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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창원 진해 죽곡마을 주민 450일째 집회, 왜? [강승우의 뒤끝작렬]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밀착취재 , 강승우의 뒤끝작렬

입력 : 2025-01-28 09:00:00 수정 : 2025-01-26 16: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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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은 우리 동네에서 이슈가 됐던 기사를 다시 까발리고 들춰내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 드리고 관심을 재조명하기 위해 만든 코너입니다. 취재 뒷이야기, 기사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 앞으로 취재 계획 등을 딱딱하지 않게 써보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보는 언제든 대환영입니다. [편집자주]
창원시 진해구 죽곡마을 앞바다에 방치된 어선들.

◆100가구 남짓했던 조용한 마을에 무슨 일이?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어 시작한 이 집회가 이리도 오래갈 줄 누가 알았습니까.”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는 작은 죽곡마을이 있습니다. 30년 전쯤에는 100가구 정도에 150여명이 살던 조용한 마을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동네주민이 예전에 비해 절반 정도로 줄어 더 조용해졌습니다.

 

지난 21일 오후 7시쯤 찾아간 죽곡마을은 거의 폐가처럼 보이는 빈집들이 군데군데 보이면서 진짜 ‘유령마을’ 같이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죽곡마을 이주대책위원회(대책위) 주민들은 긴 한숨을 쉬며 처한 상황을 토로했습니다.

 

이들은 해가 바뀌어 설 명절을 앞두고 있지만 전혀 새해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이 마을 인근에 진해국가산업단지가 있는데, 한 입주기업과의 수십년 동안 이어져 온 해묵은 갈등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도대체 이곳 죽곡마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마을 주민 이야기 등을 통해 정리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1990년대 초, 진해국가산단에 선박 부품 제조업체인 ‘오리엔탈마린텍’이 입주했습니다.

 

이곳 주민과의 갈등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당시 죽곡마을 주민들은 이 마을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파는 걸로 생계를 이어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입주하면서 생계터였던 죽곡마을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게 주민들의 증언입니다.

창원시 진해구 죽곡마을 주민들은 선박 부품 업체의 도장 작업으로 인해 페인트 가루가 바람에 날려 자동차 등에 달라붙는 등 비산 먼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이 회사가 회사와 맞닿아있던 바다에 공유수면 점용‧사용 허가를 받으면서죠.

 

하필 죽곡마을 주민들이 어로활동을 하던 바다와 회사가 선박 부품의 이동 등을 위해 안전상 허가를 받은 바다 공간이 겹쳤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생계에 직격탄을 맞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이양춘 죽곡마을 이주대책위 사무처장은 “과거 수십 척에 달하던 당시 어선들은 현재는 20여척으로 줄었으며, 이마저도 지금은 어업활동을 사실상 포기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고 했습니다.

 

주민들의 고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선박 도장 작업 등으로 페인트 가루와 쇳가루가 바람에 날려 자동차 등에 달라붙는 등 비산 먼지 피해도 호소했습니다.

 

이성섭 죽곡마을 주민은 “참다못한 주민들이 문제제기를 계속했고, 2003년쯤 행정기관에서 용역을 맡겨 조사한 결과 ‘(주민이)이주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면서 “한평생 살던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안타까움도 잠시, 말 뿐인 이주 대책은 ‘빛 좋은 개살구’”라고 지적했습니다.

 

2006년 경남도환경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이 회사와 죽곡마을 주민은 환경피해에 대한 피해배상에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책위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사무처장은 “과거 3년치 피해에 대해서만 소급 적용한 데다 합의 이후에도 피해는 20년 가까이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어떤 피해 배상도 추가로 진행된 적이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결국 죽곡마을 주민들은 거리로 나섰습니다. 주민들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호소합니다.

 

2023년 11월 죽곡주민들은 회사와 창원시 등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하며 이 회사 맞은 편 도로 한 쪽에서 천막을 치고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조를 짜서 돌아가며 생존투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3년째로 접어든 이 투쟁 수위가 다시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창원시 진해구 죽곡마을의 빈집. 이 마을에는 이런 빈집들이 군데군데 있다.

오리엔탈마린텍은 25년 이상 허가받은 공유수면 면적의 10배에 가까운 면적을 불법으로 사용해오다 뒤늦게 적발됐습니다. 이에 변상금 25억여원이 부과됐습니다.

 

회사는 이 결정에 불복하고 경남도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됐죠.

 

그런데 최근 이 회사는 두 차례에 걸쳐 공유수면 점용‧사용 허가를 추가로 신청했고, 창원시 진해구청이 이를 허가해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책위는 “죽곡마을 주민 의사는 묻지도 않았다”며 강력 반발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4일 경남도행정심판위원회는 대책위가 오리엔탈마린텍에 공유수면 점용‧사용을 허가한 창원시 진해구청을 상대로 낸 허가 취소 행정심판을 기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오리엔탈마린텍 공유수면 점용‧사용 추가 신청에 대한 진해구청의 허가가 문제없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책위는 창원시 진해구 행정 논리의 모순을 지적하며 한층 더 격한 투쟁수위를 예고했습니다.

 

대책위는 “진해구는 오리엔탈마린텍이 행정심판을 제기했을 때 죽곡마을 어민들의 피해를 언급하며 심판위원회에 주장했지만, 죽곡마을 주민이 진해구를 상대로 낸 행정심판에서는 되레 회사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대책위는 “죽고 난 뒤 이주가 무슨 소용이냐. 마을 주민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냐. 집회가 15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며 “정상적인 어로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회사와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대책위는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에 환경부‧해양수산부‧법무부 등이 나서 죽곡마을 주민 민원 해결을 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창원=글·사진 강승우 기자 ks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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