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걸 그대로 두면 안 되겠어. 이 ‘적(챗GPT)’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겠어. 그래, 한번 호랑이 굴에 들어가 보자.
지난해 연말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가 공개된 뒤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자, 호기심과 궁금증뿐만 아니라 어떤 불안감이나 위기감도 함께 몰려왔다. 인공지능은 과연 인간처럼 창의적인 일도 할 수 있을까.
주위를 둘러봤다. 챗GPT에 대해서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 작가들은 제각각 다른 입장이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국내 작가들의 경우 아직 설왕설래에 그치는 분위기였다.
SF 작가이자 기획자인 윤여경은 좀더 적극적으로 사고해 보기로 했다. 챗GPT를 둘러싼 궁금증과 불안감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분야 출신의 작가들과 접촉했다. IT개발자, 이공계 교수, 기자, 변호사, 북한 이탈 주민 출신, 스포츠인. 그는 이들 6명의 작가들과 함께 각자 인공지능 챗GPT와 협업해 소설 창작에 돌입했다.
스스로 챗GPT를 협업해 소설 창작을 시작했다. 브레인스토밍부터 시작해 아우트라인 짜기를 거쳐 마지막 소설가의 피드백까지. 이 과정을 통해서 SF단편 「감정의 온도」를 써냈다. 작품은 인간의 뇌와 연결된 인공지능 스피커 ‘버디’가 주인공 ‘유진’을 비롯해 인간의 감정과 무의식까지 읽어내면서 인간들을 파멸시키는 무서운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렸다. 「감정의 온도」를 비롯해 이들이 챗GPT를 이용해 집필한 작품 7편은 지난달 앤솔로지 『매니페스토』(네오북스)로 묶여 출간됐다.
‘AI가 이제 합법적인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거짓말로 우리를 웃기고 울리고 설득할 수 있게 됐다. 어떡하지?’ 그는 챗GPT와 소설을 쓰면서 처음 이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고, 「협업 후기」에서 적었다. 마침내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 끝에 챗GPT와 함께 소설을 쓴 뒤 깨달았다.
“어떤 소설이 인간이 쓴 진짜이고 어떤 소설이 AI가 쓴 가짜인지 구별하는 방법 따위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AI는 이제 가짜가 아니다. 현실에 존재하며, 현실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졌으니 그 존재감은 진짜가 됐다. 이 협업은 지금의 AI를 인간의 실제적 동반자로 인정하는, 그래야 함을 깨닫는 과정이었다.”(148쪽)
작가 윤여경은 챗GPT과 협업해 소설을 창작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느끼고 깨달았을까. 그가 생각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윤 작가를 지난 10일 전화로 만났다.
―왜 챗GPT를 활용해 창작을 하게 됐는가. 실제 해보니 어땠는지.
“미국이나 일본 작가들의 경우 다들 다른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 좀 적극적으로 한번 호랑이 굴에 들어가 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각자 다른 경험을 갖고 있는 작가들에게 의뢰했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챗GPT를 사용해보면 다른 것이 나올까 싶어서 였는데, 의미했던 것 같다.(어떤 점이 유의미했는가) 예를 들어서 북한 이탈 주민 출신 작가의 경우 소설은 SF나 판타지 쪽이 쓰기가 쉽다고 하더라. 현대문학은 도시 생활이라든가 우리 얘기를 다뤄야 하는데, 서울 생활을 잘 모르기 때문에 문장 하나마다 굉장히 걸리는 게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타지가 쉬웠는데, 챗GPT를 통해서 해보니 현대 서울의 생활상에 대해 매끄럽게 에피소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하더라. 작가가 아닌 분도 소설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좀 커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소설이 인간이 쓴 소설인지 AI가 쓴 소설인지 구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앞으로 소설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지는 챗봇이 또 생길 거니까 100% 인공지능이 (소설을) 다 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요즘 현대문학은 예전처럼 창작자 중심의 스토리텔링보다는 서사가 있으면서도 레고 블록 같은 느낌이 있어서 충분히 챗GPT로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게다가 소설에 써야 되는 인간의 오류, 그러니까 과학기술의 오류 같은 주제들을 심어주면 충분히 잘 만들 수 있다.”
―인공지능과 인공지능이 만드는 미래는 어떻게 되나.
“올해까진 조금 잠잠하더라도 내년부턴 무시무시하게 바뀔 것이다. 챗GPT는 여태까지 미국이나 영미권 정보를 기반으로 해 스티븐 킹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스타일로만 문장을 썼다. 그래서 국내에선 주로 서사, 스토리텔링만 챗GPT를 활용했다. 하지만 7월쯤 네이버 쪽에서 챗GPT 비슷한 것을 발표하면 우리도 이제 김초엽 작가나 신경숙 작가 문체로 써줘,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챗GPT를 활용해 창작에 나서지 않을까.
