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집무실 이전 목소리 불구
이전 기대효과 실현 여부는 의문
비용·타당성 꼼꼼히 살펴 결정을
제21대 대통령은 어디에서 업무를 시작할까. 아무래도 현재 용산 대통령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6·3 조기 대선 다음날 임기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청와대를 떠나 용산 시대를 연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밉고, 비상계엄·탄핵 정국에서 노출된 보안·경호 우려가 커도 대통령 집무실을 옮길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 같은 현실적 제약은 주요 대선 후보들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용산을 우선 쓰면서 신속히 청와대를 보수해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했고 국민의힘 한동훈 경선 후보는 “6월4일부터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는데 용산에 안 들어갈 건가”라고 반문했다. 청와대(국민의힘 안철수·홍준표)와 정부서울청사(개혁신당 이준석)를 거론한 후보도 있다.

이참에 대통령 집무실을 세종시로 옮기자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 효율성과 균형발전이 주된 명분이다. 대통령실이 세종에 있으면 대통령실·국회와 업무 협의를 위해 서울 출장이 잦은 ‘길국장’, ‘카톡과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 굵직한 국내외 행사 개최와 VIP 방문 등은 지역 사회·경제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현행법상 2027년까지 세종시에 제2의 대통령실·국회의사당을 지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견 합리적이다.
대통령 집무실 후보지마다 장단점은 있다. 하지만 결정 전 따져봐야 할 요건이나 거쳐야 할 과정도 존재한다. 우선 매몰비용.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대통령실·관저 용산 이전 작업에 투입된 국가예산은 832억1600만원이다. 합동참모본부 이전·신축 사업비는 2418억원이다. 개방된 청와대 예산 1051억3000만원까지 합치면 용산으로 이전에 든 명목상 혈세만 4300억여원이다.
집무실과 관저·비서실의 거리도 따져봐야 할 요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있던 관계로 ‘7시간 행적’ 의혹에 휩싸였고, 문재인 전 대통령 집무실은 비서실과 상당히 떨어져 있어 참모진과 소통에 곤란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과 소통 강화를 위해 청와대를 나왔다는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통령실과 한남동 관저를 오가며 의도치 않은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아울러 대통령 집무실의 세종 이전이 균형발전의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집무실을 필두로 서울 등 수도권에 쏠려 있는 정치·경제·문화·공공 인프라를 충청권 등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다 보면 인적·시설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는 게 주된 근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가 존망과 직결되는 외교·안보 부처, 주한 외국 대사관이 서울에 있다. ‘규모의 경제’, ‘집중의 효율성’이 요구되는 글로벌 기업 환경에서 이 같은 인위적 분산이 최선일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절차적 정당성은 내용적 타당성만큼이나 중요하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당일 호기롭게 집무실을 이전했지만 왜 하필 합참 본부인지에 대해서는 똑 부러진 설명을 내놓진 못했다. 그러다 보니 국정 물줄기를 틀 수도 있었던 대통령 집무실 이전 결정이 주술 의혹과 불통 시비, 국격 논란 등과 맞물려 세간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느낌이다.
이런 점에서 이재명 후보가 세종으로의 대통령 집무실 완전 이전의 전제로 ‘사회적 합의’를 꼽은 것은 실리와 명분을 모두 잡겠다는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든다. 1977년 박정희 정권 때부터 행정수도 이전의 ‘희망고문’을 받아온 충청권 표심 이탈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헌법재판소의 2004년 행정수도 위헌 결정을 뒤집기 위한 개헌이나 2차 헌법소원 등 공론화 여지를 열어놨기 때문이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우리가 건축물을 만들지만 이후엔 건축물이 우리를 만든다”고 말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윤 전 대통령 언급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물리적 환경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주는 많은 요인들 중 하나일 뿐”(장대익 서울대 교수)이다. 탁 트인 용산으로 나아간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고, ‘구중궁궐’에 갇혀 지낸 문 전 대통령은 건재하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의에서 결정권자의 진정성 있는 소통 노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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