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탄생한 포르투 렐루서점 가보셨나요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대항해시대 포르투갈 번영 이끌던 낭만항구 포르투/100년 훌쩍 넘은 렐루서점 들어서면 마법 세상 펼쳐져/조앤 K 롤링이 해리포터 기숙사 움직이는 계단 설계 영감받아/레스토랑·카페 몰린 히베이라 거리 맛있는 향기 ‘솔솔’/봄 바람 맞으며 포트 와인 실어 나르던 전통배 타고 도우루 강 유람/에펠 제자 설계한 거대 아치철교 루이1세 다리 독특/모루정원·세하두 필라르 수도원 전망대는 포르투 ‘노을 맛집’

세월의 자취가 진하게 묻어나는 파스텔톤 전통가옥들. 그 예쁜 풍경을 캔버스에 담는 화가와 사랑의 노래를 감수성 짙은 기타 선율에 토해내는 거리의 연주자. 맛있는 향기로 유혹하는 노천카페와 레스토랑. 여기에 포트와인 대신 여행자를 싣고 반짝이는 윤슬을 가르는 유람선까지 어우러지는 풍경은 그대로 떼어내 거실 벽 전체를 도배하고 싶은 수채화다. 전통가옥 앞에 내건 빨래마저 낭만으로 만들어 버리는 항구도시 포르투. 도루강이 실어 나르는 따뜻한 봄바람에 몸을 맡기고 히베이라 거리를 타박타박 걷는다.

◆해리포터 탄생한 렐루서점 가보셨나요

리스본 산타아폴로니아역에서 아름다운 대서양 풍경이 펼쳐 보이는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3시간여를 달린 뒤 외곽 캄파냥역에서 환승하면 5분 만에 포르투의 관문 상 벤투역에 닿는다. 역을 나서자 가파른 언덕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포르투는 도루강 양쪽에 엄청난 경사를 자랑하는 언덕으로 이뤄져 걸어서 여행하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강가의 히베이라 거리와 맞은편 빌라 노바 드 가이아 거리 정도만 평지다. 포르투를 찾는 여행자들이 매일 ‘오픈런’을 하는 곳은 ‘해리포터의 고향’ 렐루서점.

작가 조앤 K 롤링은 1991~1993년 포르투에 머물며 렐루서점을 자주 방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설과 영화에 등장하는 마법학교 기숙사의 움직이는 계단은 바로 렐루서점에서 영감을 받았다. 해리포터 시리즈 1권 ‘마법사의 돌’이 1997년에 출간됐으니 청소년기 해리포터를 읽고 자란 세대라면 어느덧 40세를 훌쩍 넘겼다. 풍부한 상상의 나래를 펴던 시절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의 배경이란 매력 때문에 포르투를 찾는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렐루서점은 방문 1순위다.

오전 11시. 렐루서점 앞에는 이미 입장하려는 줄이 길다. 현장 예매는 없고 반드시 렐루서점 예약 사이트에서 미리 입장권을 예매해야 한다. 오전 9시~오후 6시30분 30분 간격으로 입장하며 성인 8유로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법의 세상이 펼쳐진다. 바닥, 벽, 천장의 정교하고 화려한 나무 조각이 시선을 압도하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신비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인상적인 빨간색 계단을 따라 양쪽으로 호리병 곡선을 닮은 나무 난간이 이어지는데 마치 해리포터 영화의 한 장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2층에 올라서면 스테인드글라스, 책장, 계단이 어우러지는 완벽한 마법학교 풍경을 만난다. 롤링이 영감을 받고도 남을 정도의 신비로운 모습이다. 서너 명이 설 수 있는 중간 계단 포토존에는 인생샷을 찍으려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렐루서점의 역사는 100년이 훌쩍 넘었다. 1869년 에르네스토와 주세 렐루가 ‘렐루 형제 서점’으로 문을 열었고 1906년 현재 위치로 옮겨 리모델링했다. 실내 장식은 건축가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이스테베스의 작품으로 당시 유행하던 신고딕 양식과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었고 오랜 세월이 흘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에 등극했다.

책을 사면 입장료만큼 깎아주니 책을 안 살 수가 없는데 양장본 책들이 너무 예뻐 대부분 기념품처럼 서너 권씩 사간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전권은 물론, ‘로미오와 줄리엣’ ‘어린왕자’ ‘톰 소여의 모험’ ‘정글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잘 알려진 친근한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2층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고 1층에는 어린왕자와 해리포터 코너를 따로 만들어 놓아 작은 서점이지만 볼거리가 가득하다. 렐루서점 방문은 오픈런보다 좀 더 여유가 있는 오후를 추천한다. 사진 찍고 책구경하다 보면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가니 시간 배정을 넉넉히 하는 것이 좋다.

