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1차 걸프전은 스텔스라는 개념을 세계 각국이 주목하게 만든 계기였다.
레이더에 탐지될 확률을 대폭 낮춘 F-117 스텔스 전폭기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전략 표적을 정밀타격하는 모습은 스텔스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실감하게 했다.
하지만 무장을 기체 내부에 수납하는 스텔스는 폭장량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제기됐다. 강력한 지상공격력을 갖춘 전투기를 원하는 국가에선 스텔스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무장탑재량에 초점을 맞춘 F-15EX(미국), 라팔(프랑스)이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다.
F-35A를 도입한 한국도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F-15K를 계속 쓸 예정이다. 미 공군 F-15 이글의 한국형인 F-15K를 성능개량, 2030년대 이후에도 일선에 투입할 계획이다.
개량이 완료되면 미 공군 F-15 중에서 최신형인 F-15EX와 유사한 성능을 확보, 중국과 러시아의 공중위협에 맞설 능력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투기 사는 것만큼 비싼 성능개량
방위사업청은 지난 16알 제165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F-15K 성능개량 기종결정안을 의결했다.
2037년까지 약 4조5600억 원을 투입해서 F-15K의 전자장비 성능을 F-15EX와 유사한 수준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F-15K 성능개량 사업은 공군에서 우선순위가 매우 높은 중요한 사업이었다. 대북 억제력과 주변국 공군 견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F-15K는 공군의 유일한 전략적 억제력인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탑재, 500㎞ 거리의 지하시설을 파괴하는 능력을 지녔다.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는 중국, 러시아 폭격기와 전투기를 견제하기 위해선 장거리 비행능력을 지닌 F-15K의 활동이 중요하다.
하지만 2005년부터 배치된 F-15K는 주변국 위협에 맞서기엔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중국 공군이 J-16D를 비롯한 신형 기종을 잇따라 배치하고, 전자전 기술개발에 속도를 내는 동안 F-15K는 첫 실전배치 이후 별다른 개량이 없었다.
한국방공식별구역에서 중국 전폭기의 움직임을 감시·추적·견제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성능개량을 마친 KF-16이 있지만, 기체가 작고 항속거리가 F-15K보다 짧다.
이에 따라 공군은 F-15K 성능개량을 추진한다. 사우디(F-15SA), 카타르(F-15QA)가 도입한 기종에 장착된 전자장비와 소프트웨어 등을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하지만 미 공군이 사우디·카타르에 수출된 F-15에 적용된 기술을 토대로 F-15EX를 만들면서 한국 공군 F-15K 성능개량에도 이같은 부분이 반영됐다.
기계식 레이더는 능동전자주사식(AESA) 레이더인 AN/APG-82로 교체된다. 전자전 장비는 이글 능동·수동형 경고 및 생존성 체계(EPAWS)가 장착된다. F-15EX에 쓰이는 것들이다. 이외에 첨단 디스플레이 코어 프로세서 II(ADCP II)를 통해 임무컴퓨터 용량을 확장한다.
다만 사업추진 방식과 비용 등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예전에는 F-15K 조종석을 새로 제작해 기존 기체 엔진·후방부와 결합하는 방식이 거론됐다, F-15K는 전방부와 후방부를 따로 만들어 조립하므로 조종석과 날개 사이를 기준으로 기체를 분리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방추위에서는 이같은 방식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조종석 교체는) 한국국방연구원(KIDA) 사업타당성 조사 때 보잉에서 제안했다”며 “미 공군과 긴밀히 상의하면서 구체적으로 분석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고 일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미국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사업방식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보잉의 제안대로 진행하면 사업비가 1조~2조원 정도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방위사업청은 F-15K 구성품을 교체하되 기존 플랫폼은 모두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기골(기체를 이루는 주 구조물) 보강은 이뤄지지 않을 예정이다.
F-15의 수명주기는 8000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수명주기를 넘어서도 기체 구조가 튼튼해서 미 공군도 F-15 개량을 진행하면서 장비나 소프트웨어 교체만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잉에서도 F-15K 기체 후방부는 유지관리가 잘 이뤄져 있다고 평가해 이번 사업 대상에서 제외했다.
사업기간은 2037년까지로 13년에 걸쳐 개량작업이 진행된다. 공군의 항공기 가동률과 임무수행여건 등을 감안해서 정해졌다고 방위사업청은 설명했다.
사업비는 가장 큰 논란을 초래했던 부분이다. 지난 2021년 초까지는 2조원대로 예상됐지만, 이후부터는 3조~5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때 일본도 F-15J 성능개량비가 당초 예상의 3배인 5조52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논란 끝에 미국 측과 재협상을 벌여 일부 요구를 철회하고 사업비를 재조정해야 했다.
한국도 2022년 12월 F-15K 성능개량 사업추진기본전략안이 방추위에서 의결됐을 때 사업비는 3조4600억 원이었다.
지난달 미 국무부가 F-15K 성능개량과 관련해 해외군사판매(FMS)를 승인하면서 공개한 비용은 8조6000억 원에 달했다. 다만 미 국무부는 비용을 최대치로 계산해서 승인하는 방식을 사용, 사업비 변화에 따른 추가 승인 소요를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 사업비로 확정된 4조5600억 원은 미 국무부가 밝힌 비용보다는 훨씬 낮지만, 2022년 방추위 의결 시점보다는 1조1000억 원이 늘어난 수준이다.
