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 10일 권순일 전 대법관에게 공문을 보내 “사법부 최고위직인 대법관까지 역임했음에도 현 상황에서 변호사 개업을 한다면 법조계 전체에 대해 국민적 비난이 따를 것”이라며 변호사 등록 신청 자진 철회를 재차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26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변호사 등록을 신청한 권 전 대법관이 입장을 바꾸지 않자 또다시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변협이 전직 대법관을 향해 대놓고 변호사 개업을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었던가. 믿기지 않는 얘기다.
자진 철회 사유로 대한변협은 “귀하의 사건 수행에 대해 공정한 진행에 대한 의심과 전관예우 의혹이 뒤따를 수 있다”고 했다.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권 전 대법관은 2020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는 데 ‘캐스팅보터’ 역할을 했다. 이 대표는 항소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아 당선 무효 위기에 처했으나 이 판결을 통해 혐의를 벗었다. 경기도지사직을 유지한 것은 물론, 대선에도 출마했다. 권 전 대법관은 당시 이 재판을 전후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8차례나 만난 사실이 드러났다. 대법관 퇴임 직후에는 화천대유에서 10개월간 월 1500만원의 고문료를 받은 것이 확인돼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됐다.
자신을 둘러싼 이런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변호사 등록을 서두르는 모습은 전직 대법관의 합당한 처신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데도 그는 변협의 자진 철회 요구에 일절 답하지 않고 버티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직 중 위법 행위로 기소되면 변호사 등록이 거부될 수 있는 만큼, 어떻게든 변호사 등록을 강행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에게 염치라는 게 있나 싶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권 전 대법관 관련 의혹이 세상에 알려진 지 1년이 지났지만 관련한 수사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권 전 대법관과 함께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거론된 박영수 전 특검 역시 화천대유에서 8개월간 고문료로 월 1500만원을 받았지만 검찰은 얼마 전 그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을 뿐이다. 시간 끌기를 통해 세간의 관심이 멀어지기를 기다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동안 법조인을 상대로 한 수사는 늘상 봐주기로 흘렀다. 칼자루를 쥔 사람끼리의 관행이었다. 이런 관행이 만연하면 사법부는 멍들게 되고, 사회를 지탱하는 법치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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