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먹거리 여정 낱낱이 알려줘
먹거리 넘쳐나는 풍요로운 시대
고기냐 채소냐 선택의 문제 넘어
탄소중립 시스템 만드는게 중요
탄소로운 식탁/윤지로/ 세종서적/ 1만8000원
수백만 명이 유튜브 ‘먹방’ 채널을 구독해서 보는 나라, 해산물 섭취 세계 1위 및 돼지고기 소비량 세계 2위인 국가, 심지어 인사를 할 때조차 “밥 한번 먹자”거나 “밥은 먹고 다니냐” “식사는 하셨느냐”라고 끼니를 걱정하는 사회, 먹는 것에 진심인 대한민국의 웃픈 자화상이다.
먹는 것에는 이토록 진심임에도, 먹거리가 밥상에 오르는 과정이나 식사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이나 역사성에는 놀라울 만큼 무관심하다는 것 역시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유르겐 하버마스의 주장대로, 관심이 인식을 낳고 인식은 다시 관심과 애정을 낳는다면, 반대로 무관심은 무지를 낳고 그 무지는 다시 혐오라든가 알 수 없는 야만이나 부조리를 낳을 텐데 말이다.
다행히도, 최근 대한민국에서도 기후위기 이슈가 서서히 부상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기후위기를 이야기하고, 산업 각 방면에서도 전문적인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미흡하지만, 정부 역시 2020년 5월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 시대에 온실 가스나 탄소중립 문제와 먹거리 문제를 비범하게 연결시켜 취재 연구한 책이 나왔다. 대한민국 대표 환경기자인 저자는 각종 과학적 데이터와 함께, 데이터 너머의 구조와, 풍성한 실제 현장의 목소리까지 종합해 식사와 먹거리 속에 담긴 기후위기의 비의와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책은 먼저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온실가스와, 온실가스의 대표 선수인 탄소가 무엇이고, 왜 주목해야 하는지부터 차근차근 설명한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복사에너지를 받고 지구 역시 우주로 복사에너지를 내보낸다. 그런데 대기권 주변을 서성이며 지구가 내보내는 복사에너지의 길목을 가로막고 통행료를 받는 ‘동네 깡패’ 같은 녀석들이 바로 온실가스다. 온실가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산화탄소이고, 메탄과 아산화질소 등이 뒤를 잇는다. 이들 온실가스가 바로 지구 공기를 데우면서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를 초래한다.
저자는 온실가스가 지구를 데운다는 것은 더 이상 가정이나 묘사, 합의가 아닌 분명하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걱정하는 마음이나 구호만으론 충분하지 않다고, 이제 실질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온실가스를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해 식사와 먹거리 문제에 프리즘을 댄다. 세계식량기구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온실가스의 20%가 먹거리를 키우는 일에서 발생한다. 더구나 공급망이나 소비 활동 등 농장 밖 배출량까지 감안하면 음식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37%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만큼 식사와 먹거리가 온실가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온실가스의 정체에 이어 왜 밥상 위를 주목하게 됐는지까지 규명한 저자는 이어서 고기와 채소, 과일, 해산물 문제를 차례로 살펴본 뒤 취향의 문제까지 차례차례 점검한다. 그러면서 고기냐 채소냐의 선택을 강요할 게 아니라, 고기든 생선이든 과일이든 곡식이든 어떻게 시스템 자체를 탄소 중립으로 바꿔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더 현실적인 질문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나는 노력하는데, 노력하는 ‘나’들이 모여 기후악당이 되는 나라”라는 모순을 없애기 위해선 ‘나’의 노력들을 제도화하고 시스템 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저탄수화물+고지방’의 ‘저탄고지’ 말고 ‘저탄소+높은 지식’의 ‘저탄고지’ 밥상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작은 것에만 분노하는 현대인들에게 식사와 먹거리까지 기후변화의 프레임을 들이미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염증도 적지 않을 것이다. 볼멘소리는 “먹는 것은 건드리지 말자”거나 “밥도 편하게 못 먹나”부터 시작해서 “난 태어날 때부터 고기를 좋아했다”, “여태 이런 입맛으로 길들여졌는데 어떻게 바꾸나”까지 다양할 것이다.
그럼에도 식사나 먹거리 역시 시간과 장소, 사회적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고려시대의 밥상과 조선시대의 밥상, 오늘날의 밥상이 다르고, 알제리의 밥상과 핀란드의 밥상, 한국의 밥상이 다르듯이. 식사나 먹거리 문제 역시 사회 역사성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기후위기 시대의 먹거리 전환이라는 이슈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모두 고기를 끊자’고 말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살던 대로 살자’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나침’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소와 닭, 돼지가 소불고기, 치킨, 삼겹살의 모습으로 우리 식탁에 오를 때까지 인간을 제외한 모두, 그러니까 지구와 동물에 얼마나 부담을 안겼는지 말이다.”(81쪽)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