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재배기계 디자인하며 창농 영감
고성 폐축사 유리온실로 리모델링
물레방아 연상시키는 도넛형 틀에
다양한 채소 키우는 이색농법 주목
9평 공간에 기계 60대 설치 가능
노지 400평과 맞먹는 상추 생산량
사업 점차 확장… 체험형 카페 오픈
직접 키운 채소로 샐러드 배송 준비도
“농업도 사업… 철저한 사전준비 필요
작물선정 등 신중하게 뛰어들어야”
강원도 동해안 최북단 고성군에 있는 농업회사법인 도넛팜. 이곳에는 특별한 모양의 ‘기계’가 종일 빙빙 돌아가고 있다. 도넛팜은 ‘땅에서 작물을 키운다’는 농업의 일반적인 개념을 탈피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도넛처럼 생긴 기계가 회전하며 식물을 키운다. 토지 대신 스펀지, 햇빛 대신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활용된다. 기계가 회전하며 원통 바닥에 있는 양액(영양분이 섞인 물)을 채소가 심겨 있는 스펀지에 적시는 방식이다. 채소에 따라 양액의 종류, 회전 속도, 조명의 세기 등이 조절돼 최상의 생육상태를 유지해준다고 한다. 지난 1일 방문한 도넛팜의 유리온실 내부는 ‘회전식 수경재배 기계’(VGR) 40여대가 제각각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기술력과 탄탄한 준비
이 특별한 기계를 만들어 운영하는 이는 도지한(30) 대표다. 원래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일했던 도 대표는 다니던 회사에서 회전식 수경재배 기계를 디자인하면서 사업 영감을 얻었다. 그는 이 설비의 활용 가능성을 발견하자 즉각 창농을 준비했다고 한다.
도 대표는 “VGR을 활용해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농업에 대해 아는 게 없어 그때부터 귀농·귀촌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며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 스마트팜 온라인 교육, 체험 농장 등을 찾아다니면서 사업 모델을 구체화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전했다.
이렇게 준비는 약 2년여간 이어졌다. 그 사이 채소에 따른 VGR 매뉴얼을 마련하고, 사업 모델이 갖춰지면서 2020년 6월 고성에서 체험형 농업공간 도넛팜의 문을 열었다.
버려진 축사를 사들여 영업장으로 꾸몄다. 축사의 골격은 되도록 유지한 채 유리온실 형태의 인테리어를 더해 회전식 수경재배 기계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덕분에 초기에 부족한 자금과 부지 허가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출범 초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체험학습 수요가 이어졌다. 관내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관공서 체험행사 등에서도 도넛팜을 찾았다. 도넛팜은 체험 프로그램 운영만으로 지난 1년 반 동안 매출 1억5000만원가량을 올릴 수 있었다.
농업인들 사이에도 스마트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점점 도넛팜을 찾는 이도 늘어났다. 젊은층뿐 아니라 농업에 종사했던 50∼60대까지 VGR 도입을 문의해왔다고 한다.
◆확장 가능성 높은 기술력
이 ‘특별한’ 기계는 단순히 체험용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노지에서 채소를 키우는 것과 달리 날씨와 상관없이 연중 생산할 수 있다. 연작 피해도 없고, 농약을 뿌리지 않아 친환경 재배도 수월했다.
무엇보다 생산 효과가 우수하다. 농작물 생산에 필요한 면적 대비 산출량을 계산하면 일반 토지 재배보다 30배 이상 효율이 높다고 한다. VGR은 1개 컨테이너 공간(9평)에 40대를 설치할 수 있다. 기계 1대당 상추 기준 100포기씩 모두 4000포기가 생산된다. 이에 비해 노지에서 상추를 키우려면 1평당 40포기 정도를 권장한다. 나아가 농사를 짓는 횟수가 3배가량 많은 점을 고려하면, 9평 크기의 VGR 공간에서 생산되는 상추가 노지 400평과 맞먹는 수준이라는 의미다.
도넛팜의 장점은 확장 가능성에 있다. 회전식 수경재배 기계의 크기 조절로 다양한 사업 변주를 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름 1m 이상의 수경재배 기계를 도입해 채소 농업의 규모화를 기대할 수 있다. 다른 스마트팜과 달리 복잡한 기술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일반 농가에도 보급이 용이하다. 같은 이유로 투자 비용도 비교적 저렴하다. 수경기계 1대당 가격은 250만원 수준이다. 또 키울 수 있는 작물도 아스파라거스나 미나리 등 엽경채류와 쌈채소 위주로 40∼50종에 달한다. 최근에는 단위농협에서도 수익사업 일환으로 VGR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고 도 대표는 귀띔했다.
기계를 소형화한다면 가정에서도 키울 수 있는 ‘스마트 텃밭’이 된다.
도 대표는 “드럼세탁기 같은 작은 크기의 회전식 수경재배 기계가 늦어도 내년 하반기에는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이 기계를 집집이 임대하는 사업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국내 대기업과 논의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운영비도 비교적 싸다. 가정용보다 규모가 큰 1m짜리 기계를 돌리는 데 농사용 전기료는 월 기준 약 3000원이 든다.
회전식 수경재배 기계 자체가 조경의 역할도 한다. 엽채류의 초록빛과 LED 조명의 신비함, 돌아가는 물레방아와 같은 모습은 대형 건물의 로비나 수직정원을 대체하기에 충분하다는 게 도 대표의 설명이다. 실제로 수차례에 걸쳐 지자체 청사 로비에 수경재배 기계가 전시되기도 했다.
도 대표는 올해 사업 확장을 계획 중이다. 경기 김포에서는 이미 카페와 체험공간이 결합한 도넛팜 체인점을 운영 중이며, 용인에서도 연내 개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용인 사업장에서는 VGR을 통해 키운 신선한 채소류로 샐러드를 만들어 정기 배송하는 사업 모델을 준비 중이다.
◆"농업은 사업… 철저한 준비 필요”
4년째 도넛팜을 운영하며 사업 확장까지 준비하고 있지만, 그간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VGR로 직접 엽채류를 키워 납품하기 위해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려 했지만, 유통망 확보 등의 문제로 중도 포기해야 했다.
도 대표는 귀농·귀촌을 계획해 창농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청년창업농지원금과 바우처, 각종 보조금 등 각종 정책을 꿰고 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는 “농업을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사업으로 인지해야 한다”며 “굉장히 신중하게 고민하고, 작물을 선정하고 기술이나 자신만의 아이템을 가지고 시작해야 리스크가 적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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