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수권선 러 선수 악수 거부
규정 위반 탓 올림픽 불참 위기
우여곡절 딛고 결국 시상대 올라
“(이번 동메달은) 정말 특별하다. 믿을 수가 없다. 조국을 위한 메달이고,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사람들을 위한 메달이다.”
우크라이나의 ‘국민 검객’ 올하 하를란(33·사진)은 29일(현지시간)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을 수상하고 이같이 말했다. 하를란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접전 끝에 우리나라의 최세빈(23·전남도청)을 15-14로 눌렀다. 하를란은 15점째를 낸 후 감격에 차 오열했다. 무릎을 꿇고 잠시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우크라이나 국기가 그려진 마스크를 벗고 거기에 입을 맞췄다. 러시아와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가 획득한 첫 번째 올림픽 메달이자 하를란의 생애 다섯 번째 올림픽 메달이다.
하를란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다. 2008년 베이징,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단체전에서 금, 은메달을 땄다. 2012년 런던과 2016년 리우 올림픽 개인전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건 베테랑이다. 하지만 이번 파리 올림픽에 오기까지 하를란의 여정은 다사다난했다.
하를란은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가족을 곁에서 지키기 위해 선수 은퇴를 고려했다. 그러나 2023년 1월 튀니지에서 열린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따자 올림픽 출전의 열망이 다시 살아났고, 출전권 획득을 위해 지난해 7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섰다.
운명의 장난일까 공교롭게도 세계선수권 1회전부터 러시아 선수를 만났다. 경기에서 이긴 후 하를란은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악수 거부’로 목소리를 냈다.
규정상 의무로 명시된 악수를 하지 않은 하를란은 실격당했다. 이 때문에 하를란은 파리 올림픽 출전에 필요한 세계랭킹 포인트를 딸 기회가 사라졌다. 하를란은 당시를 떠올리며 “제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며 “절망했고, 몇 시간 동안을 울었다.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하를란의 올림픽 출전을 “특수 상황”으로 인정해 이번 대회에 나설 수 있었다. 하를란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선수단 143명은 러시아의 공습을 피해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타고 파리를 향하기도 했다.
경기 후 하를란은 “여기 오지 못한 선수들, 러시아에 의해 죽은 선수들을 위한 메달”이라며 “여기로 온 선수들에게는 참 좋은 출발로 느껴질 거다. 조국이 전쟁 중인 가운데 (대회에) 출전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상황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신경 쓰고 있다. 그건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하를란의 발언을 IOC가 ‘정치적 표현’으로 볼지는 지켜봐야 한다. IOC는 선수들의 올림픽에서 정치적 의사 표현을 불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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