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가족, 승소해도 배상 못 받아 ‘대조’
북한에 억류됐다가 2017년 의식불명 상태로 송환된 뒤 숨진 미국인 오토 웜비어(당시 22세·사진)의 유족이 미국 은행에 동결돼 있던 북한 자금 220만달러(약 28억원)를 회수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북한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제기해 승소가 확정된 전시 납북자 등 가족들이 배상금을 받지 못하는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
미국의소리(VOA) 방송 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욕남부 연방지법은 최근 뉴욕멜론은행에 예치된 러시아 극동은행 자금 약 220만달러를 웜비어의 부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극동은행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어기고 북한 항공사와 거래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5월 미 재무부의 제재 대상에 올랐고 뉴욕멜론은행은 극동은행 소유 자금을 동결했다. 2019년 제정된 이른바 ‘오토 웜비어 북핵 제재 강화법’이 제3자 제재(세컨더리 보이콧) 대상 자금에도 피해자들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앞서 웜비어의 유족은 북한 정권을 상대로 미 연방법원에 소송을 내 5억달러(약 6511억원)의 배상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후 유족은 배상금을 실제로 받아내기 위해 미국 은행들에 예치된 북한 동결 자금 등 전 세계의 북한 자금을 추적해 왔다.
한국의 경우 전시 납북자 가족들이 북한을 상대로 낸 손배소에서 이겼으나 배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 당국이 우리 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가운데 원고들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 자금에 대한 추심 소송을 진행 중이다.
2004년 만들어진 경문협은 북한에서 저작권을 위임받아 국내 언론사나 출판사가 북한 저작물을 사용하고 낸 저작권료를 받아 관리한다.2005년부터 북측에 저작권료를 보내다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후 북측으로의 송금을 중단해 이 자금이 매년 법원에 공탁된다. 이를 북한 소유 자금으로 보고 북한 상대 소송의 배상금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가 추심 소송의 쟁점이다.
일단 1·2심은 “북한의 권리 능력을 인정할 수 없고, 경문협과 북한 사이에 합의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원고들의 상고로 현재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원고 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제이앤씨 구충서 변호사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권리 능력이 없다는 것은 경문협이 북한과 저작물 사용료와 관련한 위임 합의를 한 것을 볼 때 자기모순이고, 경문협과 북한 사이에 합의가 없다는 것은 (2008년 전) 사용료를 낸 영수증 등이 남아 있는 것을 볼 때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시 납북자, 국군포로 등) 원고들이 대부분 고령이어서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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