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지난 4월 위례 트램 착공시켜
광역·기초단체 20여 곳서 도입 속도전
건설·운용비 지하철의 20% 수준 장점
배터리·수소전기 등 운용 방식도 다양
유지 비용 등 경제성 입증은 걸림돌로
위례도 민자 유치 어려워 공기업 분담
인천 송도 트램은 예타 대상서도 제외
시민단체선 “단체장 환심용 사업” 비판
호주 멜버른 138년 운행… 年 2억명 수송
노선 연장 때마다 수백 차례 시민 공청회
日 75년 만에 새 노선… 역세권 효과까지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도로를 달리는 친환경 교통수단인 트램 건설에 앞다퉈 뛰어들었지만 실효성을 두고 명암이 갈리고 있다. 경제성과 무공해, 지역상권 활성화 등을 내세웠으나 빈곤한 정치적 상상력이 낳은 대형 개발사업일 뿐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트램은 기존 도로 위에 레일을 깔아 달리는 노면전차로 지하철의 5분의 1, 경전철의 3분의 1에 불과한 건설·운영 비용이 강점이다. 지난 4월 서울 위례 트램이 착공하면서 1968년 이후 57년 만에 국내에서 트램이 부활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16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서울, 경기, 대전, 울산 등 20여곳의 크고 작은 광역·기초단체가 트램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 57년 만의 국내 노면전차 부활 전망
이미 궤도에 오른 곳도 있다. 서울 위례 트램은 2025년 9월 개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지하철 5호선 마천역과 수인분당선 복정역을 잇고, 지선으로 수도권 전철 8호선 남위례역에 이르는 5.4㎞ 노선이다.
경기 화성시는 동탄신도시와 수원 망포역을 잇는 화성 트램(동탄 도시철도) 건설을 최근 공식화했다. 동탄신도시를 중심으로 병점과 수원 망포, 오산역을 X자로 잇는 노선으로 2027년 개통이 목표다. 총연장 34.2㎞, 정류장 32개에 사업비만 9000억원에 달한다.
울산시가 신복로터리와 태화강을 잇는 10.99㎞ 구간에 세계 최초로 도입하는 ‘수소트램’(도시철도 1호선)은 최근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사업비는 3200억원 규모다. 울산은 수소 배관이 촘촘히 연결돼 수소트램 도입에 유리하다.
부산·대전·인천시 등 다른 광역 지자체들도 트램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 도시들은 모두 무가선 방식을 채택했는데, 세부적으로 배터리·슈퍼캐퍼시티·수소전기 등 운용방식이 제각각이다. 위례선은 배터리식인데 주행거리가 길수록 고중량·고가의 배터리가 필요하다. 화성시는 지난 6월 역 정차 때마다 수시로 급속 충전하는 슈퍼캐퍼시티 방식으로 확정했다. 전력공급설비 비용이 더 들지만 긴 노선을 운영하기 쉬운 점을 고려했다. 해외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한계다.
수소연료전지와 기존 전기 배터리를 조합한 수소전기식은 가격이 기존 배터리식보다 50%가량 비싸지만 운행 거리는 6배 가까이 길다. 수소 인프라·충전소 설치비용이 비싸고 상용화되지 않았다는 게 단점이다. 국내에선 실증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곳곳에선 잡음도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램 도입 이후 수년간 대다수 지자체가 적잖은 적자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한다. 업계 관계자들도 미래에 수반될 유지비용 등을 복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앞서 지자체들이 민간자본을 유치해 만든 경전철은 해마다 수백억원가량의 적자를 내며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2011년 개통한 부산 김해 경전철은 수요 예측의 17%만 채우며, 매년 지자체가 수백억원대 최소운영수입 보장금을 민간사업자에게 물어줬다.
◆‘정치적 상상력’, ‘대형 개발사업’ 비판
도입 각축전과 달리 경제성 입증은 ‘암초’로 작용한다. 기재부 예타에서 비용대비편익(B/C) 1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어 공기업 등의 보조를 받거나 예타를 면제받기도 한다.
