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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가는 말한다 “여성이여 용기를 갖고 나아가라, 당당하게”

입력 : 2022-12-01 20:58:03 수정 : 2022-12-01 20: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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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 로이·한영수 개인전

로사 로이 ‘러키 데이스’
독일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대표 화가
능동적 주체로 여성을 캔버스에 담아
카세인의 화려한 색채로 표현력 더해

한영수 ‘연분홍 치마가…’
전후 폐허 시기 살아낸 한국여성 포착
참담의 대상화 아닌 회복기 활기 담아
편견 깨부수는 여성의 당당함 보여줘

할 수 있는데도 머뭇거린다. 승리하고도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성취의 월계관을 쥐고도 주춤하는 소녀 곁에서 손을 잡아주는 이는 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저 비슷한 체구의 또 다른 여성이다. 이 여성은 황금빛 영광과 명예의 월계관을 든 소녀를 격려하면서 끌어준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이 조력자 표정은 유독 더 단호하다. 두 여성의 동세(動勢)는 머지않은 파란 희망의 목적지에 금방이라도 닿을 듯 극적이다. 두 여성을 그린 그림의 제목은 모성일까 자매애일까 연대일까 아니면 내면의 또 다른 나일까. 둘의 관계는 관객의 해석에 맡기며 작가는 조금 다른 제목을 붙였다. 제목은 ‘누어 무트(Nur Mut)’. 독일어로 ‘용기를 가져(Have courage)’다.

로사 로이 ‘용기를 가져(Nur Mut)’. 갤러리바톤 제공

시선마저 폭력이 되곤 했던 여성에게 정반대로 응원에 찬 시선을 보내는 전시들이 동시에 열리고 있다. 독일, 한국 작가가 각각 서울 미술 중심지인 한남동과 삼청동에서 펼치고 있는 두 전시에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한마음이 된 작품들이 공명한다.

◆라이프치히에서 온 화가 로사 로이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에 위치한 갤러리바톤에서 독일 화가 로사 로이(Rosa Loy·64)의 개인전 ‘러키 데이스(Lucky Days)’가 한창이다. ‘누어 무트’를 비롯해 신작 14점을 선보인다.

로사 로이는 독일 구상화 작가군인 ‘신(新)라이프치히 화파’의 대표 화가다. 30여년 작품활동을 했지만 최근 여성 작가들이 재평가되면서 특히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로사 로이 작가. 김예진 기자

작가가 캔버스에 담는 소재 역시 주로 여성이다. 작품 속 여성들은 자신 있고 능동적인 주체로 그려진다. 작가가 사용하는 독특한 재료인 카세인으로 화려한 색채가 유독 깊이 있으면서도 부드럽게 표현되고, 이 색채 속에 유영하듯 여성들이 배치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누어 무트’에 대해 “정글 같은 시대에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갤러리 측은 “로사 로이 작품 속 여성들은 화면의 중심을 지배하며 화려한 색조의 의상과 확신에 찬 표정의 인물들”이라며 “삶의 주체로서의 이상적인 사회를 위해 상조(相助)하는 여성에 대한 작가의 동경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최근 여성 화가 재평가 움직임에 대한 질문에 “최근 몇 년간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며 “고령에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성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어린 작가들에게도 용기를 북돋워 준다고 생각한다. 너희도 나름대로 개성을 가지고 자기 스타일을 발전시키는 것에 대해 용기를 갖고 나아가라고, 그게 우릴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용기와 격려, 행복을 키워드로 한 이번 전시 작품들을 선보이기 며칠 전, 마침 한국에서는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다. 이런 비극 속에서 예술이 해야 할 일이 무얼지 묻자 그는 유독 장시간 답변했다.

“한국에 오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풀리고 드디어 편히 여행할 수 있겠구나 하고 들떴는데 비극적 사건을 접했다. 함께 슬퍼했고, 아픔에 공감한다. 미술이나 음악, 문학 등 예술은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위로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고통이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조금씩 그림 앞에서 우리가 같이하고 있음을 느꼈으면 한다.”

◆회복기 여성의 당당함이야말로 진짜 역사

또 다른 전시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백아트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1세대 사진가 한영수(1933∼1999)의 개인전이다. ‘한영수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란 전시명으로 약 30점을 선보이고 있다.

