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를 자른 곳에서
파가 또 자랐다
자른 파는
너와 함께 해치웠다
국에도 넣고 밥에도 넣고 세탁기에도 넣고
방바닥도 쓸고 장난감 모빌도 만들었지만
파가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파가 넘치는 집안에서 너는
아이가 크면
수영장이 딸린 펜션으로 놀러가자고 했다
파로 만든 가위를 들고 나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집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문학동네) 수록
●한여진 시인 약력
△1990년생. 2019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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