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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고금리 시대, 복권의 역설적 호황…‘일확천금’ 꿈꾸는 서민들 [일상톡톡 플러스]

입력 : 2025-01-28 05:00:00 수정 : 2025-01-27 18: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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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 논란, 낮은 당첨금…반복되는 문제

소득 계층 이동 악화…가난 고착화 우려

서울에 거주하는 4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최근 복권 구매를 시작했다. 김 씨는 "고물가와 높은 대출이자로 인해 생활이 점점 팍팍해지면서 작은 희망이라도 가져보려고 매주 복권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월급의 대부분이 주거비와 생계비로 빠듯하게 나가는 상황에서 복권 구매는 "소소한 위안이자 미래를 꿈꿔볼 수 있는 작은 투자"라고 덧붙였다. 복권 판매점주 박모 씨는 "최근 복권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특히 젊은 층과 중장년층이 고르게 복권을 찾는 모습을 보인다"고 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고물가와 고금리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 복권업계는 오히려 호황을 누리고 있다.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복권을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한다. 한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복권 구매는 삶이 팍팍할수록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심리적 대안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하며 "이러한 경향은 경제 상황이 나아지기 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27일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복권 판매액은 3조6168억 원으로 전년 동기(3조3790억 원) 대비 7.0% 증가했다. 상반기 판매액은 2020년 2조6205억 원, 2021년 2조9391억 원에서 2022년 3조1473억 원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며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올해 예상 연간 판매액은 7조6879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복권은 흔히 경기 불황기에 잘 팔리는 ‘불황형 상품’으로 불린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복권에 대한 기대가 커지기 때문이다. 불황기라고 해서 복권 판매가 항상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복권 판매액은 3209억 원으로 전년 대비 12.4% 감소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판매 증가율은 0.5%에 그쳤다.

 

일각에서는 최근 복권 열풍이 경제적 불확실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을 통해 자산을 축적하기보다 물가와 집값 상승 속도가 더 빠른 상황에서, 현실적인 기대를 포기하고 복권을 통해 부를 쫓으려는 심리가 커졌다는 것이다.

 

복권 구매가 늘어나는 가운데 조작 논란과 당첨금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2023년 3월 4일 추첨된 1057회 로또에서 2등 당첨자가 무려 664명에 달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일반적으로 2등 당첨 건수는 100건 미만에 그치는데, 복권위원회는 이에 대해 "664건 중 609건이 특정 번호를 수동으로 선택한 결과였다"고 해명했다.

 

낮은 당첨금도 문제로 지적된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할 때, 1등에 당첨돼도 과거처럼 인생 역전을 이루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1969년 제1회 주택복권의 1등 당첨금은 300만 원으로, 당시 서울 평균 집값(200만 원)을 초과해 내 집 마련이 가능했다. 로또 1등 평균 당첨금 20억 원에서 세금을 제외하면 서울 강남 아파트 한 채 마련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코로나19 이후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로또 1등 당첨금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소득 계층 이동성이 점차 악화하면서 빈곤층의 가난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2022년 소득이동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소득 계층이 1년 전과 달라진 사람은 34.9%로 집계됐다. 이 중 상향 이동한 사람은 17.6%에 불과했다. 국민 10명 중 2명도 채 되지 않는 수치다.

 

소득 이동 통계는 개인별 근로·사업 소득을 바탕으로 분석됐으며, 재산소득이나 공적·사적 이전 소득은 제외됐다. 코로나19 이후 소득 계층 이동은 감소세를 보였는데, 저소득층일수록 상향 이동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하위 20%(1분위)에서 상위 계층으로 이동한 비율은 전년 대비 0.8%포인트 감소한 반면, 소득 상위 20%(5분위)에서 소득 계층을 유지한 비율은 86.0%로 고착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청년층은 비교적 상향 이동 비율(23.0%)이 하향 이동(18.0%)보다 높았으나, 노년층은 하향 이동 비율(15.7%)이 상향 이동(10.0%)을 앞질렀다. 특히 65세 이상 여성의 상향 이동 비율은 8.7%에서 7.6%로 감소했다.

 

노년층의 빈곤 고착화는 저소득 노년층의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은 “노년층의 경우 노동시장 재진입이 어려운 만큼 공적이전 등 정부의 재분배 정책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소득 이동성이 높았던 청년층과 달리, 65세 이상에서는 남성의 소득 이동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소득 충격이 65세 이상 여성에게 특히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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