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담배를 피우고, 가죽 부츠를 신은 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모는 수녀. 영화 ‘검은 수녀들’(사진)에서 송혜교가 연기한 유니아 수녀의 말과 행동은 거침이 없다. ‘사제와 달리 서품받지 못한 수녀는 구마(마귀를 내쫓는) 의식을 할 수 없다’는 준엄한 말로 유니아의 의지를 꺾으려는 나이 든 신부들에게 그는 쏘아붙인다. “참 말씀 짜증 나게 하시네.”
권혁재 감독이 연출한 ‘검은 수녀들’은 악령이 깃든 소년 희준(문우진)을 구하려는 유니아의 분투를 담은 오컬트 영화다. 544만 관객을 동원한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2015)을 잇는 스핀오프(파생작)다. 주인공이 사제에서 수녀로 바뀌었을 뿐, 작품의 큰 줄기는 10년 전과 동일하다. 희준의 몸에 숨어든 악령이 12형상(장미십자회에서 일련번호를 분류한 악령의 종류) 중 하나라고 확신한 유니아는 의사인 미카엘라 수녀(전여빈)와 함께 구마 의식에 나선다. 당장 올 수 없는 구마 사제를 기다리다 희준이 사망할 것이 분명한 급박한 상황. 유니아는 소년을 구하기 위해 금기를 깨고 수녀에게 허용되지 않은 선을 넘는다. 희준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무당의 도움을 받기도, 타로카드로 미래를 점치기도 한다. 유니아의 옛 친구인 수녀 출신 무당이 유니아의 부탁으로 악령 들린 소년을 위한 굿을 벌이는 장면에서는 갈래가 다른 초자연적 현상을 한데 버무려 ‘K오컬트’ 특유의 비주얼을 선보이겠다는 감독의 야심이 드러난다.
‘두근두근 내 인생’(2014) 이후 11년 만에 스크린에 진출한 송혜교가 생애 첫 오컬트물 주역으로 나섰다는 점도 이목을 끈다. 그는 지난 20일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기자 시사회에서 “(드라마) ‘더 글로리’를 끝내 놓고 왠지 사랑 이야기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더라”라며 “대본을 장르 위주로 봤다(검토했다)”고 말했다.
다만 유니아가 왜 자신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소년 살리기에 그토록 몰두하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다. ‘검은 사제들’의 김범신 신부(김윤석)·최준호 부제(강동원)를 잇는 호흡을 선보인 두 수녀의 자매애를 지켜보는 건 이 영화의 핵심 관전 요소다. 그만큼 이 영화는 악령이 만들어낸 공포에 집중한 무거운 오컬트라기보다 편하게 볼 수 있는 캐릭터 드라마에 가깝다. ‘검은 사제들’ 팬이라면 누구든 흥분할 만한 특급 카메오(깜짝 출연자)가 영화 후반 등장하는 것도 잔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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