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알바로 쌈짓돈 마련하며 ‘혼설’ 보내기도
3년째 공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이모(28·여)씨는 올해 설 연휴를 앞두고 물류센터에서 어렵게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잡았다. 7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이씨는 박스를 옮기고 물건을 진열하는 입고 업무에 투입됐다. 이씨가 단기 아르바이트에 나선 이유는 뭘까. “설 명절을 앞두고 빈손으로 고향집을 찾을 수 없지 않냐”며 이씨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아르바이트 당일 이씨는 1시간 안전교육 후 곧장 물류센터에 투입됐다. 창고가 추울까 봐 주머니에 핫팩도 두 개나 챙겼는데 괜한 우려였다. 땀이 쉴 새 없이 떨어져 턱 끝에 맺혔고, 얼굴을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루 8시간을 일하고 이씨가 받아 든 수당은 9만2000원. 단기 아르바이트 덕에 이씨는 설 연휴를 앞두고 사흘간 약 27만원의 일당을 챙길 수 있다. 이씨는 “그래도 어렵게 단기 아르바이트라도 잡아서 쌈짓돈을 마련한 게 어디냐”면서 “아직 취업을 못 해 부모님 얼굴을 제대로 볼 면목이 없지만 땀 흘려 번 소중한 돈으로 고향집에 한우 선물세트를 사 갈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설 명절을 앞두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는 청년이 늘고 있다. 경기침체로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설 명절을 앞두고 쌈짓돈을 마련하고자 단기 아르바이트에 뛰어든 취업준비생이 증가해서다. 여기에 대학생까지 가세해 줄어들 대로 줄어든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는 그야말로 바늘구멍이 됐다.
9일 알바천국이 성인남녀 34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 연휴 계획 조사 결과 62.3%가 단기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54.0%)보다 8.3%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알바몬은 13일까지 설날 알바 채용관을 신설해 운영한다.
특히 올해 단기 아르바이트 구직 경쟁은 취업만큼이나 치열하다. 자영업자들의 줄폐업으로 아르바이트 자리가 크게 줄어서다. 설 명절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취업준비생 김민지(27)씨는 “단기 아르바이트에 구직자가 몰려 올해는 열 군데 지원하면 한 군데서 연락이 올까 말까다”면서 “연락을 하면 이미 ‘사람을 구했다’ 하는 곳이 대부분이고 단기알바지만 면접 과정도 까다로워졌다”고 말했다.
예천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유모(30대)씨는 지난 주말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설 단기 알바 1명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올렸다가 반나절 만에 지원자가 8명 몰려 글을 바로 내렸다고 했다. 지원자 8명 중 6명은 대학생 또는 취업준비생이었었다. 유씨는 “‘알바를 구했다’고 하니 ‘일손이 더 필요하거나 자리가 비게 되면 연락을 달라.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청년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구시 달서구의 전통시장에서 강정을 판매하는 신모(40대)씨는 단기 아르바이트생 시급으로 최저임금보다 높은 1만2000원을 제시했다. A씨는 “지원자가 적을까 봐 걱정했는데 최저임금보다 많은 시급 때문인지 전화기가 불통이 날 정도로 많은 연락이 빗발치고 있다”면서 “매년 대학생 단기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하는 데 올 설 명절처럼 많은 연락이 오긴 처음이다”고 말했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설을 보내는 청년도 많다. 박모(28)씨는 이번 설 연휴 기간 안동의 마트에서 과일 선물 세트를 판매한다고 했다. 박씨는 “취업 한파와 더불어 고공행진 하는 물가 탓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올해는 고향집에 가지 못할 것 같다”면서 “요즘 같은 불경기에 한 푼이라도 더 벌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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