟁’ 대응 상설 기구 필요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국가 간 역사갈등 해결을 위해 지속적이고 일관적인 대응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사도광산 등재 문제 역시 예견됐음에도 우리 정부의 대응이 안일했다는 것이다. 사도광산은 2010년부터 일본의 세계유산 추천 잠정목록에 올라와 있던 만큼 미리 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우리 정부엔 강제동원 문제에 대응할 기구나 체제가 마땅치 않다. 기존 강제동원 진상규명 관련 기구였던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강제동원위)는 2015년 중단됐고, 강제동원위 재구성 등이 포함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명수 의원 등 10인)은 수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3일 세계일보에 “역사 관련 분쟁은 단순히 특정 정부 부처의 업무가 아니다. 각 부처마다 제각기 역할과 업무가 달라 컨트롤타워가 없다면 전체적 시각으로 대응하는 것은 역부족이다”라며 “그래서 매번 사전대응이 아닌 특정 사안에 대한 사후대응만 해왔던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새 정부는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차원에서 역사바로세우기와 역사 분쟁을 해결할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관련 부처와 기관들이 큰 틀에서 중장기 계획을 모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혜경 일제 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역시 같은 날 통화에서 상설 전담기구 마련, 국제 학술연구 네트워크 구축, 유네스코 전문가 양성 등을 역설했다. 정 위원은 “사도광산뿐 아니라 강제동원 전반으로 이해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강제동원위원회가 2015년까지 자료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그게 없으니 자료를 찾는 데만도 불필요한 노력이 필요하고 조사 결과물을 축적할 수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강제동원 특별법 개정안이) 민주당에서 반대해서 심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정파적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역사라고 하는 큰 틀의 문제로 생각해달라”고 호소했다.

정 위원은 또 “국제적인 학술 네트워크를 통해 한·일 관계에 국한하지 말고 2차 세계대전을 겪은 국가들과 함께 보편적인 입장에서 강제동원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면서 “게다가 우리나라는 국력에 비해 유네스코 관련 전문가가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역사 갈등이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민간교류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일부 정치인들이 문제가 있는 것이지 일본 국민은 내용을 잘 모르는 채로 ‘왜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유네스코 등재만 하려고 하면 화를 내고 발목을 잡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제안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 때까지 운영했던 한·일 역사 공동위원회처럼 서로를 이해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가능성은

사도광산에서 일어난 조선인 강제동원은 사실이며 빼놓을 수 없는 역사다. 1939년 2월부터 사도광산에서 조선인 약 1200여명이 강제노역에 동원됐다는 사실은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된다. 사도광산이 속한 니가타현이 1988년 펴낸 ‘니가타현사 통사편8 근대3’에는 “쇼와 14년(1939년)에 시작된 노무동원 계획은 명칭이 모집, 관 알선, 징용으로 바뀌었지만, 조선인을 강제적으로 연행한 사실은 같다”고 기록돼있다. 국제노동기구(ILO) 전문가위원회가 1999년 3월 펴낸 ‘연차보고서’에도 “본 위원회는 이러한 비참한 조건에서 벌어진 일본의 민간 기업을 위한 대규모의 노동자 징용은 강제 조약 위반이라고 판단한다”고 나온다.

이를 의식한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에서 조선인 강제동원이 있었던 일제강점기 시기를 빼고 에도 시대(1603∼1867)로 한정해 유네스코 등재 대상을 축소했다. 2020년 3월 일본 니가타현의 세계유산 잠정목록 기재 자산 준비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사도광산의) 가치를 전통 수공업에 기반한 생산 시스템에 한정해 기계화 후(근대)의 광산 유구는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돼 있다. 역사의 일부만을 취사선택하는 행위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 심사의 중점 사안인 진정성(authenticity)과 완전성(integrity)에 명백히 반하는 시도다. 도쿄신문은 지난 4일 “역사의 일부만 보여주는 추천으로는 국제사회의 이해를 얻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2015년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1910년까지로 한정해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던 사례가 있기에 사도광산 역시 등재가 불가능하진 않다. 당시 일본은 ‘하시마’(군함도)가 포함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며 조선인 강제동원 등 ‘모든 역사’를 전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의 경고를 받은 일본 정부는 올해 12월1일까지 이행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지난해 7월 새로 도입된 세계유산협약 운영지침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규정은 다른 국가와 잠재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 등재 신청 전에 대화를 충분히 하도록 돼 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유네스코가 대화를 중시하고 있다”면서 “갈등이 있는 경우 등재 여부 판단을 피할 수도 있다”고 썼다. 우리 정부도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등재에 대해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의 반발도 일본에 부담이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를 두고 “일본은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9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사도광산 관련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며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잔학 행위, 금을 캐기 위해 식민지화한 국가의 많은 사람에게 고된 노역을 시킨 사실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는지 원칙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위기는 기회, 역사 바로잡고 알려야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왜곡된 역사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선인 강제노역 등이 포함된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가 세계유산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나쁠 게 없다는 의미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일본의 강제노역 역사를 전 세계에 제대로 알릴 좋은 기회로 삼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외 유력매체 등을 통해 “문화유산의 전체 역사에서 부정적인 기억과 논란이 되는 대목은 숨기고 일부만 부각한다면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는 일본의 역사 왜곡을 알리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반크는 우선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알리는 전 세계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센터에 일본의 사도광산에 대한 정보와 어떻게 역사 왜곡이 이뤄졌는지 알리는 자료를 보낼 계획이다. 한류로 한국에 대한 호감이 높아진 전 세계 초·중·고교 청소년과 해외 200개 언론을 대상으로 침략 역사를 세탁하는 일본의 실태를 홍보한다.

강동진 경성대 교수는 최근 동북아역사재단 사도광산 학술세미나에서 “세계유산 가운데 시간과 시기를 한정해 해당 시대의 산업 특징을 강조하는 유산은 10여점 있다”며 벨기에의 스피에네스 플린트 광산, 파푸아뉴기니 쿠크 농경지, 네덜란드 싱켈 운하 내 암스테르담 원형 운하지역 등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등재 근거가 한 시대에 국한되거나 강조됐음에도 불구하고, 탄생에서 소멸에 이르는 전 과정이 정확하게 설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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