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의 핵 선제 사용 법제화’를 지적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편향적”이란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의 언급과 관련, 주한 러시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초치해 엄중 항의했다. 정병원 외교부 차관보는 지난 3일 러시아 측에 “진실을 외면한 채 무조건 북한을 감싸면서 일국 정상의 발언을 심히 무례한 언어로 비난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앞서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한국의 윤 대통령이 한 발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겨냥한 공격적인 계획을 흐리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핵·미사일 고도화에 나선 북한 행보와 관련,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책임을 감안하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다.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의 발언은 그 정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만큼 누가 봐도 온당치 못하다. 북한은 올 들어서만 서해 포격에 이어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발사 등으로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폭파쇼’를 벌인 영변 핵시설도 가동 중이다. 이런 행태를 보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반이성적 행태”라고 지적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돌아오라”며 북한을 비판해도 모자랄 판에 핵을 머리에 이고 있는 당사국 대통령이 북한을 비판한 것을 문제 삼는 자체가 어불성설 아닌가.
지난해 9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한층 긴밀해지는 북·러 간 밀착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사고 있다. 북·러 간 ‘상당한 수준’의 무기거래가 있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북한은 앞서 두 차례 실패한 군사정찰위성을 지난 11월 성공시켰고,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피해 현장에선 북한산 포탄이 사용된 흔적이 드러났다. 조만간 북한산 탄도미사일이 사용될 것이란 말까지 나도는 지경이다. 이런 상황이라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의 발언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의 이런 행태는 북한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한·미·일에 맞선 신냉전 구도를 심화하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무리수를 두면 결국 북한 때문에 곤욕을 치를 게 뻔하다. 북한 핵 보유의 길을 터주고 제재를 피하는 뒷문까지 열어준 러시아는 ‘불량 국가’로 낙인찍혀 국제사회의 지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유엔 상임이사국에 걸맞게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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