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가 알던 현대전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공격헬기와 전투기, 전차를 앞세운 대규모 전면전이 중심이 됐다면, 현재는 수백㎞ 떨어진 곳에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해 적군의 전략 표적을 공격하는 원거리 타격전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영국 등이 장거리 미사일의 러시아 본토 공격 금지조치를 해제하면서 스톰 섀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러시아 본토까지 타격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21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인 쿠르스크에 스톰 섀도 10기 이상을 발사, 북한군 장군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러시아는 고위급 정치인 등 영국인 30명의 입국을 금지했다.
스톰 섀도로 대표되는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의 정치·군사적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장거리 미사일 위력 입증한 우크라이나 전쟁
공중에서 발사되어 수백㎞를 저고도로 비행하는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1년 걸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군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로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의 핵심 시설을 정밀타격, 이라크군의 전쟁 의지를 무력화했다.
반면 영국군은 이라크 공군기지를 타격하고자 폭탄을 실은 전폭기를 침투시켰다가 이라크 방공망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이후 유럽에선 토마호크처럼 적지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전략표적을 무력화하는 장거리 순항미사일 개발 프로젝트가 등장했다.
영국이 프랑스와 함께 개발해 2002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스톰 섀도는 멀리 떨어진 견고한 표적 타격에 효과를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랑스에선 스칼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음속보다 다소 느리지만, 고도 30~40m로 날면서 지상 요격 시도를 회피한다.
사거리는 최대 560㎞지만, 우크라이나에 공급된 버전처럼 대외 수출용은 250㎞로 제한된다. 오차범위는 1m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높은 정밀도를 갖췄다.
덕분에 공동개발국인 영국, 프랑스 외에도 1700여발이 판매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실전경험도 풍부하다. 2011년 리비아 공습에서 영국과 프랑스군이 카다피 정부군을 공격하는데 사용했으며, 2015년 이슬람국가(IS) 공습에선 프랑스군이 최소 50발을 쐈다. 예멘 내전에서도 사우디 공군이 스톰 섀도를 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지난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고 있다. 옛소련산 Su-24 전폭기에 스톰 섀도를 체계통합,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러시아군 사령부, 군함, 탄약고 등을 타격했다.
스톰 셰도가 우크라이나에 등장하면서 전쟁 발발 이래 뚜렷한 쓰임새를 찾지 못했던 우크라이나군 Su-24는 새로운 전략무기로 거듭났다.
러시아로선 전선과 상당한 거리에 위치한 시설도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을 지닌 채 전쟁을 벌이게 됐다.
실제로 스톰 섀도는 크름반도에 있던 러시아 흑해함대 사령부와 다수의 군함을 무력화했으며, 전선과 연결된 보급로도 타격했다.
최근엔 러시아 본토인 쿠르스크도 공격대상에 포함됐다. 스톰 섀도 공격으로 북한군 고위장성이 다쳤다는 소식이 전해질 정도로 파괴력이 크다.
우크라이나군은 스톰 섀도를 통해 러시아군의 지휘통신 및 보급 능력을 파괴하고, 러시아군 방공망을 후방으로 집결시켜서 전선 지역에 대한 타격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각종 미사일 전력을 충분히 보유한 러시아에 ‘이에는 이’ 방식의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우크라이나 이외의 유럽 지역에선 미국산 재즘 이알(JASSM-ER) 구매가 확산하고 있다.
미국 록히드마틴이 개발한 재즘 이알은 사거리가 1000㎞에 달하는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다.
일반적인 순항미사일이 지면과 가까운 저고도로 날아가 표적을 정밀타격한다면, 재즘 이알은 높은 수준의 스텔스 성능을 앞세워 적 방공망을 회피, 다소 높은 고도를 비행한다. 2000파운드 항공폭탄과 맞먹는 위력을 지녔다.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폴란드는 기존에 보유했던 물량과 더불어 추가로 재즘 이알을 주문했다. 독일과 네덜란드도 F-35A 도입에 따라 재즘 이알 구매를 결정했다. 일본도 F-15J 전투기에 탑재하고자 재즘 이알 도입을 결정했다.
