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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연합국 9개국 대표 앞에 고개 숙이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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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9-02 07:04:48 수정 : 2024-09-02 07: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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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은 유럽 및 아프리카와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서로 분리된 두 전선에서 진행됐다. 그런데 먼저 전쟁이 터진 유럽에서 벌어진 일들이 아시아에 영향을 끼쳤다. 1940년 6월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패망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외적 팽창을 노리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무주공산이나 다름없게 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주목했다. 그해 9월 일본군은 이미 소국으로 오그라든 프랑스의 묵인 아래 인도차이나로 진주했다. 그러자 미국이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했다. 이듬해인 1941년 들어 미국은 대일 석유 수출 금지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영국과 네덜란드도 미국의 제재 조치에 동참했다. 일본이 살려면 어떻게든 석유가 필요했다. 그해 11월 미국은 일본을 향해 “중국과 인도차이나에서 철군하라”고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다. 1개월 뒤인 1941년 12월7일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하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인 것이다.

 

꼭 79년 전인 1945년 9월2일 일본 육군참모총장 우메즈 요시지로(오른쪽)가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모습을 연합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왼쪽)가 뒷짐을 진 채 쳐다보고 있다. 미 국립기록보존소 소장

대일 정책에서 미국과 공조하던 영국·네덜란드도 일본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개전 후 순식간에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이 일본 손아귀에 들어갔다. 미국령 필리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심지어 영국의 자치령이던 호주까지 일본 군용기들의 폭격 대상이 되었다. ‘설마 전쟁이 여기까지 오겠어’ 하던 호주와 뉴질랜드는 기겁했다. 영국은 유럽 및 아프리카 전선에서 나치 독일과 싸우느라 저 멀리 태평양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보기에 ‘대영제국’은 허울뿐이었다. 결국 영국을 대신해 미국이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이 태평양의 영어권 국가들을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1937년부터 일본과 싸우고 있었다. 유럽에서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대전이 발발한 1939년 9월1일보다 2년 앞선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솔직히 중·일 간의 전쟁은 국제사회의 이목을 받지 못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이후에야 중·일 전쟁은 2차대전의 일부로 편입됐다. 그 시점부터 중국도 미국, 영국, 소련(현 러시아) 등과 더불어 연합군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중국군은 일본군을 꺾기에 역부족이었다. 2차대전 기간 일본군을 상대로 중국군이 거둔 괄목할 만한 승리는 별로 없었다. 미국이 미군의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일본을 꺾으려면 중국 외에 다른 파트너가 더 필요했다. 바로 소련이었다. 1945년 5월8일 유럽에서 나치 독일이 연합국에 항복하자 소련은 서쪽에 있던 병력을 동쪽으로 돌려 일본과 싸울 준비를 마쳤다. 그해 8월 일본은 미군이 투하한 두 발의 원자폭탄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여기에 소련군까지 가세해 일본군 점령 하의 중국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공략했다. 마침내 1945년 8월15일 일왕은 연합국에 항복 의사를 밝힌다.

 

꼭 79년 전인 1945년 9월2일 일본의 항복 문서 서명 소식에 환호하는 미국 시민들. 미 국회도서관 소장

지금으로부터 꼭 79년 전인 1945년 9월2일 이른 아침 도쿄 앞바다에 정박한 미 해군 전함 미주리 갑판 위에서 일본의 항복 문서 서명식이 거행됐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도 매년 9월2일을 ‘대일 전승 기념일’(Victory over Japan Day, 줄여서 VJ Day)이라고 부르며 기린다. 그날 항복 의식은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미국 육군 원수가 주관했다. 패전국인 일본 정부를 대표해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당시 외무상, 일본군을 대표해선 우메즈 요시지로(梅津美治郞)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참석했다. 이들이 맥아더 원수 앞에서 고개를 깊이 숙인 채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동안 미국은 물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중국 소련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까지 총 9개 연합국 대표들이 곁에서 지켜봤다. 행사는 겨우 30분 만에 끝났지만 그 결과는 오늘날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질서를 지배하고 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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