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음료 온장고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할머니 한 분이 매장으로 들어왔다. 그는 곧장 계산대로 갔다. 택배를 좀 부치려고 하는데요.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은 할머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가락으로 매장 구석을 가리켰다. 저 기계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할머니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기계요? 네, 택배 기계요.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마침 내가 찾던 온장고 옆이 택배 기계 자리였다. 예상대로 할머니는 시작부터 쩔쩔맸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택배 무게를 재고 내용물의 종류를 고르고 주소를 입력하기까지, 칠십 대 노인이 쉽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과정은 하나도 없었다. 그 와중에 할머니가 종이쪽에 써온 수신인 주소에 오류가 있어 휴대폰으로 해당 아파트명을 검색해서 정정할 때는 순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정작 손님을 도와야 할 아르바이트생은 휴대폰만 들여다보는데, 하고 떨떠름해지기도 했으나 어쨌든 그때쯤에는 할머니가 무사히 택배 발송을 마치는 것이 나에게도 중요한 임무가 되어 있었다.
화면에 택배 요금이 떴다. 5100원. 이제 결제만 하시면 다 끝나요. 할머니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어쩌지요. 4000원밖에 없는데. 신용카드는 갖고 오지 않았고 현금 4000원이 전부라는 것이었다. 결국 모자라는 금액을 내가 결제했다.
카페에 마주 앉아 자초지종을 들은 친구는 내 행동이 선의라기보다 오지랖에서 나온 것 같다며 웃었다. 나도 동의한다는 의미로 웃었다. 그러고 나서 계산서를 들고 일어설 때였다. 옆 탁자에 앉아 있던 낯선 여성이 대뜸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이미 계산했어요. 네? 알고 보니 여성은 내가 편의점에서 만난 할머니의 딸이었다. 아까 엄마와 통화하면서 얘기 들었거든요. 세상에 이런 미담이 다 있다니 싶었는데, 방금 두 분 대화 나누시는 걸 들으니 엄마가 말씀하신 바로 그분 같더라고요. 약소하지만 커피라도 대접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오전에 집 앞 편의점에서 생면부지 노인을 만났다가 오후에 그의 딸을 집과 먼 카페에서 우연히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러니 이 이야기는 미담이라기보다 기담에 가까울 것이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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