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인정하며 아무런 조건 없이 석방 선고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10일(현지시간) ‘성추문 입막음’ 의혹 사건과 관련해 1심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다. 법원은 다만 트럼프 당선인이 징역형을 선고받을 경우 대통령직 수행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무조건적인 석방(unconditional discharge)’을 선고했다. ‘무조건적인 석방’은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아무런 조건 없이 풀려나게 하는 선고의 한 종류다. 대통령직 수행에는 사실상 영향이 없다.
뉴욕주 1심 법원인 맨해튼 형사법원의 후안 머천 판사는 이날 선고 공판에서 성인영화 배우와의 성관계 의혹 폭로를 막으려고 입막음 돈을 지급하도록 하고 관련 회계기록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 평결을 받은 트럼프 당선인에게 ‘무조건 석방’을 선고했다.
머천 판사는 선고 자체를 하지 말라는 트럼프 측 요구는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을 ‘유죄 판결’로 공식화하되, 실질적으로는 처벌하지 않는 길을 택했다.
머천 판사는 선고 공판에서 “이 나라의 최고위 공직(대통령)에 부여된 상당하고 특별한 법적 보호는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요소”라면서도 “그것이 범죄의 심각성을 경감시키진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 범죄를 정당화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대통령직에 부여된 법적 보호가 특별한 것이지, 그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법대로’ 선고할 경우 4년 안팎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 상황에서 선고 자체를 하지 말라는 트럼프 측 요구를 판사가 거부한 것은 ‘유권(有權) 무죄’의 사례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사법 시스템을 지키려는 고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트럼프 당선인이 작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해 취임을 앞둔 상황에서 재판부는 미국 대통령을 처벌받은 '전과자'로 만드는 것이 미국의 국제적 위상과 국민 통합을 위해 좋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처벌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확대 가능성도 판사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어 보인다.
이 사건은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가 자신과의 옛 관계를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는 대가로 성인물 여배우(스토미 대니얼스)에게 13만달러(약 1억7000만원)를 주고 회사 장부엔 다른 용도로 조작해 기재했다는 의혹에 대한 것이다. 뉴욕 맨해튼 지검은 2023년 3월 트럼프의 입막음 시도와 장부 조작이 유권자를 속여 대선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가려는 작업이었다고 주장하며 34건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지난해 5월 30일 배심원단 12명은 만장일치로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렸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판결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이번 ‘무조건 석방’ 판결은 이번 사안이 범죄가 되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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