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도 없애자” 마음을 먹고… 어느날 아침 평범한 40대 가정주부이자 선량한 시민인 이은주가 경찰에 체포된다. 혐의는 뜻밖에도 살인 용의자. 지난주 동네 개천에서 60대 남자 강인학이 만취한 익사체로 발견됐을 때 경찰은 실족사로 잠정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은주가 그를 살해하는 현장을 보았다는 목격자가 나타난 것이다.
경찰에 끌려간 은주는 “피해자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며 완강히 저항한다. 7년째 병석에 누워 있는 시아버지까지 휠체어를 타고 경찰서에 출두해 며느리의 무죄를 목청 높여 떠든다. 도무지 범행 동기를 찾아낼 수 없었던 경찰은 일단 은주를 풀어준다. 이틀 만에 귀가한 은주는 꼬리를 무는 생각에 잠도 이루지 못한다. ‘누가 나를 보았을까. 나는 왜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죽였을까.’
은주의 시아버지는 1970년대에 교복 장사로 성공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까지 지낸 노인이다. 유신정권의 몰락과 5공 신군부의 교복자율화 조치 이후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은 시아버지.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어마어마한 액수의 현금을 쥐고 있어 집안에서 절대적 힘을 행사한다.
은주는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 없이 폭력적이기만 한 10대 아들의 장래가 언제나 걱정이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그가 숨겨 두었다는 현금을 찾아 작은 식당을 차리고, 학군이 좋은 곳으로 아들을 빼내는 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꿈이다.
![]() |
그림=정아람 기자 |
목격자의 출현은 은주의 삶을 불안하게 만든다. 목격자는 경찰서에서 풀려난 은주에게 전화를 건다. 번호를 추적해 보니 동네 슈퍼마켓 앞 공중전화다. 은주는 슈퍼마켓 주인의 도움으로 공중전화 이용자의 사진을 받아 목격자 정체를 알아낸다. 아내와 딸이 가출하고 혼자 살아가는 택시기사 박정기다. ‘목격자는 사라져야 한다.’ 은주는 단호히 마음을 먹는다.
그때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 창수가 은주한테 접근한다. 논술강사를 하면서 소설가를 꿈꾸는 창수는 고교 시절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과학선생님을 사고로 사망하게 만든 경험이 있다. 그 뒤 창수는 ‘우리네 삶이란 인과나 논리가 아닌, 우연과 충동에 의해 지배된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소재를 찾아 거리를 배회하던 창수는 평범한 40대 주부가 이유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을 보고 강렬한 흥분을 느끼는데….
김서진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