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 “빨리빨리 국회표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 중인 7일 오후 7시40분, 국회의사당역 앞에 모인 시민들은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노래 ‘위플래시’에 맞춰 구호를 외쳤다. 형형색색의 아이돌 그룹 응원봉을 흔드는 시민들이 케이팝을 따라 부르는 모습은 집회가 아닌 축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날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선 1020세대 등 젊은 연령대의 참가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은 집회에서 흔히 보이는 정당·노조기를 패러디한 깃발을 들고 집회를 찾았다. 중·고교생에게 인기 있는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의미하는 ‘전국네모연합회’ 깃발부터 ‘전국 눈사람 안아주기 운동본부’, ‘직장인 점심메뉴 추천 조합’ 등 단순히 웃음을 주기 위해 만든 깃발들도 보였다.
서울 종로구에서 온 대학원생 A(26)씨는 “주변 또래들을 보면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보단 사안에 따라서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당 깃발보단 각자 좋아하는 가수, 취미생활 같은 게 ‘우리가 누구인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지민(22)씨는 “인터넷에 집회에서 응원봉을 흔드는 영상을 보고 용기를 얻어 오늘 나왔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은 비상계엄 선포가 개개인의 일상을 흔들었기 때문에 거리로 나섰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온 고3 김모(19)씨는 “집회 참가는 처음이다. 평소에 친구들과 정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데, 오늘 1년 전 전주로 전학 간 친구와 연락이 닿아 함께 집회에 왔다”면서 “‘오타쿠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면 정말 큰일이 난 거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 계엄이 그런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일반적인 촛불이 아닌 게임 마인크래프트의 촛불 아이템 모양의 전등을 가지고 집회에 참가했다.
교지 편집위원이라는 대학생 윤모(22)씨는 “어른들이 보기엔 애들 장난일지 모르지만, 계엄이 떨어진 날 ‘우리도 검열 대상이야?’라며 다들 걱정하고 무서워했다”고 말했다. 가족 단위로 집회에 참가한 이들도 있었다. 8살 아들, 남편과 함께 온 서울 마포구 주민 박정아(38)씨는 “평소 정치와는 거리를 뒀지만, 정치 때문에 일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걸 느껴서 왔다”고 말했다.
계엄 사태로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후반에 태생)의 정치참여에 반전이 있을지 주목된다. 대학생을 비롯한 20대의 정치 무관심은 계속해서 지적됐다. 실제로 4월 22대 총선의 20대 투표율은 52.4%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저조했고, 21대 총선(58.7%)보다도 낮아졌다.
대학생 이예림(21)씨는 “부끄럽지만, 정치 뉴스조차 잘 찾아보지 않았던 것이 너무 후회스럽다. 지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에서 온 A(23)씨는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하는데 서운하다. 정치인들이 우리가 관심 있어 하는 사안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라며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참가자도 모으고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을 표출할 줄 안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는 이날도 시국선언과 대자보 운동이 이어졌다. 고려대·이화여대 등 전국 31개 대학교 학생 1200명은 이날 오후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피켓 시위를 벌였다.
경북대 학생 김상천씨는 “계엄령이 터졌을 때 대학생·청년들의 정치 무관심이 자랑거리가 아니라 치욕스러운 약점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행동하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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