◆끝판왕은 등장하지 않았다
반면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중에서 가장 강한 성능을 지닌 타우러스(TAURUS)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독일이 제작해 한국 공군도 260여발을 도입한 타우러스는 5m 두께의 강화 콘크리트를 부수는 관통력을 지니고 있다.
스톰 섀도는 2.5m 두께의 콘크리트를 뚫을 수 있는데, 강화 콘크리트가 일반 콘크리트보다 강도가 3배에 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타우러스의 파괴력이 얼마나 강한 지를 알 수 있다.
사거리가 500㎞인 타우러스는 위성항법(GPS)과 지형참조항법(TRN), 영상항법체계가 결합된 3중 유도장치를 사용한다. 적군의 전파방해에 영향을 받지 않고 표적에 도달할 수 있다.
타우러스는 중무장하고 깊숙이 매설된 표적을 파괴하도록 특별히 설계된 2단 탄두를 장착하고 있다.
지하 깊은 곳에 있는 표적을 공격할 때 거대한 불꽃과 먼지가 발생하면서도 정작 목표물은 파괴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견고한 지하 시설을 탄두와 신관이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타우러스의 신관은 스스로 빈 공간의 존재를 인식하고 폭발을 지연시킨다. 정확하게 표적에 도달했을 때 탄두를 터뜨린다. 지하로 관통해 들어가면서 탄두를 폭발시켜야 할 지점을 자동으로 계산하는 공간감지센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같은 성능에 주목한 우크라이나는 독일에 타우러스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독일은 현재 타우러스 600발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 물량을 우크라이나가 지원받을 수 있다면, 크름반도를 비롯한 러시아 내륙 지역의 전략 요충지를 타격할 능력을 얻게 된다.
현재 타우러스 제작사와 독일 정부 간에는 미사일 추가 생산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고, 잠재적 문제도 해결된 상태다. 다만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독일 정부가 타우러스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 실제 지원 가능성은 낮다.
독일은 타우러스의 성능을 강화한 타우러스 네오(TAURUS NEO) 개발을 추진 중이다.
사거리는 500㎞ 이상으로 늘어나며 유도 시스템은 현대화되어 첨단 관성 항법 및 GPS 보정 기술을 통합해 명중률을 높인다.
더 강력한 탄두를 장착해 벙커나 지하 대피소 등을 무력화하며, 미사일 방어체계를 돌파하는 기술도 적용될 전망이다.
스톰 섀도나 재즘보다 관통력과 정확도가 우수한 타우러스는 한국 공군도 대북 전략표적 타격을 위해 대량으로 비축하고 있다.
한국 공군이 F-15K를 도입하면서 함께 구매한 미국산 슬램 이알(SLAM-ER)은 대함미사일을 개조한 것이다. 지하시설 파괴에 필요한 관통력을 갖추지 못했다. 지상 고정 표적 파괴로 용도가 제한된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만드는 천룡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국산 KF-21 전투기에 탑재하는 형태로 이르면 2020년대 말쯤 개발이 완료될 예정이다.
사거리는 500㎞로서 슬램 이알보다 길지만, 관통력은 타우러스나 스톰 섀도보다 낮은 1.5m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지하시설 타격을 위해 지표면에 충돌할 때, 그 충격을 탄두와 신관이 견뎌야 한다. 미사일 낙하 각도와 속도도 세심하게 설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사일이 부서지거나 튕겨나간다. 미사일 개발 과정이 쉽지 않다는 점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북한군은 휴전선 이북과 내륙 지역에 수천개의 지하시설을 구축했다. 주요 공군기지에는 산을 뚫고 건설한 지하 격납고나 활주로가 있고, 탄도미사일 기지나 장사정포 포대 등도 지하에 시설을 만들었다.
다른 나라의 지하시설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경우가 다수다.
이같은 시설들을 파괴하려면 지하 관통력이 매우 우수한 공대지미사일이 필요하다. 수m 두께의 강화 콘크리트도 단번에 관통하는 위력을 지닌 공대지미사일로 지하시설을 대파해야 북한군이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없다.
국산 공대지미사일 관통력이 부족하다면, 육군 고위력 탄도미사일에 밀려날 위험도 있다. 타우러스를 추가 확보하거나 국산 미사일의 성능을 한층 끌어올리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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