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체포·구속영장 불복은 자가당착
초유의 법원 난동, 있을 수 없는 일
‘정치 실패’ 극복할 방법은 법치뿐
문재인정부가 2020년 12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할 때 ‘수사 시스템이 엉망이 될 것’이란 우려가 컸다. 졸속 입법 탓에 법체계가 흔들리고 내용이 엉성해서다. 심지어 수사권을 어디로 넘길지도 정하지 않고 법부터 처리하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에만 혈안이 돼 타당한 비판에도 귀를 막았다. 그 결과 내란죄 수사권이 ‘의도치 않게’ 경찰로 넘어가 지금 같은 혼란을 겪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수사, 체포, 구속 과정에서 드러난 사법 체계는 난장판을 방불케 했다. 이전 같으면 검찰이 주도하는 합동수사본부에서 재빠르게 윤 대통령을 구속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수처와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여러 번 헛발질하며 윤 대통령을 힘겹게 체포·구속했다. 법원이 체포·구속영장을 발부해 수사 및 관할권 논란의 종지부를 찍은 건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체포영장, 체포 적부심, 구속영장실질심사 등 사법 절차에서 한 번이라도 기각됐다면 감당하기 힘든 사달이 났을 게다.
현직 대통령의 구속은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헌법정신을 재확인시켰다. 하지만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법치가 죽고 법 양심이 사라졌다”고 반발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일개 검사·판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한 건 선을 넘었다. ‘짐이 곧 국가’라던 왕정시대에나 들을 법한 말 아닌가. 변호인단이 법리적 대응은 뒷전이고 정치적 선동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특권과 반칙을 바로잡겠다.”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면 그 피해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먼저 돌아간다.” 윤 대통령이 자주 하던 말이다. 검찰총장 출신에 ‘헌법주의자’를 자처하던 그가 공수처 수사는 물론 판사가 적법하게 발부한 체포·구속영장을 불법·무효라고 한다.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는 주장은 말문을 막히게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검찰 수사에 반발했지만, 조사는 꼬박꼬박 받았는데 말이다.
이 와중에 윤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벌인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는 충격적이다. 법원에 무단 침입해 기물 파괴, 경찰관 폭행, 심지어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아다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법치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자 중대한 도전이다. 법치를 가장 중시하는 보수의 가치에도 반하는 것 아닌가. 지지층에게 “끝까지 싸우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윤 대통령은 이 사태가 자신으로 인해 촉발됐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강성 지지층을 자신의 ‘불법 방패막이’로 이용하는 건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할 일이 아니다.
공수처와 법원도 논란을 자초한 책임이 있다. 피의자가 대통령인데도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공수처가 관할인 서울중앙지법이 아니라 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신청해 ‘판사 쇼핑’ 논란을 자초한 건 부적절했다. 타당하고 현저한 이유가 없다면 이 규정을 지키는 게 옳았다. 하지만 공수처는 군색하게 편법을 썼다. 게다가 진보 성향인 서부지법 영장판사는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형사소송법 110조 적용 배제’라는 이례적 문구를 넣어 논란을 더 키웠다. 윤 대통령 측에 절차적, 이념적으로 반발할 빌미를 제공한 건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도 문제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2심 재판은 국가의 명운을 결정할 중대 갈림길이다. 두 재판 모두 ‘화약고’나 다름없다. 재판에서 형평성 논란, 절차적 흠결이 발생하면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가늠하기 어렵다. 헌재, 법원은 신속·공정한 재판을 통해 대다수 국민이 승복할 수 있는 결론을 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지배’라는 표현이 정당화되는 건 오직 법의 지배뿐이다. 법의 지배가 확립돼야 국민이 스스로 합의한 약속인 법에 의해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다. 힘 있는 자들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도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해 국난을 초래한 만큼 지금은 헌법과 법률이 제시한 길을 따라가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지금 법치를 파괴하는 건 공멸을 부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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