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13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회의실에 울려퍼지는 구령에 따라 제복을 입은 경찰 지휘부가 허리를 숙였다. 구령을 부른 건 그들 중앙에 서있던 김부겸 전 국무총리(당시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과 중앙경찰학교장이 서로를 향해 공개 비방을 지속하면서 경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들끓자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김 전 총리가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김 전 총리는 회의실에 모인 경찰 지휘부를 향해 “이번 사태가 참으로 부끄러운 것은, 그래서 저나 경찰 지휘부 여러분이 고개를 들 수 없는 것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꾸짖었다.
16·17·18·20대 국회의원,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 제 47대 국무총리. 화려한 정치이력은 그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리고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통합의 정치인’. 여의도 안팎에서는 그를 그렇게 부른다. “서로 편을 가르고, 적으로 돌리는 공동체에는 국민 모두가 주인인 민주주의, 더불어 살아가는 공화주의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2022년 5월 김 전 총리는 총리직을 마치면서도 통합을 강조했다.

약 3년이 지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통합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광장은 둘로 쪼개져 양극단을 향하고 있다. 정치권이 이에 합세하면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양쪽 진영이 각각 3·1절 집회를 연 지난 1일에도 김 전 총리는 “106년 전, 만세소리로 전국의 광장은 하나였다. 증오와 분노를 버리고 함께 공존의 길을 개척하자”며 국민 통합을 외쳤다.
탄핵이 인용돼 조기대선이 열릴 경우, 김 전 총리는 국민 통합을 이뤄내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세계일보는 14일 ‘S.W.O.T 분석’ 기법으로 김 전 총리의 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 위기(Threat) 요인을 분석했다.
◆강점(S): 통합능력과 행정능력
김 전 총리는 정치진영을 넘어선 통합이 가능한 인물로 꼽힌다. 진영간 대화가 단절되다시피 한 22대 국회에서도 김 전 총리에 대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대화가 되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의 이력으로도 드러난다. 김 전 총리는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국회의원을 한 유일한 진보 정치인이다. 2016년 총선에서 대구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수성갑에 파란 깃발을 꽂았다. 현재 여당의 유력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62%라는 압도적 득표율을 거뒀다. 3선 의원을 지낸 지역구 경기 군포를 떠나 거둔 성과였기에 더욱 빛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어 ‘바보 정치인’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단번에 대권 주자 반열에 올랐다.
행정능력 또한 검증받았다. 문재인정부에서 행안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정치와 행정을 모두 소화해낸 그다. 포항 지진 현장을 찾아 수능 연기 결정을 이끌어 피해를 최소화했다. 소방관 국가직화를 추진해 대형 화재 대응력을 높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방역을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문제를 제기하는 게 아니라 해결하는 정치를 하고자 한다.” 김 전 총리는 2019년 12월 펴낸 저서 ‘정치야 일하자’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의 말대로 현안을 해결해내는 행정능력을 보여줬다는 게 여의도 안팎의 평가다.
◆약점(W): 낮은 존재감과 지지율
당내 지지 기반이 부족한 점은 그의 약점으로 꼽힌다. 한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김 전 총리는 당에 세력이 없다”고 혹평을 했다. 한 의원은 “애초 민주당과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꼬집었다.
여기엔 그의 정치 여정이 영향을 미쳤다. 김 전 총리는 2000년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으로 처음 국회에 입성했다. 운동권 출신으로 1988년 한겨레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국회의원 생활은 보수진영에서 시작한 것이다. 2003년 한나라당을 탈당,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하면서 진보진영으로 돌아왔지만, 지금도 그에겐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공백기를 가지며 존재감이 작아졌다는 점도 약점이다. 2022년 김 전 총리는 총리직을 퇴임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해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으며 복귀하긴 했지만, 약 2년의 공백기가 있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정치인에게는 연속성 있게 활동하며 존재감을 지키는 게 중요한데, 김 전 총리는 공백기 동안 주목받은 게 없다보니 대권 잠룡 수준의 존재감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공백기는 낮은 인지도와 지지율로 이어진다. 세계일보와 한국갤럽이 1월31∼2월1일 전국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부겸 전 총리의 지지율은 8%로 집계됐다. 이는 50대(10%), 60대(13%), 70대 이상(14%)이 견인한 것으로, 청년층만 놓고 보면 18∼29세 2%, 30대 4%, 40대 3%로 고연령층 대비 현저히 낮았다. 최근 뚜렷한 정치활동이 없던 탓에 젊은 세대의 지지율이 특히 낮다는 분석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하면 된다.
야권 다른 후보와 비교해도 청년층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18∼29세 지지율만 놓고 보면 이재명 대표(33%), 김동연 경기도지사(11%), 우원식 국회의장(7%),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5%), 정세균 전 국무총리(4%), 박용진 전 의원(3%), 김 전 총리(2%) 순으로, 후보군 중 꼴찌를 기록했다. 전체 연령으로 봤을 땐 이 대표(40%), 김동연 지사(10%)에 이어 3위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기회(O): 국민 통합 요구
통합에 대한 국민 요구가 그에게 기회가 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한국갤럽·국민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가장 위협이 되는 문제’로 ‘정치권의 극단적 대립’을 지목한 비율이 35%로 가장 많았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묻는 질문에는 ‘정치권의 협치 및 국민통합’이 26%로 두번째를 차지했다. 그의 강점인 ‘통합 능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여건인 셈이다.
여권에서 중도 성향의 대선 후보가 나오면, 김 전 총리의 역할론이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중도층 표심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여권 후보가 TK 지지 기반이 두텁지 않다면, 김 전 총리가 대구 국회의원 경험을 바탕으로 TK 표심을 끌어올 여지도 생긴다. 이 대표 사법리스크가 확대될 경우 이런 강점은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야권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차지하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진보좌파 이미지가 강한 반면, 김 전 총리는 중도층에 소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기(T): 이재명 ‘일극독주’ 체제
팬덤 정치가 강화하고 있다는 점은 김 전 총리에게 위협 요인이다. 그는 뚜렷한 지지층을 갖고 있지 않다. 특히 이재명 대표가 일극독주하고 있어 그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 상황이다.
여론조사 기관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10~12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 적합도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3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김 전 총리를 지지한 비율은 0%에 수렴했다.
최근 김 전 총리는 “팬덤 정치를 극복해야 한다”며 당내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조기대선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선 당내 통합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이다.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이 비명(비이재명)계 인사를 공격하며 당내 분열이 문제가 됐는데,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전 총리는 과연 당의 통합, 나아가 국민 통합을 이뤄내는 ‘통합의 대통령’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2025년 대선이 열린다면, 그가 ‘별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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