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3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대한항공은 현대캐피탈을 세트 스코어 3-2로 꺾고 3전 전승으로 시리즈를 끝내며 2020~2021시즌부터 정규리그와 챔프전을 석권하는 통합우승 3연패에 성공했다. 챔프전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한선수는 우승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내년 시즌에도 정규리그와 챔프전을 석권하겠다”고 공언했다. 통합우승 4연패는 과거 챔프전 7연패의 대업을 이룩한 ‘삼성화재 왕조’조차도 도달하지 못한 전인미답의 고지이기에 한선수는 새 역사에 도전하겠다고 일찌감치 포부를 드러낸 것이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 OK금융그룹의 2023~2024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5전3승제) 3차전. 1,2차전을 세트 스코어 3-1, 3-0으로 꺾고 2승을 선취한 대한항공의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올 시즌 목표는 무조건 통합우승 4연패였다. 이를 통해 사무국과 코칭스태프, 선수, 팬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틸리카이넨 감독의 말처럼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대한항공은 3차전마저 3-2(27-25 16-25 21-25 25-20 15-13)로 잡고 3전 전승으로 기어코 통합우승 4연패라는 역사를 써냈다.
통합우승을 향한 과정은 앞선 3시즌과는 달리 무척이나 험난했다. 토종 에이스 정지석이 허리 부상으로 2라운드까지 개점휴업에 들어갔고, 복귀 후에도 데뷔 후 최악의 성적표를 냈다. 3년차 외국인 아포짓 스파이커 링컨 윌리엄스(호주)도 허리부상으로 2라운드 중반부터 코트에 서지 못했다. 링컨 없이 국내 선수로만 한 달여간 경기를 치르다 대체 외국인 선수로 무라드 칸(파키스탄)을 데려왔지만, 부족한 기본기로 인해 기복이 심했다. 부쩍 성장한 7년차 토종 아포짓 스파이커 임동혁이 부족한 공격력을 메웠지만, 순위표 맨 윗자리를 차지하긴 쉽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리빌딩 시즌에 돌풍을 일으킨 우리카드였다.
이후 우리카드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두 경쟁을 펼치던 대한항공은 지난달 6일 우리카드와 6라운드 마지막 맞대결을 펼쳤다. 정규리그 1위 타이틀을 결정짓는 ‘승점 6짜리’ 매치에서 대한항공은 0-3으로 완패하며 자력으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할 수 기회를 잃었다.
통합우승 4연패의 전제조건인 정규리그 1위 4연패가 좌절될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하늘은 대한항공의 편이었다. 남은 2경기에서 1승만 추가해도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할 수 있었던 우리카드는 거짓말 같이 2연패를 당했다. 반면 남은 2경기에서 1승1패를 거둔 대한항공은 승점 71(23승13패)로 우리카드(승점 70, 23승13패)를 승점 1 차이로 제치고 기적적으로 정규리그 1위를 달성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덕에 행운 섞인 챔프전 직행 티켓을 받아든 대한항공은 통합우승 4연패를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무라드를 방출하고, 챔프전만을 위한 아포짓 스파이커 막심 지갈로프(러시아)를 데려온 것. 왼손잡이라는 생소함을 무기로 막심은 챔프전 3경기에서 52점을 터뜨리며 ‘용병’ 역할을 해냈다.
1985년생 동갑내기 현역 최고의 세터 듀오로 함께 왕조를 구축해온 한선수, 유광우가 지휘하는 대한항공은 큰 경기에선 더욱 강해져 돌아왔다. 정지석-곽승석으로 이어지는 공격과 리시브에 만능한 아웃사이드 히터진에 김규민-김민재의 신구조화 미들 블로커진은 너무나 굳건했다. 정규리그 1위의 일등공신이지만, 팀 우승을 위해 챔프전에선 ‘조커’로 변신한 임동혁까지 모든 선수들이 통합우승 4연패만을 바라보며 달렸고, 그 열매는 무척이나 달콤했다.
허리 부상 여파로 주전으로 올라선 이후 한 시즌 최악의 성적을 냈던 정지석은 챔프전에서 자신의 왜 현역 최고의 아웃사이드 히터로 불리는지를 여실히 증명해냈다. 1차전 블로킹 7개 포함 31점을 올리며 팀 승리를 이끈 데 이어 3차전에서도 18점을 몰아치며 기자단 투표 결과 31표 중 22표를 받아 챔프전 MVP에 올랐다. 2020~2021시즌 챔프전에 이어 두 번째 챔프전 MVP 수상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