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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무기상’과 농구선수 맞바꾼 미국…거센 후폭풍 [이슈+]

, 이슈팀

입력 : 2022-12-12 22:00:00 수정 : 2022-12-13 04: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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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화·우파 반발…“국가 제창 거부한 농구선수 구출할 가치 없어”
“미국인 납치 좋은 사업이라는 메시지 줄 것”…미국내 비판 거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끌고 가는 방식”…푸틴식 협상 먹혔나

미국 정부가 죄수 교환을 통해 러시아에 수감됐던 여자 농구선수를 귀환시킨 것을 두고 후폭풍이 거세다. 마약 혐의로 투옥 중인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선수 브리트니 그라이너를 데려오기 위해 미국이 풀어준 인물이 ‘죽음의 상인’이라 불리는 악명높은 글로벌 무기상 빅토르 부트이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아프리카 등 분쟁지역의 무기 밀매에 깊숙이 관여한 부트는 2008년 태국에서 체포돼 미국 감옥에 수감됐다. 무기상을 다룬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로드 오브 워’(2005년) 줄거리 상당 부분이 그와 관련된 일화로 알려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 여자프로농구선수 브리트니 그라이너(오른쪽). AP뉴시스

미국에서는 보수층을 중심으로 미 해병대 출신이자, 기업 보안 전문가 폴 휠런 대신 스포츠 스타 그라이너를 빼내왔다는 점을 꼬집기도 했다. 그라이너와 함께 교환 논의가 이뤄졌던 휠런은 2020년 러시아에서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징역 16년을 선고받았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에 훨씬 더 오랫동안 부당하게 억류된 미 해병대 폴 휠런은 어디에 있느냐”며 “참전용사 위에 유명인사?”라고 비판했다.

 

◆무기상 풀어주고, 마약 밀반입 농구선수 구했나…비판 고조

 

미국 여자프로농구 피닉스 머큐리 팀 소속 그라이너는 올림픽 금메달을 두 번이나 목에 건 스포츠 스타다. 오프시즌 동안 러시아 팀에서 활동하던 그는 지난 2월 휴가를 마치고 러시아에 입국하다 공항에서 마약 밀반입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합법적인 의료용 대마초라고 주장했으나, 징역 9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공화당과 우파 인사들은 그라이너가 “국가 안보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구출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인물”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앞서 그라이너가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으며,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프로리그 선수들이 경기 중 국가 제창을 거부하는 대열에 동참하기도 하는 등 정부 비판에 앞장서왔다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그라이너를 ‘공개적으로 우리나라를 증오하는 농구선수’라고 지칭하면서 바이든 정부가 악명 높은 러시아 무기 거래상과 그를 맞바꾼 것은 “너무나 멍청하고 비애국적인 수치”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EPA·AFP연합뉴스

폭스 뉴스의 정치평론가인 토미 라렌은 트위터 글에서 “미국이 그녀를 석방하기 위해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한 지금 브리트니 그라이너가 서서 애국가를 부를지 궁금하다”며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징징대는 유명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 이득인 것 같다”고 비꼬았다. 공화당의 스콧 페리 하원의원은 “(바이든이) 총을 밀수하고 미국인들을 쏘는 것을 돕는 적과 마약을 밀반입하고 농구공을 쏘는 미국인을 맞바꿨다”며 “그러는 사이에 전직 미 해병대원 폴 휠런은 러시아 감옥에서 썩어간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여행하는 모든 미국인들 교환 상품 될 것”

 

이번 협상 결과가 잘못된 선례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망명한 러시아 출신 언론인 안드레이 솔다토프는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농구선수를 무기상과 교환한 미국 정부의 이번 결정은 선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바이든 행정부의 거래가 ‘교환’이 아닌 ‘항복’이라고 비난하며 “전 세계 테러리스트와 불량 국가들이 이번 교환을 보고 미래에 다른 미국인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트를 체포했던 로버트 자하리아시에비츠 전직 미국 마약단속국 요원도 BBC와 인터뷰에서 “오늘 교환으로 전 세계를 여행하는 모든 미국인의 등에 표적이 그려졌다. 이들은 (교환) 상품이 됐다”고 강도 높게 이번 교환을 비판했다. 이어 “지금 우리는 미국인의 불법 구금과 납치가 정말 좋은 사업이고 나중을 위해 거래용으로 한 명쯤 남겨두면 아주 유용하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러시아 RU-24 TV가 제공한 영상을 캡처한 사진.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는 무기 거래상 빅토르 부트가 미국에서 석방된 뒤 러시아 비행기 안에서 말하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뉴욕타임스(NYT)는 폴리재단 보고서를 인용해 최근 외국에 부당하게 억류된 미국인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2~2022년 매년 평균 34명의 미국인이 부당하게 억류됐다. 이는 평균 5명이던 이전 10년보다 580% 증가한 수치다. 미국인들은 이란·중국·베네수엘라·시리아·러시아에 구금된 자가 전체의 75%였다.

 

반면 러시아 측은 이번 죄수 교환을 전략적 승리로 평가하며 쾌재를 부르는 모양새다. 러시아의 친러파 의원인 마리아 부티나는 텔레그램에 “러시아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한 것”이라고 환영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그라이너와 부트의 교환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끌고 가는 방식과 닮았다”며 “우크라이나와 서방국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혀 결국 협상을 통해 원하는 바를 성취하려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백악관 “다른 선택 없었다” 진땀 해명

 

미국 백악관은 11일(현지시간) 러시아에 수감됐던 농구선수를 석방하기 위해 무기상을 석방한 것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면서 해명에 나섰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ABC방송 및 폭스뉴스에 잇따라 출연해, “두 사람(그라이너와 휠런)을 모두 빼내기 위해 매우 진지하고 구체적인 제안을 러시아에 했으나 진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커비 조정관은 “여름을 지나 가을에도 계속 러시아와 대화했으며 결국 지난주 마지막 단계에서는 그라이너 대 (러시아 무기상) 빅토르 부트의 문제가 됐다”면서 “부트 대신에 그라이너와 휠런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는 협상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휠런은 ‘간첩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는 휠런에 대해서는 매우 다르게 취급했다”면서 “결국 당장 한 명이라도 집에 데려오느냐 아니냐의 문제였다”고 부연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 AP뉴시스

커비 조정관은 또 죄수 교환 방식으로 무기상 부트를 풀어준 것에 대해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부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게 아니다”라면서 “2029년이면 풀려나게 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부트가 과거에 하던 일을 계속하면 우리는 책임을 묻고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할 것”이라면서 “국가 안보 평가를 진행했으나 어떤 리스크가 있든 이는 관리할 수 있다고 봐서 협상을 타결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백악관은 이번 미·러 포로 교환 중재 과정에서 사우디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와 아랍에미리트(UAE)의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대통령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보도에 대해 선을 그었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 협상에 참여한 국가는 미국과 러시아뿐”이라고 관련 내용을 일축했다. 이번 포로 교환은 UAE 아부다비 공항에서 이뤄졌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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