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4일 자신의 탄핵심판 5차 변론에서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치인이 체포됐거나 시민이 다치는 등의 일이 없었다는 취지인데, 정말 아무 일도 없었을까.
그날 밤, 시민들은 잠도 자지 못한 채 국회 정문에 모였다. 당직자와 보좌진들은 체포를 무릅쓰고 서로의 팔을 감쌌다. 국가를 지키겠다며 고된 훈련을 거친 군인은 적이 아닌 시민을 마주했다. 국가 치안을 지켜야 할 경력 4000여명이 비상계엄에 동원됐다. 전 국민이 이 과정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비상계엄 여파가 여기까지였으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입법·행정·사법이라는 삼권분립 시스템마저 휘청거렸다. 환율이 치솟고 생활 물가도 올랐다.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여부가 전 세계에 생중계돼 국가 신인도는 더 떨어졌다. 계엄 과정에 동원된 군 지휘관들과 경찰 고위직이 구속되면서 안보는 불안하다.
법원마저 습격당했다. 나라는 두 쪽으로 나뉘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발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는데 이에 대응할 컨트롤타워는 보이지 않는다. 계엄이 해제된 뒤 두 달이 지나도록 혼란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그간 탄핵심판에서 ‘헌법상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대통령 권한을 행사했고, 불법행위는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했거나, 실무자들이 명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해프닝’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애써 비상계엄의 의미와 여파를 축소하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은 여기서 비롯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아무것도 아니라던 ‘경고성·단기성 비상계엄’으로 사회가 치르는 비용은 막대하다. 탄핵심판정이 아무리 파면이나 복귀를 다투는 장이라고 해도, 해당 발언이 탄핵심판 결과에 도움이 될진 미지수다. 기적적으로 기각 결정이 나 윤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한다 치자. 그렇더라도 심판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윤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정부 구성원에게, 국민에게 와 닿을까. 지난해 12월3일, 정말로 아무 일 없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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