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 전투에서 잠수함의 위력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확실히 입증됐다. 1차대전 때부터 ‘유(U)보트’라는 이름의 잠수함으로 연합국 전함과 상선을 공격해 큰 재미를 본 독일은 2차대전이 시작되며 유보트 생산에 열을 올렸다. 개전과 동시에 유보트는 대서양 바닷속을 종횡무진하며 영국, 미국 등 교전 상대방에게 커다란 공포감을 안겼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향하는 화물선들은 수중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떠오른 유보트가 쏜 어뢰에 맞아 침몰하기 일쑤였다. 당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연합국 해군과 나치 독일의 유보트 간 대결에 ‘대서양 전투’(Battle of the Atlantic)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후 회고록에서 처칠은 “2차대전 기간 나를 정말 두렵게 만든 유일한 것은 유보트의 위협”이라고 술회했다.
잠수함은 비밀스러운 작전 수행을 위해 최대한 오랫동안 수중에 머물 수 있는 능력이 핵심이다. 디젤유 같은 기름을 연료로 쓰는 재래식 잠수함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2차대전 후 미국은 세계 최초로 원자력 잠수함을 개발했다. 잠수함 내부에 소형 원자로를 설치해 거기서 발생하는 원자력 에너지로 선체를 가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핵물질을 추진 동력으로 삼는다는 뜻에서 핵 추진 잠수함, 줄여서 핵잠수함이라고도 부른다. 원자력 잠수함 승조원으로 일하려면 핵분열 원리와 원자로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젊은 위관 장교 시절 장차 원자력 잠수함을 운용할 엘리트 요원으로 선발돼 특수 교육을 받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선박에 탑재할 소형 원자로를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세계에서 핵잠수함을 가진 나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핵무기 보유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5개국에 인도까지 총 6개국뿐이다. 2021년 미국, 영국, 호주 3국이 ‘오커스’(AUKUS)라는 이름의 안보 동맹을 결성했다. 미국과 영국이 호주에 핵잠수함 건조 비법을 전수한다는 것이 오커스의 주요한 내용이다. 남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호주에 비장의 무기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다. 계획이 순조롭게 추진되면 호주는 핵잠수함을 지닌 7번째 나라가 될 전망이다. 국내에선 ‘한국도 오커스에 참여해 핵잠수함을 보유하자’라는 주장이 제기되나 미·영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이다.
최근 북한이 대형 잠수함을 건조하는 정황이 포착된 가운데 이것이 핵잠수함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8일 군에 따르면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북한이 기존 잠수함보다 규모가 큰 잠수함을 새로 만드는 모습이 식별됐다. 1년여 전인 2023년 9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 추진 잠수함 건조 계획을 언급했었다. 현재 만들고 있는 대형 잠수함이 핵잠수함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북한이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북한이 간절히 원하는 최첨단 무기인 핵잠수함 관련 기술을 제공했을 수 있다는 추측도 나돈다. 북방한계선(NLL) 무력화를 노리는 북한이 꾸준히 ‘해군력 강화’를 공언해 온 만큼 군 당국은 긴장하고 북한 동태를 예의주시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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