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이 불치병을 앓고 시름시름하던 1876년, 그는 제34대 술탄으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재위 초기에는 자유주의적 정치를 펼치고 철도를 도입하는 등 근대화에 힘쓰는 한편, 주요 강대국간 대립과 갈등을 이용해 제국의 지배권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크레타 섬을 상실한 전후 폭군으로 돌변, 아르메니아인과 앗시리아인을 학살하고 아르메니아 독립을 추구한 지도자 일디즈를 암살하는 등 정치적 반대파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서방에는 ‘붉은 술탄’으로 풍자됐다.
오스만제국의 절대 권력자 압둘하미드 2세는 결국 서구식 근대화를 열망하는 군인들의 쿠데타, 이른바 ‘청년 투르크당 혁명’이 일어난 이듬해인 1909년 강제로 폐위됐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3개 대륙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33년간 구석구석 통치한 그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가족과 함께 수도 이스탄불에서 멀리 떨어진 테살로니키의 한 저택에 감금당한다.
무제한의 권력을 휘두르다가 하루아침에 저택에 감금당한 독재자의 심리는 과연 어떠했을까. 작가 쥴퓌 리바넬리(Ömer Zülfü Livaneli)는 권력의 정점에서 한순간에 유배자로 추락한 절대 권력자의 삶과 심리를 소설로 그려보고 싶었다. 자신 역시 오래 전 군사 쿠데타에 반대했다가 세 차례나 구속돼 군 형무소로 수감됐고 11년간이나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건 3개 대륙을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제국을 33년 동안 통치했던, 그의 말이 곧 법인 절대 권력을 소유한 황제가 하룻밤 사이에 폐위당한 채 모든 걸 잃고 가족과 함께 텅 빈 저택에 연금당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 상황이 한 인간에게 미치는 정신적 충격과, 그 충격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제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이 작품에는 독재자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습니다만.”
역사적 실존 인물을 소설로 쓴다는 건 수많은 난관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미 많은 언어로 수천 권의 책에서 다뤄졌던 사람의 삶과 주요 사건을 역사적 사실과 상반되게 서술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쓰려던 것은 역사책이 아닌 소설이었기에 사실에만 갇힐 수도 없었다.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인물들의 심리를 통해서 드러내야 했다. 그는 이를 위해 많은 사료와 자료를 살피고 수집하면서 압둘하미드 2세는 물론 오스만 제국사를 조사 연구해야 했다. 이와 함께 압둘하미드 2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의 기록도 찬찬히 들여다봤다.
“작품은 역사책이 아니기에 소설 속 등장인물의 심리를 통해 인물을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 꽤 많은 공이 들었습니다. 그 덕에 튀르키예와 해외의 독자들은 진짜 소설을 읽으신 셈이고, 역사학자들로부터 소설에 대한 비판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권력을 잃은 오스만제국 압둘하미드 2세의 삶과 심리를 치밀한 구성과 유장한 문장으로 그린 튀르키예 작가 쥴퓌 리바넬리의 장편소설 『호랑이 등에서』(오진혁 옮김, 호밀밭)가 최근 번역 출간됐다.
“태어나자마자 날 호랑이 등에 태웠던 거야. 호랑이 등에서 자란다는 건 황제의 아들이 짊어져야 할 운명인 게야⋯ 호랑이 등에 올라타 있을 땐 모두를 복종케 하는 엄청난 권력을 갖지. 힘도 있고 행복하겠지만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는 순간, 호랑이는 발밑에 잡아 둔 가젤처럼 갈기갈기 찢어 놓을 거야. 그것도 끊임없이 말이지. 호랑이와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호랑이의 주인이 되는 거야. 주인이 되든가 아니면 먹잇감이 되든가.”(19~20쪽)
소설은 절대 권력자인 제국의 술탄에서 하루아침에 폐위를 당해 가택 연금 생활을 하게 된 압둘하미드 2세가 이 같은 생각을 하면서 시작된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로 테살로니키의 저택에서 생활하는 황제는 누군가 자신을 헤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처형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늘 시달린다.
독재자의 폐위 소식에 시민들이 환영하는 가운데, 자유주의 성향의 젊은 군의관 아트프 휴세인 대위가 가택 연금 중인 압둘하미드 2세와 그의 가족을 진찰하는 주치의로 임명된다. 미혼의 젊은 군의관 휴세인은 폐위된 황제가 연금돼 있는 저택에 발을 들여놓는다.
