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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외교역사를 바꾼 단 한병의 와인 슈램스버그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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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2-21 12:58:13 수정 : 2024-12-21 12: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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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베이징 회담’ 닉슨 대통령·저우언라이 수상 만찬 식탁에 올라/샴페인 품종·방식 최초 미국 스파클링 와인/다양한 지역 포도·배럴발효·오랜 병숙성 통해 복합미 최대한 끌어 올려

슈램스버그. 최현태 기자

1971년 7월 15일. 전 세계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발표에 깜짝 놀랍니다. 철저한 반공산주의자이던 그가 TV와 라디오를 통해 중국 베이징 방문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역대 미국 대통령은 중국에 단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기에 닉슨의 발표는 비상한 관심을 끕니다. 실제 다음해인 1972년 2월 21일 닉슨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고 마오쩌둥 주석, 저우언라이 수상 등과 미·중 관계 정상화를 위한 정상 회담에 돌입합니다. 미·중은 회담 뒤 2월 28일 ▲영토와 주권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내정불간섭 ▲평등호혜 ▲평화공존 등 평화 5원칙을 담은 ‘상하이 공동선언’을 발표합니다. 이 회담을 계기로 중국은 해외 배타적인 고립정책을 포기하면서 일명 ‘죽의 장막’을 걷어냈고 1979년 1월 1일 미·중은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합니다.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국가주석.

 

닉슨 대통령과 저우언라이 수상.

‘닉슨, 중국에 가다(Nixon goes to China)’는 외교 정책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말로 이념적 적대세력과 손을 잡거나 그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정책 전환을 일컫는 관용어구가 됐답니다.당시 닉슨은 노쇠한 마오쩌둥 보다는 저우언라이 수상과 주로 회담을 진행했는데 닉슨이 만찬에 들고 간 미국 와인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 최초의 샴페인 방식 스파클링 와인 슈램스버그 블랑 드 블랑(Schramsberg)1969 빈티지입니다. 둘은 이 와인으로 ‘평화를 위한 축배’를 들었고  베이징 회담을 계기로 이름을 알린 슈램스버그는 백악관 국빈 만찬의 단골 와인으로 100여차례 식탁에 올랐습니다. 한국을 찾은 슈램스버그 2대 오너이자 와인메이커 휴 데이비스(Hugh Davies)를 단독 인터뷰했습니다. 슈램스버그는 나라셀라가 수입합니다.

워싱턴 포스트 기사.

◆샴페인 방식 미국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

워싱턴 포스트는 1972년 2월 24일자 신문에 ‘Champagne Treat’란 제목으로 닉슨과 저우언라이가 만찬에서 마실 슈램스버그 와인에 대한 소식을 전합니다. 신문은 "이번 주 닉슨 대통령의 만찬에 참석하는 중국 지도자들은 닉슨이 취임식에서 마셨던 미국 샴페인을 맛볼 예정이다. 캘리포니아산 샴페인인 슈람스버그는 희귀하다. 백악관은 15상자를 가져오기 위해 서부 해안으로 공군기를 보내야 했다. 이는 소매가 6.49달러인 180병이며, 약 300명에게 제공할 수 있는 양이다. 슈람스버그 포도원은 연간 5000병만 생산한다"고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사실 ‘샴페인’이라는 용어는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만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 보호를 받고 있는데 당시는 이런 개념없이 스파클링 와인을 그냥 샴페인이라 불렀던 모양입니다.    

제이콥(Jacob)과 애니 슈렘(Annie Schram).
잭 데이비스(Jack Davies)와 제이미(Jamie).

스파클링 와인 양조 방식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발효와 숙성을 커다란 스테인리스 스틸탱크에 한꺼번에 마치는 탱크방식 샤르마 메소드(Charmat Method)와 샴페인처럼 병에서 2차 발효와 숙성을 진행하는 전통방식, 트래디셔널 메소드(Traditional Method)입니다. 전통방식은 효모앙금과 함께 숙성하기때문에 잘 익은 사과향, 브리오슈 같은 복합미가 더해집니다.

슈램스버그 옛 모습. 
슈램스버그 현재 모습.

샴페인과 같은 샤르도네와 피노누아 품종으로 상업적인 전통방식 스파클링을 와인을 생산한 미국 최초의 와이너리가 바로 슈램스버그입니다. 역사는 1862년 독일 이민자 제이콥(Jacob)과 애니 슈렘(Annie Schram)이 캘리포니아의 나파밸리에 정착하면 시작됩니다. 와인 산지 세인트 헬레나 산 기슭에 빅토리아 스타일의 와이너리를 짓고 무려 2마일에 달하는 지하 셀러를 만듭니다. 하지만 오랜동안 와이너리는 폐허로 방치됐고 100년이 흘러 이곳을 발견한 이가 슈램스버그 설립자인 잭 데이비스(Jack Davies)와 제이미(Jamie) 부부입니다. 와이너리를 복원한 부부는 세계적인 수준의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실천에 옮겼고 1965년 미국 최초의 전통방식 스파클링 와인 슈램스버그 블랑 드 블랑이 탄생합니다.

