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가 고성능 칩을 사용하지 않고도 챗GPT급 성능을 확보한 생성형 AI 모델을 내놓자 27일(현지시간) 미국 빅테크(거대 기술기업) 주식 시가총액이 하루 사이에 1조달러(약 1400조원) 증발했다. AI업계는 물론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국에 반도체 수출을 제한해왔던 미 정부 역시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딥시크 뭐길래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딥시크는 량원펑이라는 인물이 2023년 5월 중국 항저우에 설립한 회사이다. 대학 졸업 후 하이플라이어라는 헤지펀드 회사를 세운 그는 이 회사 AI 연구부서에서 일하면서 딥시크 사업을 고안했다. 그는 하이플라이어 시절 컴퓨터 트레이닝에 딥러닝 기법을 적용해 자금을 끌어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딥시크는 2023년 11월 첫 번째 오픈소스 AI 모델 ‘딥시크 코더’를 시작으로 ‘딥시크-V2’, ‘딥시크-V3’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지난 20일 ‘딥시크-R1’이라는 추론 모델을 선보이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 실리콘밸리 대표 벤처투자가인 마크 앤드리슨은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딥시크 R1은 내가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놀랍고 인상적인 혁신 중 하나”라며 “AI 분야의 스푸트니크 모멘트”라고 했다. 1957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미국보다 먼저 쏘아올린 것에 비견할 만큼 충격적이라는 뜻이다.
현재 미국 아이폰 앱 다운로드 순위에서 딥시크는 1위를 차지하고 있다.
◆美 주식시장에 거센 파고
딥시크는 빅테크주를 중심으로 미 주식시장을 뒤흔들었다. 주요 AI 모델에 사용되는 고성능 반도체를 공급해오던 엔비디아 주가가 17% 폭락해 하루 만에 시장 가치가 5900억달러(약 850조원) 급감했으며,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 -14%, 생성형 AI용 서버를 만드는 수퍼마이크로컴퓨터 -13%, 반도체 업체 브로드컴 -17% 등 충격파가 거셌다.
딥시크가 이같이 큰 파장을 일으킨 이유는 고성능 AI에는 고가의 최첨단 반도체가 필요하다는 기존 관념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딥시크는 그런 막대한 비용을 들일 만한 재정적 여력이 없었지만, 혁신적인 AI 훈련 기술을 적용해 고가 반도체의 장벽을 넘어섰다.
딥시크는 엔비디아의 저가 칩 H800을 활용해 2개월 만에 600만달러 미만의 비용으로 고성능 AI 모델을 구축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미 정부의 규제와도 연관돼 있다.
미국이 중국의 군사 목적 AI 개발을 막으려고 시행한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로 딥시크는 최첨단 반도체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딥시크가 사용한 H800은 미 정부의 수출 규제를 피하기 위한 중국 수출용으로 성능을 낮춘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그것(딥시크의 AI 개발)이 정말 사실이고 진실이라면,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수십억달러를 지출하는 대신 적은 비용을 지출하게 될 것이고,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같은 해법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딥시크, AI 주식에 재앙인가
다음 달 10, 11일 ‘AI 액션 서밋’을 주최하는 프랑스 관료들은 “(딥시크의 성공은) 우리가 (미국 AI 업계와) 경쟁할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고 WSJ는 전했다.
작지만 영리한 기술을 갖춘 회사가 AI 공룡 기업에 버금가는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딥시크가 AI 인프라 산업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는지에 대해서는 반론도 존재한다. 번스타인의 반도체 애널리스트인 스테이시 라스곤은 ‘딥시크는 AI구축의 종말인가’라는 보고서에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다. “딥시크가 AI 학습 비용을 절감할 방법을 찾았을지 모르지만, AI 수요는 계속 급증하고 있으며 기술 기업들은 여전히 더 많은 컴퓨팅 성능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에서다.
엔비디아도 성명에서 딥시크 발전이 자사 칩의 중국 내 수용를 끌어올릴 것이며, 향후 AI 서비스 수요 충족을 위해 더 많은 엔비디아 칩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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