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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반도체 시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라 불린다. 기업을 넘어 국가 간 총력전 성격이 짙다. 일본은 1980년대 반도체 원조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당시 세계 메모리 시장의 80%를 점유했을 정도다. 미국은 일본의 시장 점유율을 절반으로 줄이는 반도체 협정과 3년 만에 엔화가치를 2배로 절상한 플라자 협의로 일본 기업을 고사시켰다. 그 틈을 비집고 한국과 대만이 새로운 반도체 생산기지로 떠올랐다.

2차 싸움은 1990년 말부터 2000년대까지 벌어졌던 ‘치킨 게임’이었다. 당시 미국, 유럽, 일본 등이 한국 반도체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며 반덤핑 관세로 몰아붙였다. 대만과 독일 기업 등은 극단적인 가격 인하에 열을 올렸다. 삼성전자는 감산 없는 출혈경쟁으로 맞불을 질러 시장 지배력을 더 키웠다. 결국 후발 주자였던 독일·일본·대만업체들이 파산위기에 처했고 메모리시장은 삼성전자·하이닉스·마이크론 빅3 체제로 바뀌었다.

중국을 배제한 미국의 공급망 재편으로 촉발된 3차 반도체 전쟁이 불붙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가 그제 일본 구마모토에서 반도체 1공장 문을 열었다. 반도체 공장은 통상 5년 정도 걸리는데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365일 24시간 공사’로 착공 22개월 만에 준공까지 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50년 이상 묶어 둔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4조원의 보조금(2공장 6조7000억원 예정)도 지원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도 올해 안에 최첨단인 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와 1.8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내년 2나노 칩을 양산하려는 삼성전자보다 앞선다. 인텔은 2030년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2위 파운드리가 되겠다고도 했다. 미 정부는 인텔에 100억달러(13조3000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지급할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현실은 딴판이다.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19년 부지가 선정됐는데도 토지 보상, 용수·전력 공급 등 각종 규제로 2027년에나 양산이 가능하다. 보조금은 아예 없고 투자세액공제 상향조차 야당의 반발로 여의치 않다. 이러고도 한국 반도체가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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