한영수 ‘서울 명동’(1956∼1963). 백아트 제공

분단 전, 경기도였던 개성에서 태어나 해방과 6·25전쟁을 겪고 199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동료 사진가들에게 “한국에 들어오는 신식 카메라를 제일 먼저 사고, 구식이 된 카메라를 제일 먼저 버린 사람”으로 회고되는 인물이다. 해외에서 유입된 잡지와 코닥 사진 연감을 보고 연구하며 사진을 익혔다. 리얼리즘 사진 연구회 ‘신선회’를 만들어 당대 사진가들과 사진예술을 이끌었고, 광고 사진으로도 성공해 대중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반도체가 등장하는 삼성전자의 광고, 동트는 새벽을 배경으로 종을 치는 종근당 광고 등은 지금도 사람들 뇌리에서 잊히지 않고 있고, 한때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광고 사진이 없다는 말도 나왔다.

그의 광고들이 잊히지 않는다면, 이번 전시에 나온 사진 작품들은 믿기지 않는다. 1950∼1960년대, 전후 처참한 폐허가 떠오르는 시기 한국 풍경, 특히 여성들이 깜짝 놀랄 세련됨과 모던함으로 표현돼서다. 이번 전시 개막과 함께 발간된 동명의 사진집에 글을 기고한 국내외 기획자들이 더 높이 평가한 가치는, 그가 단순히 세련됨을 추구한 인위적 결과로 모던함을 담아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 큐레이터 버지니아 문은 “한영수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 현실을 총체적으로 포착했다. 한국은 희생자들의 나라도 아니었고, 또한 영웅들의 나라일 필요도 없었다. 사람들은 하루하루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한영수를 매료시킨 것은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표출되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썼다.

한영수 작가. 한영수문화재단 제공

한영수는 생전 사진집 ‘삶’(1987)을 펴내며 “해방의 기쁨도 잠깐, 어느 날 갑자기 이 땅에 38선이 그어지더니 1950년대는 엄청난 비극과 함께 시작되었다. 전쟁이 한창일 무렵, 나는 현역의 신분으로 최전방을 옮겨 다니며 이러한 비극을 체험해야 했고, 숱하게 많은 현장을 목격하며 분노에 떨어야 했다. 참담한 기억들이 생생한 가운데 나는 군 복무를 마치고, 전화(戰火)의 그을음이 채 가시지 않은 생활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당연한 사실이었다”고 썼다. 이 서문엔 ‘회복기의 사람들’이란 제목을 달았다. 전후 한반도의 참혹함과 가난을 대상화하는 서구 또는 외부인의 포르노적 시선을 후대 한국인도 은연중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리얼리즘’ 사진가가 사진 찍어 남긴 것은, 정반대로 ‘회복기’의 활기였다.

이를 발굴한 이는 딸 한선정(53)씨다. 한영수의 다섯 자녀 중 유일하게 사진을 공부한 한선정씨는 한영수문화재단을 이끄는 대표다. 아버지가 남긴 수천 컷 필름 가운데 여성을 피사체로 한 다채로운 사진을 발견하고 이번 전시를 열었다. 한영수의 시선으로 담은 회복기의 여성은 당당했다. 신문 읽기에 빠져 있는 여성(‘서울 명동’)의 모습 단 한 장만으로도 관람객에게 강렬하게 다가와 편견을 깨부순다.

한선정 대표는 ‘여성’이란 주제로 별도의 사진집과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영수가 남긴 흑백 다큐멘터리 사진들 속에는 다양한 장소에 있는, 다양한 나이와 다양한 작업의 여성들이 기록돼 있다. 이 여성들은 때로 놀라울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고 심지어 세련되기까지 하다. 나는 이런 사진들을 처음 본 순간부터 항상 궁금증을 가져왔다. 이 여인들은 누구인가. 한영수가 그의 카메라를 통해 선택한 이 순간들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그는 이내 질문을 벼린다. “당시의 여성들은 왜 이런 모습으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는가.” 그렇게 이번 전시는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여성들’에게 해방구가 돼준다.

각각 12월17일, 내년 1월18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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