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노동자 고생” 인정했지만
과거사에 보다 전향적 자세 보여야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에서 어제 희생된 노동자들을 기리는 추도식이 열렸다.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한국 유족까지 포함해 양국 공동으로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논란 끝에 일본 측만 참여한 반쪽짜리 행사에 그치고 말았다. 한국 측이 막판에 불참을 결정하고 자체 추도식을 따로 열기로 한 것은 외교부의 안이한 현실 인식과 대응 탓이 크다. 지난해 시작돼 계속 이어지는 일련의 한·일관계 개선 흐름에 취해 일본의 선의에만 기대려고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할 일이다.
외교부는 추도식에 일본 정부를 대표해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이 참석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태평양전쟁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 경력이 있다는 점은 놓치고 말았다. 외교부는 엊그제 사도광산 추모식 관련 언론 브리핑을 하려다가 이쿠이나 정무관의 지난 행적과 역사 인식을 둘러싼 논란이 일자 5분 전에 브리핑을 취소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일본이 공식 초청한 한국 유족의 추도식 참가 비용을 우리 외교부가 부담키로 한 것 또한 납득이 안 간다. 외교부는 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에 뒤통수를 얻어맞고도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일본의 과거사 행보에 대한 정교한 대처를 주문했던 국민의 목소리는 ‘쇠귀에 경 읽기’가 되고 말았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추도사에서 “한반도에서 온 노동자들은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힘든 노동을 했다”고 위로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들이 강제노역에 동원된 배경에 대해선 “1940년대 우리나라의 전쟁 중 노동자에 관한 정책에 기초한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태평양전쟁 승리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앞서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며 유네스코 측에 “매년 사도광산 현지에서 한국과 공동으로 희생자 추도식을 열겠다”고 약속한 취지에 비춰 보면 미흡한 태도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내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윤석열정부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대책으로 제3자 변제를 내놓는 등 양국 관계 개선에 최선을 다해 왔다. 그러면서 ‘물 잔 속 남은 절반’은 일본이 채워 주길 바랐으나 일본의 태도는 여전히 우리 기대에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양국이 진정 미래 지향적 관계를 수립하려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향적 태도가 필수란 점을 일본 정부는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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