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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이 다가오면서 정치권과 법조계에는 ‘헌법재판소의 기능이 조만간 정지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이른바 ‘10월 헌재 마비설(說)’이다. 헌재소장을 포함한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돼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총 300석 가운데 과반(151석 이상)이 훌쩍 넘는 170석을 가진 이상 민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재판관 선출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10월17일 6년 임기가 끝나는 국회 몫 재판관 3명의 후임자 인선 논의는 여야의 강대강 대치 속에 감감무소식이었다. 헌법재판소법 23조 1항은 “재판부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했다. 민주당 반대로 재판관 인선이 지연되면 헌재가 ‘6인 체제’로 쪼그라들어 아예 심리조차 못 여는 상태가 되니 ‘마비설’이 출현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뉴시스

여소야대 국회는 2024년 8월2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여러 가지 근거를 들긴 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이 위원장이 KBS, MBC 등 공영방송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칠 것이란 우려가 탄핵의 핵심 사유였다. 문제는 이 위원장이 취임한 게 탄핵 불과 하루 전인 8월1일이었다는 점이다. 방통위원장이 되고 나서 겨우 24시간 안에 방송사를 완전히 장악해 친윤(친윤석열) 일변도 뉴스로 개편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당시 국민의힘 대표이던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사람이 단 하루 만에 탄핵 당할 만한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게 가능한가”라고 반박했겠는가. 탄핵소추와 동시에 직무가 정지된 이 위원장은 헌재가 마비되는 경우 결정이 언제쯤 내려질 것인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헌재 기능의 정지가 불과 1주일 앞으로 다가온 2024년 10월10일 이 위원장 측은 헌재에 “재판관 정족수 부족으로 나의 탄핵심판이 정지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재판관이 7명 미만이면 심리조차 열 수 없도록 한 헌재법 23조 1항은 탄핵을 당한 피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논리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나흘이 지난 10월14일 헌재는 재판관 9명 전원일치로 “헌재법 23조 1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효력을 정지한다”고 선고했다. 국회가 재판관 3명의 후임자를 선출하지 않더라도 ‘6인 체제’ 헌재에서 필요한 모든 일을 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 뒤 윤 대통령이 느닷없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켜 국회 탄핵소추를 당하고, 헌재에 의한 신속한 탄핵심판 필요성을 느낀 민주당 주도로 국회 몫 재판관 2명이 충원돼 헌재가 ‘8인 체제’가 된 것은 모두가 아는 내용이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청사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15일 헌재에서 이 위원장 탄핵심판 사건 마지막 변론기일이 열렸다. 국회 탄핵소추가 이뤄진 뒤 5개월이 훨씬 지난 시점이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이 위원장)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신속한 재판을 원했다”며 “재판관 ‘6인 체제’ 하에서 변론은 할 수 있었지만 선고까지 할 수 있느냐는 법적 문제가 있었다”는 말로 심판이 지연된 이유를 설명했다. 문 권한대행은 이어 “결과적으로 피청구인에 대한 재판이 상당히 늦어진 점에 대해 재판장으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선고는 될 수 있으면 빨리 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헌재가 선고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사건 당사자에게 사과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아무리 형편없는 공무원이라도 어떻게 취임 하루 만에 탄핵을 당할 만큼 몹쓸 짓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헌재가 신속한 심리와 선고로 억울한 공직자들의 한(恨)을 풀어주길 소망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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