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병기로 키워진 철희·영수役 맡아
특교대서 쌍둥이와 탈출 뒤 가족 이뤄
각자의 능력으로 사회 악인 처벌 나서
“뉴스 보면서 답답했던 것들 해소되길”
배우 배두나·류승범·백윤식. 이들이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에서 한 화면에 나오자 반가움과 향수가 인다. 200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를 함께한 배우들이어서일 듯하다.
총 6부 중 3부까지 공개된 ‘가족계획’에서 배두나와 류승범은 부부로, 백윤식은 시아버지로 분했다. 4, 5살쯤부터 특수교육대라는 기관에서 인간병기로 키워진 영수(배두나)와 철희(류승범)는 30대에 탈출을 감행한다. 특수교육대의 쌍둥이 아기에 애착을 느껴 외부로 빼돌린다. 가족을 이뤄 숨어 살던 이들이 사회의 악당들을 응징하며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것이 극의 줄기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두 배우를 만났다. 20년 넘게 대중과 호흡하며 40대가 된 이들은 인간으로서, 배우로서 성장한 일면을 보여줬다.
◆배두나 “뉴스 보며 답답했던 것 해소됐으면”
“보시는 분들이 통쾌했으면, 나쁜 짓을 하면 벌 받는다고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배두나는 ‘가족계획’에 대해 “요즘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 보며 답답하고 가슴 아팠던 게 우리 드라마를 보며 해소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서 배두나가 맡은 영수는 다른 사람의 감각과 기억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브레인 해킹’ 기술을 가진 엄마다. 먼저 공개된 1·2화에서 그는 이 기술로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가상의 고통을 안긴다. ‘브레인 해킹’ 연기는 쉽지 않았다. 피를 보는 것도 고역이지만 눈물짓기가 까다로웠다. 설정상 영수는 해킹하며 남에게 주는 고통을 함께 느끼고 눈물을 흘린다.
배두나는 “전 울면 코가 빨개지고 다 부어오르는데 여기에서는 그냥 눈물만 나야 했다”며 “슬프고 기쁜 게 아니라 고통을 함께하는 판타지적 눈물이라 연기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배우들은 우는 장면에서 약물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는 콘택트렌즈 때문에 이를 쓰지 못한다. 그럼에도 필요할 때 눈물이 나오는 비결로 그는 ‘상상력 훈련’을 들었다. 배두나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검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저는 공감능력이 남보다 더 뛰어나진 않고 평범했다”며 “하지만 활자를 보면 전두엽이 다른 사람보다 굉장히 빠르게 운동해서 측두엽으로 넘겨 감정을 처리한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류승범과 처음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은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에 나왔지만, 같은 장면에 있지는 않았다. 배두나는 류승범에 대해 “관객으로 볼 때도 화면장악력이 대단한 배우라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보면 소름이 돋는다. 에너지가 돌풍 같고 휘몰아친다”며 “보석 같은 배우”라고 평했다.
1999년 KBS 드라마 ‘학교’로 데뷔한 그는 꾸준히 연기해온 데 대해 “직업이니까 하는 것 같다”며 “제 정체성은 배우란 직업을 빼면 잘 모르겠다”고 했다. 배우로서 표현의 원동력으로는 ‘결핍’을 들었다. 그는 “연기는 누구보다 더 잘하는 게 있을 수 없기에 배우라는 직업은 질투가 없어서 좋다”고 말했다.
◆류승범 “찌그러져 있는 아빠에 공감 가”
‘가족계획’에서 류승범이 맡은 철희는 권위 없고 존재감이 적은 아빠다. 얼핏 보면 아내 옆에 어정쩡하게 붙어 다니는 남자 같다. 결혼해서 아빠가 된 류승범은 “실제 가정에서 아빠는 싹 찌그러져 있어야 한다”며 껄껄 웃었다.
인터뷰 중 몇 차례 ‘하하하하’ 네 음절로 통쾌하게 웃은 그는 결혼 후 많이 변했다고 했다. 예전에는 못 보던 걸 보게 됐다. 철희에 대해서도 “가족을 위해 찌그러져 있을 줄 알지만 힘을 써야 할 때 쓸 줄 아는 진짜 남자이자 아빠·남편”이라며 “이런 남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제가 이렇게 가정적일지 몰랐어요. 가족이 생기니 심플해지는 거 같아요. 전에는 잡다한 고민을 사서 했는데 이제는 탁 열린 길을 가기만 하면 돼요.”
류승범은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게 어떤 이에게는 절대적인 소망일 수 있겠구나” 싶어 이 작품에 끌렸다. ‘가족계획’의 인물들에게는 가족을 만들어 평범하게 사는 게 지옥같은 특교대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다.
함께 한 배두나에 대해 그는 “작품을 통찰하는 능력이 엄청나다”며 “영수는 표현하지 않은 채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데 역시 두나씨는 자기만의 연기를 하더라”라고 전했다.
한창 배우로서 주가를 올릴 때도 “호기심이 많아 딴생각을 많이 하고 내게 다른 운명이 있지 않을까 했다”는 그는 이제 “배우라는 직업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결혼 후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동안 ‘뭘 하면서 살까, 내가 뭘 좋아하나’ 계속 고민했다.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단순한 결론에 이르렀다. 책임의식, 직업의식이 생겼다.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연습량도 훨씬 늘었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느냐는 물음에 그는 “예전부터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럼 좋은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며 “사람으로서 잘 다듬어지고 훈련하고 싶다. 좋은 배우가 된다는 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로는 “애들이 좋아하는 것”을 꼽았다. 그는 “‘뽀빠이 아저씨’처럼 분장하고 코스튬 입는 모습을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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