슈램스버그 오너 휴 데이비스(Hugh Davies).  최현태 기자

“1965년 부모가 최초의 슈램스버그를 선보였을 때 사실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가 몇 개 있었습니다. 그런데 샴페인처럼 샤르도네와 피노누아가 아니라 리슬링이나 코냑을 만드는데 주로 쓰는 콜롱바르 같은 품종이었어요. 샴페인과 같은 품종으로 만든 것은 슈램스버그가 처음이에요. 지금도 나파밸리 500여개 외이너리 중에서 샴페인 품종으로 만드는 전통방식 스파클링 생산자는 15개정도이고 소비자가 40달러 이상의 프리미엄 와인을 꾸준하게 유통망을 통해 공급하는 생산자는 5개 정도에 불과하답니다.”

제이 슈램스. 최현태 기자
리들링.

◆블렌딩의 마법사

슈램스버그 아이콘 와인은 제이 슈램(J. Schrams)입니다. 2013 도쿄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개최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돔 페리뇽, 떼땅저, 크룩 등 유명 샴페인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할 장도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전통방식 스파클링 와인은 2차 병발효와 숙성과정에서 효모앙금을 병목으로 모으는 리들링(riddling)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를 급하게 진행하면 내부압력 때문에 병이 터져버릴 수 있어 병의 각도를 조금씩 들어 올리며 천천히 돌려야합니다. 리들링을 요즘은 자동으로 돌려주는 기계장치 기로팔레트를 많이 사용하지만 슈램스버그는 일일이 손으로 돌리는 작업을 고집합니다. 그만큼 섬세하게 양조한다는 얘기입니다. 또 복합미를 높이기 위해 1차 발효때 오크배럴도 사용합니다. 보통 25%를 오크배럴 발효하며 플래그십 제이 슈램스는 40% 오크배럴 발효합니다.

슈램스버그 포도밭.

또 다양한 기후에서 생산된 포도를 블렌딩해 복합미를 한층 끌어 올립니다. 샴페인은 포도밭별, 빈티지별로 따로 베이스 와인을 만들어 보관하며 그해 포도를 위주로 여러 베이스 와인을 블렌딩해 만듭니다. 따라서 블렌딩을 결정하는 셀러 마스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슈램스버그도 마찬가지입니다. “슈램스버그는 나파밸리, 멘도시노, 소노마 카운티, 마린 카운티의 포도밭 78개, 172개 블록에서 수확한 포도로 매년 350개 이상의 베이스 와인을 만든답니다. 이중 매년 12~14개의 베이스 와인을 블렌딩해서 만들어요. 샴페인처럼 복합미가 풍성한 이유랍니다. 2차 병숙성도 상당히 오래 진행합니다. 보통 샴페인 최소 1년이상 병숙성하는데 슈램스버그는 보통 2~5년 병숙성하고 길게는 10~12년동안도 숙성합니다.”

휴 데이비스(Hugh Davies). 최현태 기자

휴 데이비스는 이처럼 스파클링 와인은 베이스 와인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출발점은 포도 그 자체라고 강조합니다. “지금도 다양한 지역의 포도를 사용하고 있지만 매년 포도 조달량의 5~10%를 전에 한번도 사용한 적 없는 포도밭의 포도를 사용한답니다. 샤르노네와 피노누아를 사용하지만 어느 한 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와인을 절대 추구하지 않아요. 다양한 포도밭이 복합미를 더해주기를 바라죠.”

슈램스버그 버블. 최현태 기자

샴페인은 블랑 드 누아를 만들때 피노누아나 피노뮈니에 등 레드 품종만 사용합니다. 하지만 슈램스버그는 샤르도네를 조금 섞는 것이 특징입니다. “베이스 와인을 만들때 온도 조절이 가능한 스틸탱크에서 프레시하게 만듭니다. 일부 피노누아는 조금 높은 온도에서 오크배럴 발효해 리치한 스타일로 만듭니다. 젖산발효도 자연적으로 진행하죠. 이렇게 다양한 피노누아를 블렌딩합니다. 여기에 약간의 샤르도네를 넣어 산미를 끌어 올리고 여운도 길게 만든답니다.”

슈램스버그 지하 셀러.

