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을 통틀어 가장 치열한 싸움은 1950년 8월 경북 칠곡 일대에서 벌어진 다부동 전투였다. 당시 육군 1사단장을 맡아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백선엽 준장의 나이는 29세였다. 요즘 같으면 대위로 중대장이나 맡을 나이다. 백 장군이 국군 최초로 별 넷 대장에 올라 참모총장까지 지내고 제대했을 때 39세였다는 점은 더욱 놀랍다. 대한민국이 신생국인 데다 평균수명도 짧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진급도, 출세도 모두 빠른 세상이었다.
박정희정부 시절인 1964년 외무부(현 외교부) 장관에 이동원 당시 태국 대사가 발탁됐다. 37세의 젊은 외무장관 등장은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 그 시절 한·일 양국은 국교 정상화 교섭을 한창 벌이고 있었다. 대화 상대인 시이나 에쓰사부로 당시 일본 외무상은 66세로 이 장관의 아버지뻘이었다. 숱한 고비 끝에 마침내 협상이 타결되자 이 장관이 시이나 외상을 “형님”이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나라의 외교 경험도, 외교관 인력 풀도 모두 부족하던 때였다.
1960∼1980년대 고도 경제성장에 힘입어 인구가 증가하고 평균수명도 늘었다. 자연스레 20∼30대 젊은이가 군 장성이나 장관급 공직에 기용되는 일은 사라졌다. 적어도 40세는 넘어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 축에 끼는 시대다. ‘40대는 머지않아 은퇴할 세대’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실제로 1997년 한국을 강타한 외환위기 이후 ‘사오정’(45세 정년)이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 주민등록인구의 중위 연령이 연말이면 45세를 돌파할 전망이다. 중위 연령이란 전 국민을 나이 순서대로 줄을 세울 때 꼭 중간에 해당하는 나이를 뜻한다. 과거 중장년의 상징과도 같았던 45세가 이제 ‘청년’이 된 셈이다. 40대 입장에선 “젊게 살면 좋지”라고 반길지 모르겠다. 문제는 그 원인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생·고령화라는 점이다. 영국의 중위 연령은 40세, 미국은 38세, 필리핀은 27세라고 하니 한국이 어느새 이들보다 ‘늙은’ 나라가 되고 말았다. 출생률 반등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언젠가 노인도 청년으로 분류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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