“자아실현의 끝판왕은 창작이어서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챗GPT를 활용할 것이다. 그렇게 가는 방향이 맞다. 다만, 크리에이터로 권위도 있지만, 책임감도 갖고 있어야 된다. 자신이 자신의 자유에 대해 책임을 져야 된다. 크리에이터 윤리의식 방향성은 정해진 것 같다.”
―인공지능 시대, 우려되는 지점은.
“인공지능이 문제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만들고 쓰는 사람들이 문제다. 어떤 사람들은 뒤에서 ‘물건’을 팔거나 아니면 어떤 이데올로기를 주장하기 위해서 챗GPT(결과물)를 이용할 수가 있어서 좀 걱정이 되더라. 여태까지 창작자들만 이용했다면, 이젠 창작자가 아닌 정치인이나 기업인들도 이것을 가지고 대중을 이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정치인들은 대중의 정서를 잡기 위해서 프로파간다처럼 쓸 수도 있다.”
―챗GPT가 논문의 주석처럼 결과물에 대한 근거나 출처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거나 못하는 건 큰 문제일 수도 있는데. 인공지능의 윤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먼저 마치 사진을 작은 픽셀로 축소했다가 다시 크게 하면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챗GPT 역시 굉장히 큰 데이터, 디렉터를 한꺼번에 압축했다가 요약하고 창조하는 과정에서 소스나 출처를 밝히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이용자들도 저술 과정에서 챗GPT를 활용했다면 그 과정과 내용을 밝혀야 한다. AI에게도 인간의 양심과 책임감 같은 것을 심어줘야 한다. 인공지능이 무책임하게 레퍼런스나 소스도 밝히지 않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레퍼런스를 정확히 밝힐 수 있도록 프로그램해야 한다. 인공지능에게 인간의 면모를 심어야 한다. 차갑고 양심 없는 인공지능이 되면 안된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쌍방향으로 같이 가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서 중간 지점에서 만나야 된다.”
―현재 인공지능과 관련한 법은 고사하고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조차 없다.
“현재 과학기술이 너무 빨리 발달해서 과학 윤리나 법제가 따라가기 너무 힘든 상황이다. 유엔 같은 인공지능과 관련한 의사결정 집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작가나 저자들 역시 궁금증과 불안 우려를 동시에 갖고 있을 텐데.
“제가 맨 처음 여러 분야의 작가들을 모아서 이것을 적극적으로 실험했던 것은 방향성을 잘못 잡으면 아예 손대지 말자, 그냥 피하자가 돼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린 콘텐츠 시장에서 밀려난다. 우리가 챗GPT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챗GPT를 활용해서 더 많은 콘텐츠를 만들어낼 것이다.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되, 어떻게 제재를 가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의견을 모아가는 게 중요하다. 러다이트 운동처럼, 아예 기술을 저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문학하는 분들 가운데 과학기술에 관심이 적은 사람이 지금도 많이 있고, 일부는 아예 손대지 마라며 굉장히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도 있다. 작가라고 하면 과학기술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대는 과학기술과 예술 창작을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 없다. 심지어 영혼이나 마음조차 과학기술과 연결돼 버렸다.”
―작가나 저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사회도 변화해 가고, 150년 정도의 역사가 있는 SF나 현대문학도 계속 변화해 간다. 인간은 더 사이보그화하고 로봇은 더 휴머노이드화하는 쪽으로 같이 갈 것이다. 창작품들이 대량 생산될 것이고, 여러 방법으로 오용도 될 것이다. 인간 창작자들은 여태까지 인간의 삶 쪽만 생각했다면, 이젠 과학기술 쪽에 좀 더 많은 관심과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과학기술 시대에 과학을 빼고 우리의 삶을 상상할 순 없다. 과학기술이 이미 우리 삶에 들어왔기 때문에 과학기술이나 그 오용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이제 일종의 사이버가 됐다고 생각하고 거기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는 그러면서 작가들이 챗GPT를 비롯해 인공지능를 만드는 기술자와 기업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로그래머들이 윤리와 법제 등 다양한 것에도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프로그래머들이 인공지능을 너무 자기들 멋대로 만들어 인간 삶과 너무 달라지도록 하면 인간들은 갈 길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인간과 인간 작가들이 기술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쳐야 한다.”
SF작가 윤여경은 2014년 황금가지의 타임리프 공모전에서 단편 「러브 모노레일」로 우수상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했다. 소설집 『금속의 관능』, 장편소설 『내 첫사랑은 가상 아이돌』을 각각 펴냈다. 단편 「세 개의 시간」으로 제3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했다. 작가컨설팅 업체 ‘퓨처리안’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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