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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면체 형태로 ‘국새 보관함’ 형상화… 대통령기록물의 영구성 상징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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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1-08 06:00:00 수정 : 2025-01-08 04: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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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권력의 궤적 담은 ‘대통령기록관’

단순하면서도 이상적 완전체 표현
4개 층 관통하는 경사벽엔 봉황 새겨
천장 빛과 만날 땐 장엄한 모습 연출

곡선형 저층부, 주변 공원과 연속성 이뤄
‘기록으로의 산책’ 의미 더해 눈길
권력자들 불완전함과 견제 노력 오롯이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헌법 제69조에 나온 대통령 선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취임 이후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자 대표로 우리나라를 통치한다. 그래서 대통령과 관련된 기록물은 국정 운영의 핵심을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대통령기록물을 보관하기 위한 첫 번째 장소는 2007년 12월 성남시에 건립된 나라기록관 일부에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청주시의 청남대를 비롯해 몇 군데에 분산돼 있기도 했다. 그러다 대통령기록물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하기 위해 2016년 세종시에 대통령기록관이 개관했다.

 

대통령기록관은 국새보관함을 상징하는 정육면체 상층부와 자연을 닮은 곡선형 저층부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이 있는 상층부는 ‘기록의 영구성’을, 기록관리 및 행정지원 시설이 자리한 저층부는 ‘기록으로의 산책’이라는 콘셉트를 나타낸다.

세종시는 2004년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대한민국의 새로운 행정수도가 아닌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조성됐다.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의 집무공간이 없는 세종시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존재를 대변하는 유일한 시설이다. 현재 이 건물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의 기록물까지 보관돼 있는데, 향후 두 명의 대통령기록물도 소장될 예정이다.

대통령기록관의 설계를 맡은 삼우설계와 건원건축은 건물을 정육면체로 만들어 대한민국의 모든 대통령이 사용하는 국새를 보관하는 함(函)을 상징하고자 했다. 국새보관함이 역대 대통령들이 사용해 온 국새를 안전하게 보관하듯 대통령기록관도 대통령과 관련된 기록물을 온전하게 보관한다는 서사(narrative)다.

실제 국새는 헌법 개정 공포문의 전문이나 대통령이 임용하는 국가공무원의 임명장 등에 사용된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국새는 1949년에 처음 제작된 이후 2011년에 다섯 번째로 만들어졌다. 국새 보관실은 대통령실이 아닌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 있는데, 4중의 보안장치가 설치돼 있다고 한다. 금고 보안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국새보관함을 최대한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황동과 목재를 썼다. 대통령기록관의 설계자는 견고함이라는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황동과 목재를 현대적인 재료인 검은색 석재와 투명한 유리로 치환했다.

 

곡선을 강조한 대통령기록관의 외관.

모서리의 길이가 모두 같은 정육면체는 건축물의 형태를 최대한 단순화한 육면체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세상에 육면체 형태의 건물은 많지만 정육면체 형태의 건물은 흔하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 사각뿔 형태의 피라미드나 구체의 스피어(Sphere)처럼 요철 없는 매끈한 겉면의 정육면체 건물도 그 자체로 완전해 보인다. 설계자가 한 변의 길이가 40m인 정육면체 건물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대통령기록물의 영구성이다.

대통령기록관에서 전시관이 있는 정육면체 건물과 달리 기록관리와 행정지원시설이 배치된 저층부는 호수와 맞닿아 있는 대지 형태를 고려해 곡선형으로 설계돼 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저층부는 공원의 일부로 주변과 연속된 경관을 이룬다. 이러한 설계는 ‘기록으로의 산책’이라는 개념을 뒷받침한다. 물론 주변 대지가 건물의 상층부로 연결되는 건축물 대부분이 그렇듯 대통령기록관의 저층부에도 펜스가 설치돼 있어 관람객들이 실제 산책하듯 건물을 오르내릴 수는 없다.

호수공원 반대편으로 열린 진입로를 따라 정육면체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네 개 층을 관통하는 24m 높이의 경사진 벽이 나온다. 벽에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이 새겨져 있고 역대 대통령의 얼굴이 등장하는데, 천장의 틈과 작은 창으로 스며들어 오는 빛으로 인해 압도적이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이룬다. 이 장면이 관람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감응한다”는 의미의 ‘천인상감(天人相感)’이다.

 

봉황은 덕이 높은 천자(天子)가 땅으로 내려올 때 나타나는 징조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천인상감은 대통령이 백성의 마음, 시대의 흐름, 정의와 도리를 헤아려 국민의 뜻에 부합하는 정치를 펼쳐 달라는 바람이 담긴 말이다. 모두 국민이 권력을 위탁한 사람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사실 어떤 정치체제든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현명한 사람이 국가를 통치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았다.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이나 착한 사람이 나라의 기강이라는 중국 후한시대의 학자 마일제의 말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권력을 위임받은 자도 위임한 개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국왕의 권리는 신에게서 받은 절대적인 것이기에 인민이나 의회가 제한할 수 없다는 믿음(왕권신수설)이 사라진 후 많은 나라들은 대통령이 아닌 헌법을 국가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헌법의 수호자’라는 무거운 책무를 부여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 대통령 선서의 첫머리에도 헌법 준수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의식은 제도만큼 빨리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대통령 개인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왕과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혼재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법치주의와 합리주의를 기반한 근대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심한 부침과 때로는 후퇴를 경험한다. 대통령기록관에 보관·전시된 대통령에 대한 기록물을 통해서도 권력을 임시로 위임받은 한 개인의 불완전함을 엿볼 수 있다. 동시에 이를 상쇄하기 위한 견제와 균형의 장치를 만들어 온 노력도 확인할 수 있다.

작년 12월3일, 군 헬기가 국회에 내려앉고 그 안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쏟아져 나와 시민과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최고 권력자의 독단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더불어 국회의원 과반수가 찬성해 계엄을 해제하고 열하루 후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키는 장면을 보며 합의된 정치체계가 불완전한 개인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 안도했다.

헌법재판소의 시간이 흐른 뒤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어떻게 될지 그리고 그의 정치 말로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물론 바라는 바는 있다. 어찌 됐든 확실한 건 그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이니 그와 관련된 기록물들도 이곳에 온전히 보관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이를 관람하고 누군가는 평가할 것이다.

12·3 비상계엄을 통해 ‘일체를 통할하여 거느리는 사람’이라는 뜻의 ‘통령(統領)’ 앞에 붙는 ‘대(大)’를 이제 ‘대(代)’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적으로 권력을 위임받은 자가 얼마나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는지를 늘 되새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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