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사이언스프리즘] 인공지능은 창작이 가능할까

관련이슈 사이언스 프리즘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5-01-15 23:04:23 수정 : 2025-01-15 23:04:21

인쇄 메일 url 공유 - +

사진기의 등장으로 화풍 변화
상대성이론은 예술·철학에 영향
AI는 인간 창의력의 본질에 질문
기술진보, 인류진화의 문 열 수도

2020년대는 가히 인공지능의 황금기라고 할 만하다. 인간의 프롬프트(요청) 기반으로 원하는 그림을 그려 주는 인공지능이 등장했으며, 인간처럼 말하는 인공지능까지 등장했기 때문이다. 2016년으로 돌아가면, 수많은 미래학자가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을 직업 상위권으로 미술가나 소설가를 꼽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5년 만에 상전벽해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수년의 시간 동안 인공지능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위와 같은 진보는 “문제와 정답 쌍”을 만드는 기술의 발전 덕분에 가능했다. 2016년 이전에 가장 유망하던 인공지능은 사물인식이었다. 사물인식은 먼 과거부터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이어서 연구가 계속되었는데, 2012년 인공지능 기반 알고리즘이 등장하면서 상용화가 가능해졌다. 사물인식 학습에 사용하는 데이터는 당연히 “사진(문제), 사물 이름(정답)”이다. 인공지능에 사진을 주고, 사물의 이름을 맞히도록 학습시키는 것이다. 사진에서 사물 위치까지 찾아야 한다면, “사진(문제)과 사물 이름, 사진 속 사물의 위치(정답)” 쌍을 만들어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면 된다.

정인성 작가

그런데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을 만들려고 하니 문제가 생긴다. 그림 그리기는 정답, 오답이 존재하는 형태가 아니라, 황희정승식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사물인식 인공지능이 새를 찾으라고 했는데 개를 찾으면 오답이지만,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이 “설원 위의 늑대”를 입력으로 받은 뒤 그린 것이 늑대의 뒷모습이건 앞모습이건 정답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사진에서 일부 영역을 찾는 사물인식과는 달리, 그림 그리기는 고작 6글자의 입력으로 그림이라는 무한한 가짓수의 출력을 내놓는 작업이니 질문 정답 쌍을 만들기 힘든 것이다.

학자들은 이 문제를 매우 독특한 속임수로 해결하였다. 바로 인공지능에 그림 복원을 학습시키는 것이다. 일단, 인터넷 등에서 사진과 해당 사진의 설명을 모은다. 그 뒤 인터넷에서 구한 원본 사진에 의도적으로 노이즈를 약간 추가한 뒤, 인공지능에는 “사진 설명 + 노이즈 낀 사진”을 보고, “원본 사진”을 복원하라는 일을 시키는 것이다. 즉, 글을 힌트로 삼아 노이즈를 없애라는 것이다. 학습을 진행함에 따라, 점점 더 노이즈를 진하게 만든다. 나중에 인공지능은 원본 사진이 거의 보이지 않는 수준이 되어서도 그럭저럭 원본 그림을 찾게 된다. 사진 설명이라는 글 힌트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뒤 실제로 인공지능을 창작용으로 사용할 때는 인공지능에 글과 100% 노이즈로만 구성된 사진을 준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에 “북극곰이 사냥하는 장면”이라는 글과 순수한 노이즈뿐인 그림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인공지능은 철석같이 사용자를 믿고(?), 이 노이즈 덩어리의 원본은 북극곰이 사냥하는 장면이라고 믿고 북극곰 비슷한 패턴, 사냥감 비슷한 패턴을 찾아내고 복원해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선 애초에 원본이 없었으니 이게 곧 창작인 셈이다.

어쩌면 이제 인간 창의력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 할 시기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성역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분야가 사실은 문제 정의만 조금 다르게 하면 컴퓨터가 풀 수 있는 문제가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림 그리기라는 추상적 요청을 ‘글을 힌트로 그림 원본 찾기’라는 구체적 요청으로 바꾸면 인공지능이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참고로 챗GPT도 비슷하게, 대화하기라는 추상적 주제를 ‘긴 문장을 보고 다음 단어들 순서대로 맞추기’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성역이라고 생각했던 문제들을 컴퓨터가 풀 수 있게 바꾸는 과정에서 엄청난 창의력과 속임수가 들어간다.

역사를 살펴보면, 기술 발전이 예술과 철학 등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있다. 사진기가 등장하자 화가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바뀌었고, 상대성이론이 등장하면서 예술과 철학에 영향을 미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공지능이 인간 창의력이란 무엇인지 생각할 거리를 준 것이다. 충격을 딛고 일어서면, 이번에도 과거에 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진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정인성 작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유인영 '섹시하게'
  • 유인영 '섹시하게'
  • 박보영 '인간 비타민'
  • 박지현 ‘깜찍한 손하트’
  • 정혜성 '심쿵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