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만기 15조… 이대론 7조 손실
금감원, 16일부터 11곳 다시 조사
2월까지 책임분담 기준안 마련
적합성 원칙 위반 여부 쟁점될 듯
은행 고위험상품 판매 전반 점검
올해 들어 한 달여 만에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흐름과 연동된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 규모가 5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 상품을 판 은행권이 배상안 또는 책임 분담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금융 당국은 판매사에 대한 2차 현장검사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검사 대상 금융사들이 불완전판매를 일부 인정했을뿐더러 노후자금 등 소비자의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만큼 분쟁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선제로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사들 입장에선 피해 구제 노력을 인정받아 제재 수위가 낮아질 수 있으나, 주주·채권자 등 제3자로부터 배임 이슈가 불거질 수도 있어 고민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 당국은 아울러 은행에서 ELS와 같은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는 것과 관련해 규제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판매 채널의 추가 제한이 필요할지 등 전반적인 제도 재검토 작업까지 벌이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은행이 판매한 H지수 기초 ELS 상품 중 지난 7일까지 만기가 돌아온 것은 9733억원어치로, 이 중 고객 상환액은 4512억원에 불과해 평균 손실률은 53.6%에 달했다. H지수가 5000 아래로 떨어진 지난달 하순 만기를 맞은 몇몇 상품은 손실률이 58.2%에 이르렀다. H지수 ELS의 만기는 올해 전체 15조4000억원, 상반기에만 10조2000억원이 도래한다. H지수가 큰 폭으로 반등하지 못하고 현재 수준으로 이어진다면 전체 손실액은 7조원 안팎까지 불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 당국은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감원은 홍콩 H지수 연계 ELS를 판매한 회사들에 대한 1차 현장검사를 마무리하고 16일부터 2차 현장검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대상은 은행 5곳, 증권사 6곳이다.
앞서 1차 검사에서는 은행이 고령층 노후 보장용 자금이나 암 보험금에 투자 권유를 하는 등의 불완전판매를 한 사례가 나온 바 있다. 금감원은 1·2차 조사를 토대로 이르면 이달 말까지 판매사와 고객 간 책임 분담 기준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간 투자자와 금융 당국으로부터 배상 또는 책임 분담 압박을 받아 온 은행권은 법무법인과 관련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H지수 ELS 판매 과정에서 위험등급을 고지하는 등 금융소비자보호법,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표준영업행위준칙 등을 적용했다는 입장은 고수하고 있으나 결국 판매 과정에서 ‘적합성 원칙’ 위반 사례를 스스로 얼마나 폭넓게 인정할지에 따라 배상 또는 분담 범위나 수준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적합성 원칙이란 투자자 특성에 적합하게 투자를 권유할 의무를 가리킨다. 안정적 자금 운용을 원하는 고객에게 고위험·고수익 상품을 권했다면 원칙을 위반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은행권은 자체 평가를 통해 공격적 성향으로 분류된 투자자만 가입시킨 만큼 대부분 원칙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할 여지도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사태 초기부터) 손실 배상 등을 위해 당국과 함께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당국의 기준안에 앞서 별도 배상안 등을 발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금감원은 고위험 상품 판매 전반에 대한 점검도 벌이고 있다.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은 지키되,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 등에 대해서는 엄정히 대응하고 합당한 피해 구제 등을 추진한다는 취지에서다. 고위험 금융상품 관련 판매 및 운영 등 전반적 관리 체계의 개선과 판매 규제 실효성 제고 등 전반적으로 소비자 보호 강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은행에서 판매하는 고위험 상품을 어디까지 제한할지, 파생상품 한도 축소 여부 등이 구체적인 검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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