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했던 유토피아로 여행
작가 똑닮은 ‘소녀’부터 몬스터 친구까지
다양한 서사로 순수함 불어넣는 작업
쉽게 그린 것 같지만 정교하고 탄탄
10번 이상 칠하고 여러층 레이어 쌓아
26일까지 개인전…신작 20여점 선봬
‘원더랜드’ 다룬 책 내고 독자와 만남도
“어? 캔디인가? 캔디 … 맞는 거 같은데 ….”
작가 이사라가 그린 ‘원더랜드’의 주인공 ‘소녀’를 처음 본 관객의 반응은 대개 이렇다. 특히 50대 이상이라면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 ’로 시작하는 어릴 적 TV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의 주제가를 흥얼대며 ‘그때 그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이사라는 동심에 대한 기억과 동경, 그리고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본질에 대한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 ‘원더랜드’의 서사를 담고 있는데, 그 핵심은 순진무구의 ‘동심’이다. 그곳은 모두가 행복하고 호기심 가득한 꿈의 세계이자 작가의 순수한 마음이 발현되는 공간이다.
K팝을 통해 글로벌스타로 우뚝 선 보이그룹과 걸그룹들이 자신들의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마침내 이사라가 자신의 ‘원더랜드’를 기반으로 한 ‘유니버스’ 구축에 나섰다. 이를테면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닥터 스트레인지, 토르, 스파이더맨, 블랙 팬서 등으로 구성된 할리우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같은 것이다.
이사라의 ‘원더랜드’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6가지 규칙(Rule 6)이 있다. 예의 바르게 행동할 것,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만들 것, 열심히 일할 것, 나를 아름답게 가꿀 것, 최선을 다해 사랑할 것, 완전한 행복을 꿈꿀 것 등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누군가 ‘Rule 6’를 어겨버린 탓에 오색찬란하던 원더랜드가 온통 검게 변해버린다. 원인을 찾아내고 문제를 해결해야만 엉망진창이 된 원더랜드도, 사라진 작가 자신의 그림도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작가는 ‘원더랜드’ 속으로 모험을 떠난다. 다양한 몬스터 친구들도 만난다.
파란 하늘을 날아다니며 오색찬란한 상상무지개를 쏘아대는 외눈박이 몬스터 ‘Shooting Star(슈팅 스타)’, 하루 종일 조잘거리며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는 파도입술 몬스터 ‘Jelly Talker(젤리 토커)’,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모습으로 친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인기 만점 광대 몬스터 ‘Funny Blossom(퍼니 블라썸)’, 바쁘고 힘든 친구들이 잠시 낮잠을 자며 꿈도 꾸고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품 몬스터 ‘Happy Dreamer(해피 드리머)’, 친구들을 꼭 안아주며 소소한 고민거리를 들어주는 ‘Lucky Bear(럭키 베어)’.
작가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예쁜 옷을 입고 친구들 앞에서 말하고 춤추고 노래하길 좋아했다. 그림을 즐겨 그렸지만 악기 연주도 좋아했다. 공주가 되고 싶었고, 발레리나도 되고 싶었다. 플루트 연주자도 꿈꾸었다. 결국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화가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한다. 오직 그리는 것뿐. 하지만, 한꺼번에 다 할 수 없었을 뿐이지 의욕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꿈도 호기심도.
“마음속에 여전히 동심이 존재하니까.”
다시 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은 것들을, 꿈과 호기심을 펼쳐낸다. ‘원더랜드’를 통해서다.
그의 유니버스 안에는 자신의 이야기가 대거 녹아있다. ‘원더랜드’의 ‘소녀’는 사실 작가 이사라와 무척 닮았다. 이미 미술계에선 ‘소녀’를 ‘사라’라고 부르길 주저치 않는다. ‘사라’는 즐겁다. ‘원더랜드’의 시즌2, 시즌3에 이어 애니메이션까지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쉽게 그린 듯하지만 정교하고 탄탄하다. 내공이 번져난다. 건축재료 등 여러 재료를 섞어 10번 이상 바르고 밑 작업의 사포질을 되풀이했다. 아크릴 물감을 얇게 여러 번 덧바르는 과정을 통해 극히 평면적이면서도 밀도 높은 여러 층의 레이어를 쌓았다. 이어 작은 칼날로 긁어내 하얀 선을 만들고 무수한 반복을 거쳐 패턴화해 완성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 선 하나하나 긁어내는 과정은 작가에겐 일종의 수행과도 같다.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의 행운을 빌어주는 의식처럼 보인다. 관객들이 금세 몰입할 수 있는 이유다.
책도 나왔다. ‘원더랜드에 무슨 일이- What Happened in The Wonderland’가 지난 주말 출간됐다. “그림을 그리는 일만큼이나 책을 쓰는 것도 즐거웠다”는 작가는 “책이 바쁜 일상 탓에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린 이들을 위로할 것”이라고 말한다.
때를 맞춰 그의 개인전도 동명의 주제를 내걸고 서울 종로구 인사동 노화랑에서 26일까지 함께 열린다. ‘원더랜드’ 시리즈 신작 20여 점을 내걸었다. 22일 오후 2시에는 작가의 작품세계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사라 북 콘서트’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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