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넘게 인터넷서 찬반 설전
정서학대 명확한 기준 등 위해
발전적인 토론으로 난제 풀어야
“피고인에 대한 선고를 유예합니다.” 판사가 법정에서 선고기일에 이렇게 말하는 것을 ‘선고유예’라고 합니다. 아직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인데요. 이 칼럼을 쓰기 위해 뉴스 검색을 해 보니, 실제로 ‘선고유예’에 대한 기사는 별로 없고 ‘집행유예’에 관한 기사 검색 결과만 잔뜩 나오는 식이었습니다.
‘유예’는 문자 그대로 ‘미룬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이 자리에서 당장 선고하지 않고 선고를 미룬다는 뜻인데요.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나중에 가서 선고하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에서는 검사가 기소한 대로의 혐의 내용은 전부 인정되고 유죄인 것도 맞지만, 그렇게 큰 사건이 아니고 특별히 선처할 만한 사유가 있어 굳이 형벌을 내릴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 ‘선고유예’ 판결을 합니다.
그렇다면 선고유예는 어떤 효과를 낼까요? 벌금형이나 실형과 달리, 당장 어떤 불이익은 없습니다. 하지만 판사가 정한 유예기간 동안 동종 범죄를 저질러 중형을 받게 된다면 미뤄 뒀던 선고를 다시 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선고유예일로부터 아무 일 없이 2년을 넘기면, 그때는 면소된 것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면소’라는 것은, 기소 요건이 부족해서 유무죄 판단 없이 곧바로 사건을 종결해 버리는 판결입니다. 조금 용어가 어려운데, 그냥 ‘처음부터 기소되지 않은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난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지면 전과 기록에 남는지 아닌지, 취업이나 출국에 문제는 없는지 궁금해하는 분도 많은데요. 선고유예 기록은 수사 기관에서 보관하는 범죄경력 자료에는 남지만 2년이 지나 면소가 되면 그때는 삭제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또한 수형인명부나 수형인명표에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취업, 임용, 출국이나 비자 발급에 특별한 불이익은 없습니다.
무죄 판결을 받으려면 재판부의 머리를 이해시키면 되지만, 선고유예를 받으려면 재판부의 가슴을 움직여야 하니, 어떻게 보면 더 어렵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공판검사일 때는 하루에 100건 정도 선고를 받는다고 하면 그중 한두 건에서 선고유예가 나올까 말까 했습니다. 애초에 정말 용서해 줄 만한 성격의 사건은 검찰 단계에서 이미 ‘기소유예’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고령의 노인이 생활고 때문에 폐지를 주워 팔다가 절도죄로 입건된 경우, 명절에 친구나 가족들끼리 점당 100원짜리 고스톱을 치다가 도박죄로 입건된 경우, 초범이라는 전제하에, 주임검사가 기소유예 처분으로 종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재판 단계에서 선고유예가 나오는 건 보통 피해자와 뒤늦게 합의한 경우입니다. 이럴 때 피고인은 형벌을 받지 않고, 피해자는 보상받고, 검사는 웬만하면 굳이 항소하지 않고 넘어가니 당사자들 모두가 그럭저럭 만족하는 ‘해피엔딩’이 가능해집니다. 무죄 판결을 받으면 보통 검찰이 항소하여 2심을 또 거쳐야 하니, 어떤 피고인들은 ‘무죄보다 선고유예가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만 피해자가 있는데 합의하지 않은 사건에서 재판부가 선고유예를 내주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법정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줄기차게 부르짖는, ‘용서할 권리는 판사가 아닌 피해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일반적인 재판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웬만하면 선고유예를 해 주고 싶어 피고인에게 합의해 오라고 기일을 연기해 주고, 또 연기해 주다가, 결국 합의가 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벌금 30만원을 선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피해자가 합의하지 않았는데도 재판부가 선고유예를 내린, 더구나 사건 당사자 중 누구도 1심 판결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명 웹툰 작가가 특수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한 사건이었는데요. ‘선고유예’만 나온 것처럼 알려졌지만, 사실 이 사건은 공소사실 중 일부는 무죄를 선고받고, 일부만 선고가 유예되었습니다. 이후 피해자의 부모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그간의 심경을 밝히고, 특수교사는 항소 기자회견을 하면서 양측을 지지하는 측과 비난하는 여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작년 7월부터 무려 일곱 달 넘게 인터넷에서 설전이 벌어져 왔는데요. 가끔 허위사실 유포나 선을 넘은 인신공격도 보이는 것이 무척 염려스럽습니다. 이는 피해자의 부모 측도, 선생님 측도 원하는 게 아닐 것입니다. 피해자 부모는 “대립 구도가 아니라 협력하며 제도적으로 방법을 같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특수교사께선 열악한 환경에서 헌신하고 계신다”고 말했고, 특수교사는 “(피해자 부모가) 웹툰 작가로 좋은 활동을 하길 원한다. 마찬가지로 저도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자성하고 노력할 것”, “특수교육 무용론, 장애혐오 표현은 멈춰 주시길 바란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바 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서적 아동학대의 명확한 기준, 아동 청소년 보호기관에서 녹음기 사용의 허용 범위, 나아가 특수교육 및 통합교육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에 대하여 공공연하게 발전적인 토론이 벌어지는 것은 좋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최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또 반영되어야만, 법률 전문가들도 쉽게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이 난제를 풀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사법 절차가 종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매도하고 비난하는 악플은 어디에도 도움 될 게 없습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날카로운 상처만 남길 뿐이지요. 변호사로서도 학부모로서도 여러모로 안타까운 이 사건이, 부디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마무리 지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서아람 변호사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