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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할 정도로 뜨거운 날씨 위협”… ‘노에어컨’에 선수들 열사병 공포 [파리 올림픽 한달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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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6-24 19:55:49 수정 : 2024-06-24 21: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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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폭염 ‘불타는 경기장’ 경고

호주 경보선수 카울리가 말하다
“2023년 8월 세계대회 폭염에 쓰러져
더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수준
야외경기하는 육상선수들 두려움”

올림픽 덮친 기후위기
가장 덥던 직전 도쿄대회보다 더워
英선 폭염 경고하는 보고서 통해서
최악땐 선수 사망 가능성까지 제기

‘냉방 양극화’ 촌극까지
파리조직위 ‘노에어컨’ 친환경 표방
美·加 등 휴대용 공수해 선수 보호
저개발국 선수들은 그대로 견뎌야

“날씨가 단순히 ‘더운’ 날씨에서 ‘위험할 정도로 뜨거운’ 날씨로 변하고 있습니다. 지구력이 중요한 저 같은 육상선수에게 극심한 더위는 레이스 속도를 느리게 하고 운동 통제력을 잃게 합니다.”

 

16년 경력의 호주 경보 선수 리디안 카울리(33)는 지난해 8월 혹서 속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대회에 출전했을 당시 아찔한 경험을 이같이 전했다. 레이스가 시작하고 불과 몇 분 뒤, 카울리의 몸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몇 미터 더 나아가자 팔과 다리를 통제할 수 없게 됐다. 열사병이었다. 결국 그는 레이스를 완주하지 못한 채 경기를 마무리해야 했다.

 

호주 경보 선수인 리디안 카울리가 2020 일본 도쿄 올림픽에 출전했을 당시의 모습. 카울리 제공

24일 카울리는 세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여름철에) 더위로 불편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더위가) ‘견딜 수 있는 불편함’을 넘어섰다”며 “나와 같은 수많은 육상선수가 열사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4 프랑스 파리올림픽이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승마 경기가 열리고 에펠탑 앞 샹드마르스 공원에서 비치발리볼 경기가 펼쳐지는 등 볼거리와 재미가 가득한 올림픽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파리올림픽이 ‘역대 최악의 폭염’ 속에서 치러질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24년 파리에서 마지막으로 하계올림픽이 열린 이후 파리의 평균 기온이 약 섭씨 3.1도 상승하고 열섬현상(도시의 기온이 교외보다 높은 현상)으로 폭염의 빈도가 잦아지는 등 무더위가 도시를 덮쳤기 때문이다.

 

폭염에 대한 카울리의 우려가 단순히 기우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카울리는 “이렇게 극도로 더운 날씨에 레이스를 하는 건 아무리 (훈련을 통해)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매우 위험하다”며 “영구적인 건강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에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AP연합뉴스

◆‘불타는 경기장’… 위험에 놓인 선수들

 

영국 지속 가능한 스포츠협회(BASIS)와 호주 스포츠 단체 프런트러너는 지난 18일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폭염 위험을 경고하는 ‘불타는 경기장(Rings of Fire)’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이례적인 기온 상승과 폭염 등으로 선수들이 경기 중에 쓰러지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배스천 코 세계육상연맹 회장은 “전 세계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기후변화가 점점 더 스포츠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다”며 “선수들에게 수면 장애 등으로 인한 일정 변경과 같이 사소하지만 경기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부터 온열 질환이나 부상처럼 경기 결과에 광범위하게 문제가 되는 부분까지 다양하다”고 지적했다.

 

2020 도쿄 하계올림픽도 높은 기온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도쿄의 기온은 34도를 넘었고, 습도는 70%에 달했다. 도쿄의 기온은 1990년 이후 약 2.86도 상승한 상태였다. 같은 기간 지구 온도 상승 폭의 3배에 달한다.

 

극심한 더위에 선수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도쿄 오다이바 해상공원에서 열린 남자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은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경기를 오전 6시30분으로 앞당겼다. 하지만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들은 구토를 하는 등 심각하게 지친 상태였다. 미국 야후스포츠 칼럼니스트 댄 웨트젤은 ‘일본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날씨에 대해 거짓말을 했고, 선수들이 그 대가를 치렀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선수들이 바닥에 엉켜 있고 트레이너는 그들을 도우려고 뛰어다녔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사진=AP연합뉴스

◆역대급 더위 예상되는 파리올림픽

 

7월 26일 개막하는 파리올림픽은 이전 올림픽보다 더 더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월 유럽연합(EU)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는 2023년이 역대 가장 더운 해였다고 밝혔다. 기후변화로 폭염, 가뭄, 산불 등이 심해져 “모든 날의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도 이상 더 따뜻해진 해였다”고 설명했다.

