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정부가 발표한 ‘2025년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1.8% 성장하는데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7월 ‘2024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발표했던 2.2%보다 0.4%포인트 낮춘 수치다.
우리 경제가 2% 미만으로 성장한 해는 1998년 외환위기를 포함해 6차례뿐이었는데, 정부는 올해뿐 아니라 내년도 1.9%로 내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을 터다.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인 탓이다.
정부는 이번에 전망치를 낮춘 주된 이유로 핵심 산업인 반도체 등 주요 수출품목에서 글로벌 경쟁력의 심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 영향 등을 꼽았다.
하지만 더 심각한 부분은 내수경제 부진이다. 작년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 대비 12.3포인트 하락한 88.4로 조사됐는데, 역대 최대 규모인 가계부채, 취업률 하락, 고환율, 생산연령인구 감소, 건설 부문 투자 위축 등의 영향으로 실물경제를 움직이는 소비심리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가계대출은 지난 한 해 동안만 40조원 넘게 증가하며, 연일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정부가 당초 지난해 7월 시행할 예정이었던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가 9월로 미뤄지면서 7~8월에만 가계대출은 14조9000억원 급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3분기 말 기준 차주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05만원에 달하며, 2021년 1분기 말 이후 9000만원을 처음 돌파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전체 가계대출 차주는 1974만명으로 파악됐으며, 금액은 1900조원을 넘어서는 등 모두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여기에다 올해 고용률도 낮아질 전망이어서 당분간 경기침체로 소비심리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인다.
금융당국이 올해 7월부터 스트레스 DSR 3단계 규제를 시행할 예정이어서 상반기 가계대출 수요는 상대적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문 전망도 어둡다. 정부는 올해 취업자 증가 수를 지난해 전망했던 17만명보다 5만명 줄어든 12만명으로 예측했다. 일자리의 큰 몫을 담당하는 중소·중견기업의 고용률 하락과 주요 수출산업의 부진으로 제조업 신규 일자리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환율 상승도 경제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인 12월30일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 1472.5원에서 새해 첫 거래일인 2∼3일 1460원 중반대로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고환율이다.
환율 안정을 위해 대규모 외화 투자 유치가 절실한 상황인데, 11월부터 이런 기대에 부응할 것으로 전망되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은 자칫 탄핵 국면 장기화에 따른 준비 미흡으로 제한적인 효과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대두된다.
문제는 향후 정국 전망이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부의 노력뿐 아니라 국회의 위기의식 공유도 필요한데, 현재 탄핵 정국에서 민생문제, 경제문제가 얼마나 심도 있게 다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권은 벌써 조기 대통령선거까지 염두에 두는 분위기다. 조기 대선이 다시 치러진다 해도 뚜렷한 경제위기 극복 해법이 없다면 중도층과 무당층 민심을 사로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각 당이 몰입하고 있는 정치 현안에서 조금만 나와 보면 곳곳에서 경제위기 사이렌을 들을 수 있을 터다.
국내 주식시장이 부진을 거듭하는 가운데 1450만명에 이르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지난 2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5 증권 자본시장 개장식’엔 한해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누가 어떤 메시지를 내는지 경청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당국 인사와 더불어 정치권에서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자본시장 개선안 및 개미의 투자 여건 향상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냈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참석했고, 관련된 입법을 주도해온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장도 함께했다. 정무위 여야 간사를 비롯한 국회의원 다수가 참여했지만, 더불어민주당에선 대표성을 지닌 수뇌부는 보이지 않았다.
정치적 이슈가 복잡하게 얽혀져 있는 가운데 2025년이 시작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국민이 정치 지도자에게 원하는 가장 큰 요구 중 하나가 ‘먹고 사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새해 아침 어떤 지도자가 이 어려운 경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 국민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금융감독원 금융투자 옴부즈만,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협력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