“카디건을 걸친 채 지치고 초췌한 모습을 한 노인이 홀로 들어오는 게 아니겠어. 몰골을 봤다면 그자라고 누구도 믿지 않았을 거야⋯ 중간 정도 키에, 다들 알고 있듯이 등은 굽었고, 밤마다 우리 꿈에 나타나던 그 얼굴⋯ 그런데 말이야, 코는 그렇게 커 보이지는 않았어. 보통 사람들보다 큰 건 맞는데 잘 모르겠어⋯. ‘어서 오게나 대위’ 하더니 악수를 청하고 나를 자기 맞은편에 앉히더군. 곧바로 담배 케이스를 꺼내 들더니 내게 담배를 권하지 뭐야. 담배는 사양했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밝힌 다음, 그자와 가족들 건강을 오직 나만 돌볼 수 있다고 했어. 이 말을 듣고 의심하는 듯한 눈빛을 보이더니 누가 보냈냐고 묻더군.”(124~125쪽)
군의관 휴세인이 마주한 황제는 궁전에 앉아서 음모나 꾸미고 잔혹한 살인을 명령하는 학살자이자 독재자라는 상상이나 소문과 달리 왜소하고 불안에 떠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노인에 불과했다. 노인은 날마다 찾아오는 군의관에게 자신이 제국을 얼마나 통치를 잘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비로운 사람인지를 이야기했다. 군의관은 술탄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나중에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술탄의 주장이 모두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만, 그럼에도 노인에 대한 생각은 서서히 바뀌어간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예전에는 폭군에다 양심도 없는 짐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를 힘들게 하는 겁쟁이에다가 가족을 사랑하는, 피해망상을 앓고 있는 가엾은 환자처럼 느껴집니다. 가끔은 혹시 그 유명한 술수로 저를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264쪽)
군의관은 끊임없이 폐위된 황제를 부정하지만 어느 순간 독재자 편에서 사고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소름을 돋는 등 인간적 고뇌에 빠져간다. 그는 유배 기간 압둘하미드 2세와 나눴던 대화를 기록한 글을 남긴다. 소설은 3년 6개월간의 테살로니키 유배 생활을 마친 황제가 이스탄불에서 새롭게 감금 생활을 이어가는 것으로 끝난다. 노인은 비로소 새 유배지가 호랑이 등에 내려올 곳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보기만 해도 소름 돋는 대리석으로 지어진 궁으로 가까이 다가가던 순간, 미끄러지듯 창문들 사이로 지나가는 여윈 체르케스 여인의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 왕이 된다고 해도, 황제가 된다고 해도 죽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엔 만났어. 엄마⋯.’ 압둘하미드는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결국엔 우리가 만났어.’”(401~402쪽)
소설은 상당한 분량임에도 압도적인 몰입감을 가져다주면서도, 읽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를 준다. “지중해의 밤처럼 깊고 매혹적인 소설”(소설가 장강명)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다. 이는 아마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일 뿐만 아니라, 300곡 이상을 창작한 음악가이자, 4편의 장편영화를 제작한 영화감독 출신이고, 유럽의회 의원까지 역임한 르네상스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오르한 파묵을 잇는 ‘튀르키예의 문제적 작가’ 쥴퓌 리바넬리가 그린 술탄 압둘하미드 2세의 삶과 심리는 어떤 모습일까. 권력을 잃고 늙고 초라해진 독재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군의관의 심정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이 문제적 작가의 여로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리바넬리를 최근 번역가 오진혁씨의 도움을 받아서 이메일로 만났다.
―압둘하미드 2세가 군의관 휴세인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군의관이 이것을 기록했다는 것은 실화인가. 소설과 실화와의 차이는.
“실화다. 군의관이 아무도 모르게 기록으로 남겼던 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서로 증오했던 두 사람, 황제와 군의관의 관계는 소설에서 요구되는 긴장과 감정 충돌을 묘사하는 데 도움이 됐다. 물론 군의관의 메모와 일기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하지만 사건의 전개를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된 건 사실이다.”
―권력을 잃고 노인이 된 독재자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군의관의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독재자의 심리는 또 무엇이었을까.
“폐위된 독재자와 그 독재자를 증오하는 군의관, 이런 긴장감 속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지위를 벗어던지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바뀐다. 지위, 계급, 군복과 같은 것들이 두 사람 사이에서 사라지면서 늙고 지친 한 병자와 젊고 이상주의에 빠진 혁명가 사이에 인간적인 요소들이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사실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런 점이었다.”
―결국 압둘하미드 2세는 어떤 존재인가. 반개혁적 독재자인가, 아니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노인일 뿐인가.
“둘 다 존재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압둘하미드 2세는 제국주의가 붕괴하고 왕과 왕비들이 죽임을 당하는 혁명의 시기에, 피해망상 환자로 33년 동안 황궁 밖을 나가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서구화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구 열강들은 그의 제국을 산산조각 내려 했다. 그는 인생을 사냥꾼으로부터 자기 목숨을 지키려는 사냥감처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힘이 막강했던 군부는 노동자 파업을 비롯해 극심한 좌우 갈등과 혼란을 빌미로 또다시 앙카라를 비롯해 대도시에 계엄령을 발동하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때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를 즐기며 감수성이 한껏 예민해져 있던 판사의 아들이었던 스물다섯의 청년 리바넬리는 조국의 민주주의 후퇴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판사였던 아버지는 나중에 터키 대법원장이 됐지만.