 

파리의 기온 변화 역시 심상치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1948년 이후 파리에는 50번의 폭염이 찾아왔다. 2003년 7∼8월에는 역대급 폭염으로 1만4000여명이 사망했다. 당시 최고 기온은 44.1도까지 올라갔다. 올림픽이 열리는 7월 하순 파리의 기온은 40도를 넘나들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의 올림픽 준비 방식도 문제다. 조직위는 친환경 올림픽을 위해 선수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야외 경기는 아침에 대회를 시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일정을 조정하겠다고 전했다. 무더위에 대한 우려에 각국은 자체 에어컨을 가져오겠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캐나다, 영국, 이탈리아 등 8개국은 휴대용 에어컨을 가져올 계획이다.

 

형편에 따라 냉방을 제공받지 못하는 국가의 선수들은 더위를 그대로 견뎌야 한다. ‘냉방 빈부 격차’까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도널드 루카레 우간다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WP에 냉방 기기를 지원할 자금이 없다며 난색을 보였다. 그는 “몇 년 전 튀르키예에서 열린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도 자금을 지원하지 못해 선수들은 에어컨이 없는 방에서 지내야 했다”고 말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올림픽조직위는 원할 경우 저공해 이동식 냉방 장치를 빌려줄 것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기후변화 맞춰 스포츠 대회도 변해야

 

보고서는 파리올림픽 기간 위험 요소를 경고하며 스포츠 당국에 몇 가지 사항을 권고했다. 폭염을 피하기 위해 경기 일정을 조정하고 선수들이 기후변화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카울리는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경기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육상연맹은 폭염으로 인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세계선수권대회를 기존 7∼8월이 아닌 9월로 옮겼고, 선수들이 덜 위험한 조건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경기 시작 시각도 변경할 준비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문제는 계속 악화할 것이라며 선수들과 스포츠 팬 모두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시행 중인 완화 조치만으로는 변화에 적응하기 충분하지 않다”며 “기후변화를 위해 어떠한 행동을 취하기에 늦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선수와 팬들이 함께 기후변화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스포츠와 화석연료 기업의 관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스포츠 경기는 기업의 후원이 필수인데, 달라진 경기 환경에 맞춰 화석연료를 과도하게 배출하는 기업과의 협업 중단을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싱크탱크 뉴웨더 스웨덴 등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동계스포츠 대회 선수들이 자동차 제조업체, 화석연료 기업, 항공사 등과 맺은 후원 계약이 최소 107건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스웨덴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크로스컨트리(숲·들판 등을 달리는 경주) 스키 대회인 바살로페트(Vasaloppet)는 정유회사인 프림과 차량 제조업체 볼보가 후원하고 있다. 프림은 스웨덴에서 탄소를 세 번째로 많이 배출하는 기업으로 분류돼 있으며, 볼보는 전기차 판매량이 10.9%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고서에 참여한 연구진은 “두 업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합하면 매년 210㎢에 쌓인 눈을 제거할 수 있다”며 “동계스포츠의 미래를 위해서 선수들과 대회는 자멸적인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스포츠 행사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도 떠오르는 문제다.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스포츠 행사에서 ‘탄소중립(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은 상태) 대회’를 표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앞서 2022 카타르 월드컵의 경우 카타르 정부와 국제축구연맹(FIFA)은 “역사상 최초로 탄소중립을 이룬 대회”라고 월드컵을 홍보했다. 사막 위에 대형 경기장을 짓고 무더위에 에어컨을 쉼 없이 가동했지만 친환경 경기를 한다는 홍보였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탄소 363만t이 배출됐다며 카타르 정부와 FIFA의 주장을 반박했다. 카타르 방문객의 항공편과 숙박시설, 경기장 등 기반시설을 짓는 과정에서 나온 배출량의 합이다. 363만t은 아이슬란드와 콩고민주공화국 등이 연간 배출하는 탄소량과 비슷하다.


이민경 기자 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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