◆전통 배 타고 떠나는 도루강 유람

렐루서점에서 코르도아리아 공원을 거쳐 상 벤투 비토리아 수도원 골목길로 접어들자 고색창연한 전통가옥들이 포르투의 세월을 그대로 이고 있다. 1596년 유서 깊은 올리발 유대인 거리에 지은 비토리아 수도원으로 들어서자 장엄한 연주가 울려 퍼진다. 베네딕트회 수사가 1722년 만든 파이프 오르간 등 종교 행사에 사용하는 전통악기 연주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비토리아 전망대와 엔히크 항해왕자 조각공원을 지나 도루강가로 내려서면 포르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히베이라 거리다. 버스킹 연주자가 멋진 기타 솜씨로 분위기를 돋우고 북적이는 인파로 활기가 넘친다. 거리를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과 카페의 야외 테이블엔 여행자들이 도루강 풍경을 감상하며 커피와 와인을 즐긴다.

히베이라 거리는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 기원전 8세기부터 사람이 정착했고 로마시대, 중세시대, 대항해시대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포르투의 상징이다. 세계 3대 주정강화 와인 포트와인을 도루강 하구인 히베이라를 통해 영국으로 실어 날랐고 스페인 내륙과도 연결돼 교역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특히 15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에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는데 히베이라가 무역의 중심지가 돼 번영의 시대를 이끌었다. 히베이라 거리를 따라 중세시대 성벽이 그대로 남아있고 그 위에는 상인, 선원, 노동자들이 몰려 살던 알록달록한 전통가옥들이 잘 보전돼 여행의 낭만을 더한다. 히베이라 거리는 야경도 아름답다. 은은한 조명이 물결을 따라 반짝이며 데칼코마니로 반사되는 풍경은 포르투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히베이라 거리를 따라 동쪽 끝으로 가면 1886년 개통된 루이1세 다리와 연결된다. 하층부는 차도와 인도, 상층부는 트램길과 인도로 이뤄진 길이 385m, 높이 75m의 거대한 아치형 철교로 역시 포르투의 상징이다. 디자인이 어디서 본 듯 익숙하다. 아니나 다를까 에펠탑을 설계한 프랑스 구스타브 에펠의 제자 테오필 세리그가 한껏 솜씨를 부렸단다. 완공 당시 루이 1세 다리는 세계에서 가장 긴 아치형 철교였으며 당시 국왕 루이스 1세에서 이름을 따왔다. 다리 위에 서면 굽이치며 바다로 나아가는 도루강 하구를 따라 낭만이 가득한 포르투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다리를 지나면 포트 회사들이 모여 있는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지구로 연결된다. 도루강을 오가는 유람선들이 이곳에서 출발한다. 마침 막 떠나려는 배가 있어 급하게 티켓을 끊고 올라탄다. 상류쪽으로 엔리케 다리, 마리아 피아다리, 상 조앙 다리까지 간 뒤 유턴해 하구쪽으로 루이 1세 다리와 아라비아 다리를 지나 대서양 인근까지 갔다 돌아오는 코스를 성인 15유로에 이용할 수 있다.

포트와인을 실어 나르던 전통 선박 모양으로 꾸민 유람선에 오르자 시원하게 물결을 가르며 도루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바람이 차지 않은 걸 보니 어느새 봄의 한가운데 들어섰나 보다. 유람선에서 보는 히베이라 전통가옥들은 푸른 도루강 하늘과 어우러지며 색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아리비아 다리를 지나 드넓게 펼쳐지는 도루강 하구로 나서자 대항해시대 먼 곳으로 떠나는 무역선으로 북적이던 풍경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펼쳐진다.

◆포르투 풍경 파노라마로 즐기는 모루정원

노점상들이 많은 빌라 노바 드 가이아 거리는 코르크로 만든 공예품 등 상품이 다양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 길거리 화가 안토니오 실바씨의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도루강과 알록달록한 히베이라 거리 전통가옥을 수채화로 담아낸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어 두 점 구입하고 함께 사진도 찍어 추억으로 남긴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나는 인연은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거리를 걷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때쯤 포르투 여행자들은 한곳으로 몰려가기 시작한다. 바로 포르투의 ‘노을 맛집’ 모루정원이다. 빌라 노바 드 가이아에서 케이블카를 타자 10분 만에 모루정원에 닿는다.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언덕을 차지하고 앉았다. 이곳에서도 버스킹 공연이 한창이다. 여행자들은 와인, 맥주, 간단한 먹거리를 즐기며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도루강 양옆으로 높이 솟은 언덕의 집들, 루이 1세 다리,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도루강 하구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을 즐길 수 있어 모루정원은 온종일 붐빈다.

좀 더 여유 있게 노을을 즐기려면 모루정원 위쪽 세하두 필라르 수도원 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루이 1세 다리 상층부를 오가는 트램과 모루정원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포르투 최고의 뷰포인트다. 많은 연인들이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도루강 위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말없이 바라본다. 해가 지고 예쁜 조명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면 낮보다 더 아름다운 포르투의 밤이 잊을 수 없는 낭만의 시간으로 빠르게 데려간다.

포르투=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