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회사·특정인 이익 추구 여전”
“경영판단시 면책 요건 제도화 병행을”
“소송 남발” 재계 우려에 방안도 제시
기업지배구조, 증시 저평가 원인 판단
상장사 53%“개정시 M&A 재검토·철회”
재계 “경영 불확실성 커질 것” 우려 소리
금융당국이 기업 이사(경영진)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 공론화에 나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전면에 나서 경영진 면책 요건을 추가해 그동안 재계에서 우려한 소송 남발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방안까지 제시하면서 설득에 공을 들였다. ‘밸류 업’(기업가치 제고)을 위해 이사회를 중심으로 기업 지배구조가 하루빨리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재계는 상법 개정 결과 이사의 책임이 가중되는 등 경영의 불확실성만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를 전했다.
이 원장은 12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구조’ 정책 세미나 축사에 서 “‘쪼개기’ 상장(물적 분할 자회사 동시상장)과 같이 전체 주주가 아닌 회사나 특정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례가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 및 주주의 이익보호’로 확대하는 방안 등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밝혔다.
현행 상법에서는 ‘이사는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해 대주주만이 아닌 주주 전체의 이익보호를 위해 기업 이사회가 노력할 수 있게 개선하자는 구상이다.
이 원장은 또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경영판단을 한 경우 민·형사적으로 면책받을 수 있도록 ‘경영판단원칙’을 명시적으로 제도화한다면 기업경영에도 큰 제약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이 재계의 우려에도 법무부 소관인 상법 개정 카드를 적극 꺼내고 나선 것은 대주주의 절대적 지배권을 견제하지 못하는 기업 이사회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주식시장 저평가)의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개인 투자자를 비롯한 소수주주 중심으로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앞서 LG화학은 2020년 LG에너지솔루션을 분리해 상장하는 과정에서 주가 폭락을 야기해 일반 주주의 원성을 산 바 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9일 경제이슈점검회의에서 “투자자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신속히 마련해 달라”고 주문하며 상법 개정과 관련한 불씨를 키웠다. 이후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에서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도 포함하자는 논의가 있었다”며 “법무부 및 금융위원회와 공청회를 거쳐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바통을 이어갔다.
새롭게 출범한 22대 국회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상법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준호 의원은 지난 5일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명시한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박주민 의원도 이달 내로 개정안을 다시 발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재계는 상법 개정안이 상장사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반발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상장사 153곳을 조사한 결과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인수·합병(M&A) 계획을 재검토하겠다는 기업이 44.4%였다. 8.5%는 M&A 계획을 철회 또는 취소하겠다고 답했다.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이사의 책임이 무리하게 가중된다는 게 재계의 반대 이유다. 설문조사 결과 제도 도입 시 주주대표소송과 배임죄 처벌 등이 확대될 것이라는 응답이 61.3%(복수응답 기준)였다. 또 ‘회사와 주주의 이익 구분 불가’(61.3%), ‘주주 간 이견 시 의사결정 어려움’(59.7%) 등 실무적 혼선을 우려하는 기업도 많았다.
송승혁 대한상의 금융산업팀장은 “경영진의 어떤 의사결정이 회사에는 이익이고 주주에게는 손해인지 기업이 사전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섣불리 규제를 강화해 경영의 불확실성을 확대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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