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태생의 예카테리나 압바꾸모바(35·전남체육회)는 지난 11일 중국 야부리 스키리조트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바이애슬론 여자 7.5㎞ 스프린트에서 22분45초4로 결승선을 가장 먼저 끊었다. 순백의 설원을 스키로 질주하며 소총 사격을 병행하는 바이애슬론은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좀처럼 꿈꿀 수 없는 취약 종목이었지만 압바꾸모바 덕분에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일궜다.
압바꾸모바 사례처럼 한국의 취약 종목 강화를 위해선 귀화를 통한 문호 개방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찌감치 귀화 선수를 받아들인 반면 ‘순혈주의’, ‘단일민족’ 등의 이유로 폐쇄성이 강한 한국은 귀화 선수를 받아들인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1년부터 ‘우수인재 특별귀화제도’를 마련했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귀화를 적극 받아들였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출전 선수 144명 중 19명이 ‘귀화 선수’였다. 아이스하키와 바이애슬론, 스키, 피겨스케이팅, 루지 등 취약 종목에서 실력이 뛰어난 귀화 선수를 국가대표로 선발한 결과였다. 압바꾸모바도 그중 한 명이었다.

빼어난 재능과 기량을 가진 외국 선수 중에는 한국 국적을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가 꽤 있다. 탁구의 전지희가 대표적이다. 2011년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전지희는 2023년 5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신유빈과 호흡을 맞춰 여자복식 은메달을 합작했고,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21년 만에 여자복식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그러나 특별 제도를 통한 귀화가 아니면 여전히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가 어렵다. 남자 프로배구에서 지난 시즌 OK저축은행과 삼성화재의 아시아쿼터 외국인 선수로 뛴 몽골 출신의 바야르샤이한과 에디는 순천 제일고 3학년으로 편입한 뒤 인하대와 성균관대를 졸업했다. 둘 다 국내 거주 5년 조건을 채웠지만 일정 기간 소득세를 납부해야 하는 조건이 충족 안 돼 일반 귀화 신청이 어렵게 됐다. 2024∼2025시즌부터 V리그가 중국과 이란 선수들에게도 아시아쿼터 제도를 개방하면서 둘은 지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활동하지 못해 소득세를 낼 기회도 사라진 셈이다. 한국에서 오래 살아 우리말도 유창하고 2m 가까운 신장에 기량도 뛰어난 이들이 귀화하면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 남자 배구에 큰 활력소가 될 수 있는데도 배구계의 무관심과 높은 귀화 문턱 탓에 잊힐 위기에 놓였다.
배구뿐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제2의 바야르샤이한과 에디가 나올 수 있다는 게 더욱 문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맹활약한 압바꾸모바 사례는 귀화 선수 정책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귀화 선수 유치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경쟁력 유지와 다문화 사회 해법이라는 측면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란 목소리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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