F-35A 20대 추가 도입비(3조 7500억 원)보다 높다. 5세대 스텔스기 20대 구입비보다 4세대 전투기 59대 개량비가 더 높은 셈이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2022년(방추위 의결 시점)에는 그때 당시 미 정부 견적을 받고 사업비를 정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상황에선 글로벌 공급망 재편성, 인플레이션, 인건비 및 자재비 상승, 환율을 고려해 최종 설정했다”고 말했다.
◆국산 공대공미사일 개발 본격화
이날 방추위에선 단거리공대공유도탄-II 사업도 확정됐다. 국산 KF-21에 탑재된 독일간 아이리스-티(IRIS-T) 단거리 공대공미사일을 국산으로 대체하는 사업이다.
내년부터 2035년까지 6615억 원을 투입해 국방과학연구소(ADD) 주관 하에 연구개발이 이뤄진다. 내년 예산으로 착수금 5억원이 배정된 상태다.
체계개발이 진행되면 시제품을 제작할 업체를 경쟁입찰로 결정한다.
다만 KF-21에 시제품을 체계통합하는 작업을 맡을 업체는 수의계약으로 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게 된다. 시제품의 특성을 세세하게 파악해야 기체와의 체계통합이 가능한 특성 때문이다.
현재 KF-21은 한국형정밀유도폭탄(KGGB)과 개발중인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제외하면 외국산 항공무장을 쓰고 있다. 단거리 공대공미사일로 쓰는 IRIS-T는 사거리 25㎞의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성능을 입증했다.
하지만 IRIS-T는 2005년 전력화됐다는 점에서 2040년대 이후 공중전에서도 위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유럽에서도 IRIS-T를 대체하는 신형 미사일 개발이 거론되는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ADD는 공대공·공대함·공대지 무기를 국산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중에서 단거리 공대공미사일은 구체적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모양새다.
사업 의결 전부터 미사일에 사용될 데이터링크, 탐색기 등에 필요한 핵심기술은 LIG넥스원 등 국내 방산업체를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다. 핵심기술을 먼저 확보해서 검증을 마친 뒤 체계개발에 응용하는 방식을 통해 전체적인 개발 기간을 축소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단거리공대공유도탄-Ⅱ는 미국산 AIM-9X 사이드와인더 최신형과 유사한 개념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내에서 개발 중인 핵심기술들은 발사 전 자동포착 및 발사 후 자동포착 능력을 염두에 두는 모양새다.
발사 전 자동포착은 미사일이 탐색기를 사용해 표적을 탐지·추적한다. 이후 표적을 향해 발사된다. 발사 후 자동추적은 미사일을 쏘면 전투기가 데이터링크로 표적 정보를 제공한다. 이같은 성능을 통해 KF-21보다 낮은 고도에 있거나 후방에 있는 적기를 공격할 수 있다.
AIM-9X도 이와 비슷한 기능을 갖췄다. 의 가장 큰 특징은 발사 전 자동추적(LOBL), 발사 후 자동추적(LOAL) 기능이다. 2009년에 나온 블록2는 데이터링크를 사용해서 쏜 뛰 자동추적기능을 갖췄다. 이를 통해 가시거리 밖에서도 공격이 가능하다.
중국 공군의 전자전 시도나 고기동 비행에 대한 대책도 적용될 전망이다.
중국 전투기가 미사일을 회피하고자 섬광탄을 터뜨리면, 미사일이 적기를 격추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막대한 투자에 힘입어 성장을 거듭하는 중국의 전자전 공격에도 대비해야 한다.
J-16처럼 비(非)스텔스 전투기가 난도가 높은 수준의 고기동 비행을 하면서 미사일 추적을 따돌리려고 할 수도 있다. 초고기동이 가능하도록 운동 성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셈이다.
다만 미사일 개발과는 별개로 KF-21과의 체계통합 등에 대해선 불확실성이 적지 않다.
단거리공대공유도탄-Ⅱ는 국내에서 처음 개발하는 공대공미사일이다. KF-21도 첫 국산 전투기다. 전투기와 미사일 간 체계통합 중에서 가장 리스크가 높은 사례다.
충분한 운용경험과 기술적 검증을 확보한 전투기와 미사일을 결합할 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F-15K에 타우러스 미사일을 체계통합하는 것도 3년이 소요됐다.
수년 안에 KF-21에 국산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체계통합해야 하는 상황에서 단거리 공대공미사일까지 더해진다면, 기술적 리스크가 어떻게 발생할 것인지는 더욱 불확실해진다.
미사일 시제 제작을 맡을 국내 방산업체도 전투기에 미사일을 체계통합한 경험은 거의 없다.
IRIS-T나 미티어 공대공미사일은 미사일 제작사가 수많은 체계통합 경험을 지닌 독일 딜 디펜스나 유럽 MBDA였지만, 국내 업체는 이같은 경험이 매우 부족하며 해외에서 기술지원을 받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미사일의 개발과 더불어 KF-21 체계통합 등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난항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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