그는 군사 쿠데타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세 차례나 당국에 구속되고 군 형무소에 수감됐다. 이듬해에는 조국 튀르키예를 떠나야 했고, 무려 11년간이나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1984년 돌아올 수 있었다. 망명 기간 스톡홀름과 파리, 아테네, 뉴욕 등에 살면서 아서 밀러, 제임스 볼드윈 같은 예술가 및 지식인을 접촉하며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 시기, 문학이나 음악은 늘 그의 곁에서 위로이자 꿈이 됐다.
“어린 시절부터 제 생각과 꿈은 문학에 있었습니다. 제가 다른 친구들과 크게 달랐던 점이 바로 끊임없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죠. 어쩌면 제게도 장난감이라는 게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 어떤 장난감도 기억나지 않아요. 한편으로 음악에 관한 관심도 있었죠.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문학과 음악 사이 그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런 음악에 관한 관심이었어요.”
1946년 튀르키예 콘야에서 법조인 가문에서 태어난 쥴퓌 리바넬리는 1978년 첫 번째 단편소설집 『연옥의 아이』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소설 『콘스탄티노플의 내시』, 『레일라의 집』, 『살모사의 눈부심』, 『마지막 섬』, 『세레나데』, 『호텔 콘스탄티노플』, 『어부와 아들』 등을 발표했다. 소설 이외에도 시와 에세이, 논픽션 등 왕성한 집필 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에서 최소 34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발칸문학상, 미국 반스앤노블 위대한작가상, 유누스나디문학상, 오르한 케말 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작품 세계를 한국 독자에게 조금 설명해 준다면.
“사실 적지 않은 작품이 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저의 모든 작품이 모든 언어로 번역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2년 사이 『마지막 섬』, 『어부와 아들』, 『세레나데』, 『호랑이 등에서』 네 권의 책이 번역 출간됐다. 한국은 유구한 역사와 화려한 문화를 가진 국가이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와 문학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제 집에는 1950년대 한국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저의 장인께서 한국전에 장교로 파병을 다녀오셨다. 튀르키예로 귀국하시면서 한국과 관련된 많은 것들을 가져오신 덕분이다.”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은 무엇인가.
“제 생각에는, 소설은 읽고 난 뒤에도 기억에 남을 등장인물을 창조해 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라스콜니코프(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보바리 부인(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부엔디아(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같은 수많은 주인공처럼. 이런 등장인물들은 삶의 경험과 관찰 속에서 작가 자신이 빚어내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인가라는 질문을 누군가가 한 적이 있다. 그는 그렇다고 답을 했다지요. ‘모든 등장인물에는 대략 800명의 사람이 들어있다’고.”
―차기작 계획이나, 작가로서의 꿈은 어떤지.
“현재 새로운 작품을 집필 중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글을 쓰려고 한다. 그게 제 생활 방식이다.”
리바넬리는 탁월한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음악가이자 영화감독, 정치인이었던 ‘르네상스인’이다. 1970년대 전후 첫 앨범을 발표하는 등 300곡 이상의 자작곡을 발표했고, 30편의 영화 사운드트랙을 작곡했다. 1999년 이탈리아 음반계가 주는 ’최고 작곡가상’을 수상했다. 아울러 4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세계 문화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유네스코 명예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특히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2002년부터 2006년까지 튀르키예 국회의원과 유럽의회 의원까지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는 아내와 터키 이스탄불에 살고 있다.
―하루 일상은 어떤가. 취미 생활과 건강관리법은.
“특별한 버릇이나 습관이 없는 사람이어서, 몇 번의 수술을 받았음에도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오래 전 한국에서 제 책이 출간되었을 때 한국 출판사에서 특별한 차와 다기 세트를 보내온 적이 있었다. 아주 친절한 편지와 함께. 차를 어떻게 우려내 마시면 되는지 자세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이 차를 매일 드시면 장수하실 거라고. 차를 보내준 출판사 친구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리고 싶다.”
소설과 음악, 영화라는 열망의 바람을, 현실정치 참여라는 당위의 파도를 피하지 않고 늘 정면에서 맞서온 쥴퓌 리바넬리. 소설과 음악, 영화의 바람, 현실 정치의 파도가 쉼 없이 몰려올 때마다 마주해야 했고 지금도 마주하고 있는 그의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혹시 호랑이 등에 올라탄 자의 마음 아닐까. 그러니까 2016년부터 ‘문학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활동을 접고 오직 소설 집필에만 전념 중인 그는, 아마 지금도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선 콧구멍으로 거친 숨을 내뿜으며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지중해를 지나서 대서양으로. 중앙아시아 초원을 뛰어넘어 과거로, 미래로. 여기 지구를 떠나서 저 푸른 우주로⋯.
“이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모든 인간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집에서 선택하지 않은 운명을 타고 태어나. 우리는 모두 호랑이 등에서 태어난 거야. 운명을 바꿀 수는 없지.”(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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