전 세계적으로 스파클링 와인 소비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미국도 판매량이 2002년 1100만 케이스에서 2022년 3600만케이스로 증가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스파클링 와인 소비가 늘고 있습니다. “연간 생산량은 스파클링 와인이 10만케이스, 120만병정도입니다. 카베르네 소비뇽과 피노누아는 3000케이스에 생산합니다. 슈램스버그는 생산량의 98%가 미국내에서 소비됩니다. 다른 유명 샴페인 기업들은 명품도 팔고 향수도 팔면서 와인도 팔죠. 하지만 슈램스버거는 가족기업이라 생산량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와인의 품질을 유지하려면 생산량을 적정 수준으로 조절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제이 슈램 블랑. 최현태 기자

◆샴페인 능가하는 제이 슈램

슈램스버그 플래그십 제이 슈램 블랑(J. Schram Blancs) 2015는 샤도네이 84%, 피노누아 16%로 만듭니다. 잘 익은 살구, 복숭아, 구운 사과로 시작해 온도가 오르면 오랜 효모앙금 숙성이 주는 브리오슈 향이 풍성하게 비강을 파고듭니다. 1987년 빈티지로 첫 선을 보인 뒤 미국의 개성과 우아함을 담은 스파클링 와인으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슈램스버그의 포도밭중 가장 추운 밭에서 자란 샤도네이를 주로 사용하고 베이스 와인의 약 35%는 배럴발효합니다. 무려 8년간의 병숙성을 거쳐야 세상에 나오며 10년이상 숙성이 가능합니다. 가장 좋은 10개 포도밭의 샤르도네만 골라서 연간 3만병만 생산합니다. 2014 빈티지는 2022년 와인앤수지애스트 100대 와인중 5위로 선정됐습니다.

제이 슈램 누아. 최현태 기자

슈램스버그 제이 슈램 누아(J. Schram Noirs) 2015는 피노누아 79%, 샤도네이 21%로 만듭니다. 잘 익은 살구, 천도 복숭아, 조린 배, 구운 사과로 시작해 레몬커드, 꿀, 바닐라, 토스트가 더해집니다. 8년 병숙성을 거칩니다.

슈램스버그는 기본급을 잘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1965년 탄생한 첫 작품, 슈램스버그 블랑 드 블랑은 샤르도네 100%입니다. 레몬, 자몽, 살구, 흰복숭아로 시작해 온도가 오르면서 망고 등 열대과일 풍미가 더해지고 갓 구운 빵, 바닐라 크림 파이의 풍미가 복합미를 더합니다. 신선한 굴, 조개류, 게살 요리, 세비체, 구운 흰살 생선, 레몬 치킨, 태국 커리 등과 잘 어울립니다. 2년 병숙성합니다.

슈램스버그 블랑 드 블랑과 블랑 드 누아. 최현태 기자

슈램스버그 블랑 드 누아는 피노누아 90%, 샤도네이 10%입니다. 잘 익은 복숭아, 살구, 딸기, 오렌지향이 풍성하게 피어나고 빵 굽는 풍미가 더해지면서 복잡미묘한 효모향이 긴 여운을 남깁니다. 배럴 숙성과 젖산 발효를 거친 와인을 일부 블렌딩해 풍만한 바디감이 느껴집니다.

슈램스버그 브뤼 로제(Brut Rose)는 피노누아 62%, 샤도네이 38%로 만듭니다. 산딸기, 체리, 오렌지로 시작해 바닐라향이 은은하게 더해집니다. 스시, 연어, 피자, 로스트 치킨, BBQ, 피자와 크리미한 치즈, 타르트 등의 디저트와 잘 어울립니다.

슈램스버그 크레망 데미 섹. 최현태 기자

슈램스버그 크레망 데미 섹(Cremant Demi Sec)은 플로라(Flora) 51%, 피노누아 32%, 샤도네이 17%입니다. 복숭아, 파인애플, 레몬 케이크, 라임 껍질, 설탕에 졸인 살구 풍미로 시작해 갓 구운 브리오슈의 아로마가 더해집니다. 과일 타르트, 가벼운 케이크, 과일 소르베, 크림 브륄레 등 디저트류와 매콤한 음식, 블루치즈, 푸아그라와 잘 어울립니다.

휴 데이비스. 최현태 기자
제이 데이비스 이스테이트 카베르네 소비뇽. 최현태 기자

슈램스버그는 레드 와인도 만듭니다. 제이 데이비스 이스테이트 카버네 소비뇽(J. Davies Estate Cabernet Sauvignon) 2021은 나파밸리 다이아몬드 마운틴 디스트릭트의 카베르네 소비뇽 78%, 말벡 15%, 쁘띠베르도 3%, 메를로 3%, 카베르네프랑 1%를 섞은 전형적인 보르도 블렌딩입니다. 깊고 묵직한 블랙 커런트, 블랙베리, 코코아 파우더, 토스트한 마시멜로향을 시작으로 에스프레소와 아니스향이 피어 납니다. 입에서는 풍부한 블랙체리, 석류, 아사이 베리, 블랙 페퍼가 느껴지며 탄닌은 벨벳처럼 부드럽습니다. 22개월 오크배럴 숙성하며 10년이상 숙성 잠재력을 지녔습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1&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루아르, 알자스와 이탈리아, 포르투갈,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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