위례 트램도 민간자본 유치를 추진했을 때는 경제성이 부족해 중단됐고, 신도시 건설을 책임진 주택 공기업들이 2600억원의 비용을 분담하며 재개됐다. 춘천·원주·강릉·속초 등에서 트램 건설을 추진 중인 강원도의 경우 경제성 검토 용역만 진행한 뒤 멈춰섰다. 도 관계자는 “구체적 추진계획은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인천시가 추진해온 송도 트램은 지난 8월 기재부 심의에서 탈락해 예타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 예산을 지원받은 지자체도 트램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대전의 경우 정부가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예타를 면제했지만 설계과정에서 공사비가 2배가량 뛰면서 착공이 지연됐다.
부산 남구에선 바뀐 구청장이 트램 사업을 승계했지만 470억원이던 사업비가 자재비 인상 등으로 960억원까지 뛰면서 ‘올스톱’됐다.
대구와 전북 전주시에선 새 시장이 당선되자마자 전임 시장이 주도해온 트램 건설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전남과 제주, 울산에선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전남도는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신구 도심 접근성 개선 등을 내세워 목포 구도심에서 오룡신도시를 잇는 트램을 계획하고 사전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했으나, 일각에선 4000억원대 사업이 적자에 빠질 경우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관광·교통 활성화 효과를 노리는 제주에선 4300억원 넘는 재정 부담 등을 들어 부정적 여론도 나온다.
모범적 사례로 꼽히는 울산에서도 교통문화시민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가 시민공청회를 제안하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지자체의 트램 도입을 우려하는 쪽에선 이 사업을 지자체장들의 화려한 말장난 뒤에 숨은 교묘한 숫자놀음으로 평가절하한다. 녹색당은 최근 논평에서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매번 대형 개발사업 계획이 발표되고 수억원을 들여 용역을 진행한다. 빈곤한 정치적 상상력, 한방에 민심을 얻으려는 잘못된 정치적 상상력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내 트램 도입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온 곽재호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차세대철도차량본부장(무가선트램 국책사업단장)은 “지자체장들이 해외에 나가 (트램을) 한번 둘러본 뒤 단편적 지식에 기대어 노선이나 운용방식을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어디에도 관광 트램 외에는 원형·루프형 노선을 택하는 곳은 없다”며 “연계 교통수단이란 도입 취지를 무시하고 경험 부재, 정치적 결정, 기업논리 등으로 과열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성공한 해외 트램 사례 보니…정치 논리 아닌 시민 수요가 도입 기준
미국이나 유럽, 일본 못지않게 트램의 역사가 긴 곳은 호주 멜버른이다. 세계 최대 트램망을 갖춘 도시로, 250㎞ 노선과 1700곳 넘는 정거장, 25개 노선을 갖추고 있다. 하루 5000번 이상 운행하는 이곳의 트램은 연간 2억명 넘는 시민과 관광객을 태워 나른다.
1885년 개통 이후 세계 최장 노선을 갖춘 간선·지선 공공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멜버른의 트램은 정책이나 법규, 교통방식 등에서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이 도입을 추진하는 트램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오래된 만큼 무가선이 아닌 가선 트램이 활용된다.
전문가들은 국내 지자체들이 멜버른에서 트램과 관련된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 보행자 중심 교통체계 등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노선 연장 때마다 수백 차례 공청회를 여는 등 시민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트램의 역사가 100년을 훌쩍 넘긴 일본에선 최근 75년 만에 새 트램 노선이 들어섰다. 도치기현 우쓰노미야시에서 지난 8월 개통한 우쓰노미야∼하가 노선은 개통 한 달 만에 하루 1만2000명가량이 이용하는 인기 노선으로 떠올랐다. 노선 주변에선 역세권 효과까지 일어나 인구 감소 추세를 거슬러 이곳으로 이사 오는 사람까지 늘었다고 한다.
1950년대부터 고속도로 위주의 교통망 정책을 펴온 브라질도 최근 지하철·경전철 외에 트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룰라 행정부가 다시 들어서면서 민생 인프라 확대를 위해 신규 철도사업을 벌이는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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