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대학로 초연 이후 장기흥행
‘일반인 위한 현대무용 입문서’ 호평
오랜 수련으로 다져진 극한의 기량
팔색조 매력으로 객석 탄성 자아내
기업 협찬·후원 없이 대형무대 도전
김보람 예술감독 “더 큰 가능성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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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분야 중 가장 척박하다는 현대무용의 대중화 씨앗을 뿌려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특별한 무대를 열었다. 앰비규어스 대표작 ‘바디콘서트’ 15주년 기념공연이다. 무용단 존속 자체가 큰 도전인 무용계에선 기적 같은 일이다. 초연에서 재연, 삼연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기 힘든 환경을 극복한 보기 드문 성과다. 게다가 주말을 낀 사나흘 공연 관행에서 벗어나 1000석 극장에서 15일이나 무대를 여는 과감한 도전을 선택했다. 공연 현장은 높은 자부심만큼이나 춤은 뜨거웠고 무용수 열정은 숨소리와 함께 객석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국 현대무용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될 무대였다.
◆바디콘서트, ‘일반을 위한 현대무용 입문서’
2010년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초연된 ‘바디콘서트’에 붙은 수식어는 ‘일반인을 위한 현대무용 입문서’. 마치 객석을 예열하듯 관객 호응을 유도하는 ‘다프트 펑크’의 ‘슈퍼히어로’로 시작되는 무대는 MC해머, 비욘세, 헨델 등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11개 음악에 맞춰 서로 다른 느낌의 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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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진미가 잘 차려진 특급 뷔페가 떠오른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무용계를 놀라게 했다. 2012년 다시 국내 최고 춤잔치 국제현대무용제(모다페) 공식초청작으로 무대에 오른 후 여러 무용 페스티벌에 소환되며 앰비규어스를 대표하는 레퍼토리가 됐다.
지난달 28일 공연에서도 ‘바디콘서트’만이 가진 팔색조 같은 매력이 돋보였다. 이전 다른 때보다 강렬했던 ‘이모션’에서 흥겨운 ‘아이 갓 러브’로 이어지던 춤은 바흐 골트베르크변주곡에서 급변했다. 오랜 시간 고된 수련으로 쌓은 기량의 극한을 보여준 무용은 객석에 탄성과 함께 많은 상념을 일으켰다. 다음 작품 ‘바래진 기억에’를 만난 객석은 순수한 감정의 고양으로 상념이 승화되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완급을 조절하며 계속된 춤의 향연은 무용수가 무대 바닥을 구르고 기다 기어이 일어서고야 마는 ‘다잉’에서 또 한 번 절정의 무대를 만들며 앰비규어스 춤의 깊이를 보여줬다.
◆김보람, 백댄서에서 정상의 안무가
추는 춤이 ‘애매모호(Ambiguous·앰비규어스)’하다고 이름 지어진 앰비규어스를 이끄는 김보람 예술감독·안무가는 그야말로 입지전적 인물이다. 가수 엄정화 등의 백댄서로 활동하다 무용가로 성공한 이력이 유명하다. 전남 완도초등학교 3학년 때 TV에서 가수 현진영의 힙합춤을 본 이후 무용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서울로 와 방송댄스팀에 들어갔다. 이후 유명가수들 백댄서로 활동하면서 서울예대에서 무용을 수련하다 2008년 앰비규어스를 창단했다. 이듬해 CJ영페스티벌에서 안무가라면 모두가 한 번쯤 도전하는 라벨의 볼레로 리듬에 맞춘 ‘에브리바디 시즌Ⅲ 볼레로’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누구나 하고 싶지만 함부로 시도할 수 없었던 곡을 새롭게 해석했다”는 평단 극찬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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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0년 나온 게 ‘바디콘서트’다. 당시 작업에 대해 김 예술감독은 “연습실이 없어 공사장과 잠수교, 여의나루를 전전긍긍했다”면서 “비 오는 날은 굴다리 밑에서 연습했으며 대부분 새벽 연습이라 집에 가는 길에는 잠수교에서 해 뜨는 모습을 보곤 했다”고 회상한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바디콘서트’ 15주년 기념공연을 앰비규어스는 흔한 기업 협찬·후원이나 공적 지원금 없이 무용단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극장에서 열고 있다. 티켓 가격도 최고가 10만원으로 책정했다. 김 예술감독은 지난달 26일 열린 언론 시연회에서 “무모한 도전이지만 더 큰 가능성을 생각했다”며 “누군가는 이런 무용공연으로 관객을 가득 채우고 무용 관람하는 분위기가 생겨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고 밝혔다.
◆앰비규어스, K무용 대표주자
앰비규어스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무용계에서 흘러나왔던 “무용 한류 주인공이 될 법하다”는 이야기는 현실이 됐다. 2020년 한국관광공사의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2021년에는 록밴드 콜드플레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김보람은 유럽 여러 단체와 협업을 진행하며 국제적 명성을 쌓고 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오리야크 거리예술축제에서 전통음악과 현대적 비트를 결합한 ‘피버’를 선보였다. 올해도 ‘바디콘서트’ 무대가 끝나면 4월까지 프랑스와 스위스 5개 도시에서 유럽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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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해외에선 앰비규어스를 부르는 무대가 늘어나고 있지만 국내 온도는 다르다. 김 예술감독도 ‘99.9%는 평생 현대무용을 안 본다’는 국내에서 더 많은 이가 자신들의 춤을 봐 주길 바란다. “(바디콘서트는) 많은 사람이 꼭 봐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좋다, 나쁘다’를 넘어서 한 인간이 자기가 원하는 걸 표현하는 것의 극한을 직접 목격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에요. 이 작품은 그런 극한을 만들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무용수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누가 와도 그런 명장면을 보고 감동을 얻을 수 있습니다.”(앰비규어스 유튜브 채널 인터뷰 중)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3월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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