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림·노래로 '한강作 소감' 발표…한강 "인생서 잊지 못할 기억"
'내가 만약 토마토가 된다면 아주 맛없는 토마토가 될 거야 / 아무도 날 먹지 않게 / 아무도 나를 토마토수프에 넣을 수 없게 나무 꼭대기로 올라갈 거야.'
4학년인 애민(10) 군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마이크를 꼭 쥐고 창작시를 낭독하자 한강(54)은 만면에 '엄마 미소'를 지었다.
애민 군은 또래 학생들과 함께 한강의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를 읽은 뒤 시를 썼다고 설명했다.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링케뷔에 있는 도서관에서는 한강이 10∼15세 학생 100여명과 만나 문학을 주제로 교감하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노벨문학상 기념책자 낭독회'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다문화 가정이 많은 스톡홀름 링케뷔와 텐스타 등 2개 지역 학생을 대상으로 여는 36년 전통의 행사다.
학생들은 10월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부터 '흰',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내 여자의 열매' 등 한강의 소설 4권의 발췌본 혹은 전체를 읽고 토론을 하는 등 두 달간 '한강 공부'를 했다고 한다.
사용되는 모국어가 마흔 가지에 달할 만큼 다양한 배경의 이 학교 학생들은 각기 한강의 작품을 읽고 느낀 점을 표현한 시·그림·노래 등을 한강과 나눴다.
한 학생이 '흰'을 읽고 '내 인생은 달랐을 거다'라는 주제로 써봤다는 글귀를 낭독하자 한강은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을 귀 기울여 들었다.
'4살 때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달랐을 거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가 홀로 됐기 때문이다. 엄마의 앞에는 무수한 위기가 닥쳤지만, 엄마는 잘 견뎌내셨고….'
한강은 이날 약 40여분간 도서관 한편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여러 그룹의 학생들과 대화도 나눴다.
가장 어린 10세 학생들과 둘러앉았을 때는 '노벨상 타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책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인가요?' 와 같은 질문 세례를 받기도 했다.
사피나(10) 양은 "작가님이 제게 꿈을 물어보셔서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이라고 말했어요"라며 "작가님은 책을 쓰는 데 7년이나 걸린 적도 있다네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소년이 온다'가 가장 좋았다는 타니샤(15) 양은 "작가님이 나랑 비슷한 나이였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셨다고 말해줬다"며 "고학년이 돼 한동안 독서량이 줄어들었는데 나도 다시 책을 많이 읽고 직접 써보고 싶다"고 했다.
한강은 학생들에게 "나의 작품을 많이 읽고 대화를 나누고, 경험을 끌어내 나눠줘 정말 감동했다"며 "오늘 이 자리는 앞으로 살면서 절대 잊지 못할 특별한 기억이 될 것"이라고 감사를 전했다.
도서관 방명록에는 "이들을 이끌어준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고 적었다.
한강은 한국 언론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에서도 약 일주일간 진행된 '노벨 주간' 여러 부대행사 가운데 이날 도서관 방문을 가장 인상 깊은 순간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열 살 아이의 '토마토' 시를 언급하면서 "'내 여자의 열매'는 '채식주의자'의 시작이 됐다고 할 수 있는 소설인데, (작품속) 여자가 정말로 식물이 되는 내용"이라며 "'나를 토마토 수프에 넣지 말아달라'는 시를 써서 너무 재미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가운데 하나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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